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의 불편함
마리커 뤼카스 레이네펠트 지음, 김지현(아밀) 옮김 / 비채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날 회사 근처를 한 바퀴 돌다가, 비둘기 사체를 발견한다. 서둘러 그 주변을 떠나 돌아와 자리에 앉았는데도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이 멈추질 않고 찝찝했다.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누가 그걸 치우지? 하는 생각부터 들었고, 다시 그 길을 지날 때 죽은 비둘기를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간절하다. 사람의 죽음은 차라리 나은데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 서울은, 날마다 누군가 계속 죽는다. 사람은 뉴스에서도 영화에서도 계속 죽고, 죽어서 글자가 되고 숫자가 되어 언제나 내 주변을 흐른다. 하지만 여기 사는 사람들은 진짜 죽음을, 죽은 결과물을 마주하는 것에는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누군가 치웠을까? 다시 그곳을 지날 때 확인해보니 없다. 죽은 비둘기는, 누군가에 의해 치워졌다.


내가 눈을 돌리고 싶을 정도로 죽음이 가득한 책, 누군가의 가르침 없이 삶과 죽음의 법칙을 깨달아가는 아이들이 등장하는 이 책이 신경 쓰여서 견딜 수가 없다. 그날 아침 봐버린 죽은 비둘기처럼 하루 종일 날 괴롭히고 불편하게 해 마음을 온통 사로잡는 이 책이 참 싫다. 시골 생활 나름의 고요함, 느림, 냄새가 이토록 날 슬프게 만들 수 있을지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상상해본 적이 없다. 태어남과 죽음을 쉽게 볼 수 없는 도시와는 달리 시골 생활은 모든 것이 다 그것과 연결되어 있다. 마르케스의 소설에서 삶과 죽음이 모호하게 경계가 흩어져 묘한 기분이 들었다면, 이 책의 이미지들은 너무 선명해 속이 뒤집어질 지경이다.


하지만 이 책은 정말 가슴이 저밀 정도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책이기도 하다. 온통 죽음뿐인 곳에서 사랑은 정말 추운 강 밑바닥에, 저 길고긴 겨울의 끝에, 도달할 수 없는 건너편의 땅에, 결코 펼쳐보지 않는 성경의 한구석에 있을 뿐이지만,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을 이야기한다. 거기서 오는 슬픔이 이 책의 매력이다. 누군가 아이의 목소리에 대답해주길, 제발.


죽음이 많은 곳에선 삶이 드라마가 되고, 삶이 넘치는 곳에선 죽음이 드라마가 되는 법인가 보다. 나는 오늘 계란 하나를 프라이팬 모서리에 툭 치면서, 이게 죽음을 먹는 건지 삶을 하나 먹는 것인지 문득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죽으면 누가 나를 치울까, 하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