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가고 내일은 아직... - 시와 노래 그리고 느낌
최유리 지음 / 바른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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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적인 것들이 언젠가부터 오그라든다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난 사실 '오그라드는' 것들을 퍽 좋아하는 편이다. 누군가의 감성을 오그라든다는 말로 깎아내리는 사람들을 보면 굳이 왜 저럴까, 싶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좋아하게 놔 두면 될 걸, 괜히 남들이 좋아한다고 표현하지도 못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자기가 쓴 글로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겠지만 그걸 용기 있게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저자인 최유리는 오래 전부터 써 왔던 가사들을 묶어 시집을 만들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게 이 책이다. 이 책의 특이한 점은 저자가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모든 글들이 한국어와 영어, 두 가지로 쓰여 있다는 것이다. 영어를 잘 하는 편은 아니지만 한국어와 영어 표현을 비교해 보며 읽는 재미도 있다.

예를 들면 이 책에 실린 시 중에 <글을 쓴다는 건>이라는 시가 있다. 내가 인상 깊게 읽은 시 중에 하나였다. 이 책은 시집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많은 내용을 옮기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만, 한국어 버전과 영어 버전을 비교해 보기 위해 그 시의 첫 번째 연만 여기에 옮겨 보고자 한다.

글을 쓰는 건 용기가 필요하다.

펜의 위력을 느끼며 한편으론

잘못 쓰여지면 속히 버리는

용기 또한 필요하다.

이 연의 영어 버전은 다음과 같다.

Writing takes courage.

I feel the power of the pen.

If it is written incorrectly,

discarded quickly.

That's also courage!

읽을 때 전혀 다른 느낌이 들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한국어 버전이 조금 더 담담하고 정적인 느낌이라면, 영어 버전은 조금 더 쾌활하고 밝은 느낌이라고 할까. 이렇게 두 가지 언어로 시를 읽어볼 수 있어서 신선했다.

저자가 오랫동안 써 온 글들을 한 번에 모은 것이기 때문에, 저자가 우울했던 시기에 쓴 시도 있고 행복했던 시기에 쓴 시도 있다. 그런 시들이 시간상의 순서와 관계 없이 섞여 있는 것도(저자의 의도이다) 특이하다. 감성적인 시도 있고, 무던한 시도 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무릎을 탁 치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는 시도 있다. 이 책은 시집이기도 하지만 긴 시간을 아우르는 한 사람의 기록이기도 하다. 저자의 감성을 얼핏 엿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체로 어렵지 않고 누구나 쉽게 읽고 느낄 수 있는 시들이라서, 읽고 싶을 때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 싶은 만큼 읽었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할 수 있다. 시만 실려 있는 것이 아니라 사진들도 함께 실려 있는데, 사진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는 사진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다. 저자의 의도대로 '하던 일을 멈추고 시집을 대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읽어 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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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의 힘 - 유튜브에 빠진 우리 아이 유튜브로 핵인싸 되기 부모되는 철학 시리즈 14
김윤수 외 지음 / 씽크스마트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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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고 유튜브나 할까? 이 말이 농담 같으면서도 농담이 아니게 되는 세상이다. 누군가는 정말 회사를 그만 두고 유튜브를 시작해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을 테니까. 유튜브는 진입장벽이란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성별, 나이, 국적을 막론하고 유튜브를 즐기거나 유튜브에서 자신만의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은 정말 많다. 요즘 초등학생들이 꿈꾸는 직업들 중 하나가 유튜버라고 할 정도다. 이 책은 키즈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어하는 자녀를 둔 부모를 타겟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유튜브 시장에 대한 전망, 유튜브 기획 및 촬영, 녹화하는 법, 유튜브로 성공하기 위한 기술 등에 대한 안내서이기도 하다. 키즈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아이가 없는 사람들도 충분히 도움을 받을 만한 책이라고 하겠다.

기성 세대의 사람들 중에서는 아직도 유튜브나 스마트폰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반면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은 새로운 컨텐츠를 더 빠르게 받아들이고 빠지는 경향이 있다. 당장 유튜브를 켜 보면 얼마나 많은 어린이들, 청소년들이 스스로의 채널을 만들어 영상을 올리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기성 세대가 걱정할 정도로 위험한 컨텐츠나, 타인을 향한 욕설 및 비방이 포함된 컨텐츠들 역시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린 세대가 유튜브를 접하고 유튜브에 빠져 있는 것을 무조건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책은 크게 유튜브 시장에 대한 간단한 분석과 직업으로서의 유튜브 크리에이터의 전망, 그리고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려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로 나뉘어 있다. 아마 이 책을 구매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안내서로서의 기능에 집중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나는 아직 퇴사하고 유튜버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지만, 유튜브 시장과 유튜브에서 공유되는 컨텐츠들 자체에 대한 흥미가 생겨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목차에서부터 알 수 있듯 채널을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영상 기획, 채널 유지 및 관리, 저작권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 등 유튜버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이 담겨 있다. 특히 영상 기획 같은 경우는 기획서 시안이 책 안에 들어 있기 때문에 참고하여 자신만의 기획서를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채널 이름 짓는 법, 구독자의 마음에 드는 썸네일 만드는 법,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법 등의 팁을 알려 주기도 한다.

책을 읽다 보면 대도서관이 "특정 콘텐츠를 일주일에 2~3회씩, 1~2년간 꾸준히 업로드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제 와서 그 정도는 당연한 성공을 담보받을 정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단순히 영상을 만들어서 올리는 사람이 주목을 받고 성공하기에는 유튜브에 너무 많은 채널과 영상이 존재한다. 호기롭게 유튜브를 시작했다가 성과가 나오지 않아 그만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수많은 채널, 영상들 사이에서 성과를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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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
장폴 뒤부아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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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타라는 스포츠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테니스나 스쿼시와 비슷한 경기라고 한다. 주인공인 폴은 펠로타 선수로 살았던 4년 간이 인생에서의 행복한 기간이었다고 말한다. 폴은 스스로가 저주받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와 함께 살았던 할아버지, 외삼촌, 어머니가 모두 자살을 선택함으로써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것이다. 우연의 반복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잔인한 일들이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집안에 뭔가 잘못된 피가 흐르고 있는다고 믿는다. 그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폴은 집을 떠나 마이애미로 도망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가업처럼 자신에게 내려오던 의사 일도 포기한 채로 펠로타 선수가 된다. 폴은 아주 뛰어나거나 주목을 받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경기를 하고 친구와 대화를 하고 가끔 배를 타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결국 저주에 가까운 그림자가 그를 찾아오는데, 그에게 남아 있던 마지막 가족이었던 아버지 역시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폴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복한 생활을 놓아 두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상이 책 표지나 출판사에서 소개하고 있는 <상속>의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이후의 전개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내용들이나 결말을 이 글에 언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가급적 사소한 부분들과 감상을 중점으로 글을 쓰도록 해야겠다. 폴의 유전자에는 뭔가가 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의 가문에 내려오는 저주받은 기운(?)인데, 아무래도 그 기운을 타고 나는 사람들은 '제대로 된'삶을 이어 가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 것으로 보인다. 폴은 그런 유전자로부터 도망치고 싶어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는 않다. 제목의 원어인 'La Succession'에는 '상속' 외에도 '계승'과 같은 뜻이 있다고 한다. 즉 대물림과 비슷한 의미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유전자란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아주 많은 부분을 결정짓는다. 폴처럼 심각하고 무거운 문제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신이 부모나 그 위로부터 이어받은 특질들 중에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하나쯤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유전자는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지언정 결코 근본적으로는 바꿀 수 없다는 점에서 조금 무섭기도 하다. 이 소설을 읽으며 영화 <유전>을 떠올렸는데, 가문에 내려오는 어떤 불길하고 무서운 것이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조금 비슷했기 때문이다.

<상속>은 조금 무겁고, 읽는 내내 죽음이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소설이다. 하지만 읽는 사람을 빨아들이는 힘이 있고 책장이 빨리 넘어가는 책이었다. 아마 이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폴이 가문의 저주를 극복할 수 있을지, 그러지 못할지에 주목할 것이다. 당연히 나도 그 점을 크게 신경 쓰면서 읽었지만 읽다 보면 폴의 삶 자체에 주목하게 된다. 그가 선택할 수 없었던 부분보다는 그가 선택한 삶의 방향에 조금 더 흥미를 갖고 싶었다. 세상에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삶의 방향을 어느 정도는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폴은 개를 기르고 유쾌한 친구와 우정을 쌓고 매력적인 여성을 만나 사랑도 한다. 그의 삶에 죽음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 때문에 그가 느끼는 크고 작은 행복들이 더 깊게 다가온다. 장 폴 뒤부아는 많은 작품을 냈고 큰 상도 받은 작가라는데, 지금까지는 그의 작품을 읽어 본 적이 없었다. <상속>은 새로운 작가를 알아 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삶과 죽음에 대해서, 영영 도망칠 수는 없는 삶의 고통과 불행들에 대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어떤 행복들에 대해서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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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를 찾아 떠나는 오지여행
홍상순.설태주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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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동물원과 아쿠아리움을 좋아했다. 평소에는 볼 일이 없었던 동물들을 직접 보고 나면 내가 사는 세계가 더 넓어진 것만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절대 다수의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이 동물들을 착취하고 학대하는 구조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나중의 일이었다. 어딘가에서 그런 말을 읽은 적이 있다. 동물을 보고 싶다면 동물들이 사는 곳으로 찾아가야 한다고. 종 보존의 차원에서 인간의 도움이 필요한 동물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거의 대부분의 동물들은 자연 속 자신들의 서식지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 동물들의 모습이 보고 싶다면 그들의 서식지로 인간이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고래를 찾아 떠나는 오지여행>은 말 그대로 고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떠나는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이 책은 읽고자 하는 사람의 목적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먼저, 특정한 종의 고래들을 실제로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여행 가이드북으로 읽을 수 있다. 두 저자가 다녀온 지역들, 인천공항을 기준으로 그 지역들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 및 코스, 그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고래의 종과 고래를 볼 수 있는 시기, 심지어 숙박 업소나 현지 식문화에 대한 간단한 정보들까지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제목은 '오지여행'이라고 하지만 반드시 오지에 속하는 지역들만 소개된 것은 아니다. 비교적 접근성 높거나 편리하게 갈 수 있는 곳들도 있고, 책에 소개된 지역들 중에는 한국의 울산도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 속 고래를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여행을 계획하는 데 큰 참고가 될 것 같다. 저자들이 직접 고래의 사진이나 영상을 찍었고, QR코드를 통해 동영상을 볼 수도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지역들 중에서는 고래 관광을 주요 산업으로 삼은 지역들도 있지만, 생계를 위해 할 수 없이 제한적으로 고래를 사냥해야만 하는 지역들도 있다. 후자에 속하는 지역들의 간략한 역사와 상세한 설명 역시 나와 있다. 또 바위나 땅 등에 고래 그림이 그려진 장소들도 소개되어 있어서, '고래 덕후'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만족하며 읽을 만하다. 비슷하게 생긴 고래들을 구분하는 법이나 각각의 고래 종들이 가지는 특성을 책 중간중간에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책을 다 읽고 나면 고래에 대한 상식들이 어느 정도 쌓이게 된다. 제일 눈에 들어왔던 그림 하나를 업로드한다. 자세한 사진과 그림, 영상들은 책을 통해 직접 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고래를 보기 위해 최대 정원이 8명인, 통통배에 가까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저자들 역시 그런 경험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작은 배 안에는 화장실이 없는데, 만약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놀랍게도 이 책에는 작은 배에 탔을 때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적혀 있다. 사소하지만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이 책에서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이니 여기에 직접 쓰지는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읽으면서 두 저자가 고래를 정말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를 위해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고래를 좋아하는 사람, 야생에 사는 동물들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 여행기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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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직장 내 괴롭힘인가요? - 직장 내 갈등 해결과 괴롭힘 예방 가이드북
문강분 지음 / 가디언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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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문강분은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연구하고, 예방책과 대책을 세우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 온 공인노무사다. 직장 내 괴롭힘은 형태와 강도는 다를지언정 어떤 직장에도 존재한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실제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이직하거나 퇴사하고, 심한 경우는 자살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있었음에도 그런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조명을 받은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책에서도 언급되듯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아직 채 1년도 되지 않았다.(2019년 7월부터 시행되었다) 비록 지금까지 수많은 피해자들이 있었겠지만, 이제라도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 사회 전반적으로 커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 저자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이 책, <이것도 직장 내 괴롭힘인가요?>는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와 그 심각성, 해결 방안에 대해 이야기하며 동시에 여러 가지 유형과 사례, 그리고 사례에 해당하는 법 조항들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한 번쯤은 보았을지도 모르는 현실적인 사례들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책에 소개된 사례를 전부 적을 수는 없으나, 인상깊었던 사례 정도는 간략하게 언급해도 될 것 같다. 간호사들의 '태움'을 다룬 사례가 인상적이었다. 태움이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간호사들의 사내 괴롭힘을 표현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간호사들의 이직률이 높은 데는 물론 힘든 근무 환경이 큰 영향을 끼치지만, 태움으로 인해 이직하거나 퇴사하는 간호사들도 많다고 한다. 태움의 가해자 입장이었던 50대 간호사가 직장 내에서 따돌림의 피해자가 된 사례가 책에 소개되었다. 해당 간호사의 공격적이고 거친 언행이 다른 많은 간호사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그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해당 간호사가 배척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개된 다른 사례들은 대부분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 문제의 경우에는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해당 간호사가 과거에 좋지 않은 태도를 보였다고 해도, 그게 그 간호사가 '따돌림당해도 싼' 사람이라는 것일까? 물론 이전에 저지른 잘못을 정당화할 수는 없겠지만,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는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경험이 많은 간호사가 직장에서 자연스럽게 배척되는 과정에서 업무의 효율성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결과적으로는 그러한 상황이 모든 이들에게 피해가 되는 건 아닐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책을 마치며' 부분을 보면, "하나의 괴롭힘 사건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해당 국가와 사회 및 문화적 환경, 기업의 구조와 전략, 업무의 특성, 행위자와 피해자의 관계와 대응이 상호작용한 결과입니다." 라는 문장이 있다. 이 문장이 참 인상적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의 원인을 가해자 개인에게서만 찾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가해자에게는 엄중한 책임을 묻고 처벌이 필요하다면 처벌 역시 가해야 한다. 하지만 가해자 개개인을 나쁜 사람으로 치부하는 것보다는 그런 가해 행위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소개된 사례들을 보면 직장 내 괴롭힘이 심각하지 않았던 단계에서 책임자나 관리자가 이를 묵인하거나 방조하는 경우가 매우 잦음을 알 수 있다. 또, 성희롱과 같은 행동들을 태연하게 저지르면서 그런 언행이 문제가 된다는 것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개개인이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나 방조자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기업 내 문화, 더 나아가서는 사회 분위기가 직장 내 괴롭힘을 용인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유의미하게 줄어들 것이다. 다행히 사회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저자와 같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노력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것도 직장 내 괴롭힘인가요?>는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 볼 만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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