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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교실 - 제48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소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학창시절 기억을 되살려 보라.
당신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가? 물론 웃기도 울기도 한 날이 있었겠지. 하지만 그런 것 말고, 대체적으로 당신은 상처를 주는 쪽이었는가 아니면 받는 쪽?
학교란 곳은 참 신기한 곳이다.
머리에 피도 안마른 어린애들부터 머리가 굵어졌다고 눈에 힘주고 다니는 고딩들까지 그 순수한 힘의 논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곳이다.
강자라면 상대방을 지배하는 방법을, 약자라면 약자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을 터득한다.
하나의 반은 하나의 작은 세상이다.
토끼들과 여우들, 그리고 호랑이들.. 그곳에서 당신은 어떤 시절을 보냈는가? 당신의 즐거운 기억 뒷편엔 어쩌면 누군가의 우는 모습이 새겨져 있을 지도
모른다....
오리하라 이치의 '침묵의 교실' 은 조금 과하다 싶은 설정으로 가득차 있다. 옛날 시골 학교의 아이들이 '우정'이나 '신뢰'가 결여되어 있고 '적대감'과 '공포'에 지배당한다는 설정은 사실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있다. 물론 당시의 정치적 사건이나 시대적 상황이 아이들로 하여금 그런 분위기 속에서 살게끔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침묵의 교실의 배경이 되는 3학년 A반은 그야말로 어떠한 인정도 남아있지 않은, 잔혹한 어린아이들의 교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설정이 작품의 리얼리티를 떨어지게 만드는가? 아니, 난 이 부분에 의외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의지할 곳 없는 개개인에게 전체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숙청' 의 공포는 이런 설정에서 더욱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오리하라 이치는 다소 억지스러운 인물간의 교류단절을 제외하고는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학교의 모습을 더욱더 기괴하고 음산하게 뒤틀어 버렸다. '공포신문''학교괴담' 류의 떠도는 이야기와 우메즈 카즈오의 '표류교실' (인터넷을 뒤져보면 번역본을 살짝 감상할 수 있다.) 풍의 아이들의 집단심리를 잘 버무렸다고나 할까. 난 과거의 이야기 쪽이 훨씬 재밌고 흥미롭게 읽혔다. 긴 시간 동안 책을 놓지 못했던 것도 과거의 수수께끼가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20년 전 학교에서 일어났던 사건과 그와 연관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교차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인물의 눈과 입을 통해 말하고는 있지만, 인물에 심하게 이입이 되진 않는다. 오직 의문점들만 깊어질 뿐. 초중반부 오리하라 이치 특유의 사람 애간장 태우는 글빨이 이번에도 고스란히 살아있다. 잠들기 전에 조금만 읽어야지 했던 것이 결국 결말까지 보게 되었다.
물론 이 책은 100% 만족감을 주긴 어렵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작가가 가장 괜찮은 루트를 선택해 결말에 이르렀겠거니 하면서도, 한정된 인물들로 약간은 장황한 결말부를 만들려고 한 점은 아쉽다. 이렇게 저렇게 끼워맞추다 보면 대충 이야기의 얼개가 3부를 읽기 전에는 완성되진 않을까 싶은데, 나 혼자만의 자만일까?
도착시리즈를 읽고 느낀 점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오리하라 이치는 트릭과 반전을 만드는 재주보다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재주가 더 탁월한 작가라는 것. 1부와 2부를 읽는 내내 단 한 번도 지루하단 생각을 받지 못할 정도로 흥미진진했다. 도리어 침을 꼴깍 삼키면서 한장한장 넘겨나갈 정도로 집중하게 만드는 내용 전개였다. 결말부가 약간 힘이 빠지는 감이 있지만, 언제나 저평가 되는 오리하라 이치의 격을 높일 수 있는 좋은 책이 아닌가 싶다.
별 다섯에 별 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