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밑 남자
하라 코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예담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마루 밑 남자' 에 실린 하라 코이치의 단편들은 공통점이 있다.

 

'다짜고짜 일상을 파고든 기묘한 사건이나 인물' 에 의해 평범한 주인공들이 겪게 되는 황당한 일들을 다룬 내용이라는 것.

 

그 황당한 일들을 경계로 삼아 뒤를 돌아보면 지극히 수동적이고 무미건조한 삶을 이어나가던 어제가 있고,

허둥지둥 대면서도 왠지 모를 호기심에 점잔 빼면서 몸을 싣는 지금이 있다.

그리고 주인공들에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약간은 짖궂은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이 책을 읽는 재미는 그들의 어제에 몸을 겹치고 나서

그들의 지금을 걸치고 나서

그들의 결말에 화들짝 놀라면서 멋적게 웃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자신의 모습'에 있는 것 같다.

 

이 책의 단편들은 하나같이 잿빛으로 시작해서 묘한 붉은 빛,

익어가는 감과도 비슷한 석양의 색으로 마무리 짓는다.

어두운 밤을 걷어내는 햇빛이 아니라

하루종일 흐린 날 해 질 무렵 잠깐 구름이 걷혀 해와 잠시 동안 작별인사를 나누는 듯한.

그런 얄궂은 붉음.

 

어쩌면 어두컴컴한 밤이 찾아올지도 모르고

어지러운 도시의 불빛에 머리만 아플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났을 때의 느낌은 신기하게도

 

누군가 기다리고 있는 곳을 향해 걷다가 문득 올려다 본 밤하늘.

별이 빛나고 있고 어느 새 둥글게 차오른 달이 새삼스러운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는

그럼 편안한 밤과 같다.

 

삶이 지치고 권태로울 때에

아무 음악도 필요없이 그냥

눈으로 따라 읽다보면 마음 어딘가에 뭉친 뭔가가 살짝 녹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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