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불의 집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시작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가장 좋아하는 일본 미스터리 작가를 꼽으라면, 주저 않고 기시 유스케라 말하겠다. 가장 뛰어난 작품을 발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정성들여 재밌는 작품을 써내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작인 '악의 교전'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작이 국내에 소개되었는데, 작품 간의 텀이 상당히 긴 '과작'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도깨비불의 집' 은 4개의 단편이 하나의 책을 이루고 있다. 장편인 '유리 망치' 에서 개성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 방범 컨설턴트이자 현직 도둑인 ' 에노모토 케이' 와 (밀실전문)변호사 '아오토 준코'가 다시 등장해서 반갑다. 사실 유리망치의 결말부보다 '에노모토 케이'의 '자물쇠'와 '방범' 에 관한 이론 부분이 더 인상 깊었던 기억이 난다. 결말부가 다소 김빠져서가 아니라, 기시 유스케의 탄탄한 조사를 바탕으로한 흥미로운 사실들에 몰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도 간간히 그런 작가의 풍부한 지식을 접할 수 있다. '도깨비불의 집'에서는 '벌' 에 대한 이야기가 살짝, '검은 이빨'에서는 타란튤라와 같은 독거미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를 끈다. '장기판의 미궁' 에서는 '일본식 장기와 체스' 에 관한 일화, '개는 알고 있다' 에서는 개의 종류에 따른 도둑의 고충 같은...

그런 지식들을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기시 유스케는 케이의 입을 빌려 말하는데, 짖굿게도 '지적이고 고집 센 여성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 싶은 허영심은 오래된 지병' 이란 표현을 자신의 아바타에게 능청스럽게 사용해 놓았다.

 

 '도깨비집의 불' 은 기시 유스케 작품들 중에서 상당히 밝고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아마도 작가가 '유리망치' 의 콤비를 이용해서 가벼운 소재들을 다룰 것으로 기대되는데, 티격태격 하면서도 필요에 따라 합치는 미묘한 관계설정부터 핸드폰 벨소리에 의미를 두는 패턴과 이런저런 말장난이 다른 책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개인적으로는 첫 작품과 마지막 작품이 조금 별로였고, 거미와 장기이야기를 다룬 두 단편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독거미'를 소재로 한 단편 '검은 이빨'은 살인범과 함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긴장감과 어딘가에서 돌아다닐지도 모르는 독거미 때문에 작품에 대한 몰입도가 남다른데, 사실 기시 유스케의 가장 큰 장점인 공포감 조성이란 점을 감안한다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결말 부분의 이미지 또한 내가 바란 풍미였기에 이 단편을 가장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장기판의 미궁' 에서 키득거리면서 웃었던 장면은 케이가 '필립 말로우' 를 자주 언급하는 장면인데, 난 '여복'이 없다는 쪽으로 연결시켜 이해했으나 나중에 알아보니 '필립 말로우' 의 취미 자체가 '쉬는 날 위스키 한잔 마시며 체스 복기하기' 였다. 뭐 어떤 의미가 더 크게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에노모토 케이라는 등장인물은 유능하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속물' 에 가깝다는 걸 감안한다면 내가 이해한 바가 그다지 틀리진 않으리라.

 

  이런 시리즈 자체도 꽤 마음에 들었다. 기시 유스케는 호러,스릴러,SF 뿐만 아니라 본격물에도 상당한 수준의 이야기를 써낼 줄 아는 작가라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물론 더 잘 하는 것은 따로 있다는 것도 더 잘 알 수 있었고...

 

 다음 작인 '악의 교전'이야말로 그의 정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믿음. 이것은 자신의 페이스를 잃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책으로 엮어내는 작가에 대한 믿음이 크다. '도깨비 불의 집'은 꽤 평범했지만 '기시 유스케' 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별 다섯에 별 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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