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최초주택구입 표류기 - 2년마다 이사하지 않을 자유를 얻기 위하여
강병진 지음 / 북라이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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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나가 보면 부동산에 대한 책들이 참 많다. 부동산에 투자해서 큰 이익을 거두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 온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아파트를 사고, 자산으로서의 부동산에 투자할 여건이 되지는 않는다. <생애최초주택구입 표류기>의의 저자는 책에 의하면 '평균 임금 생활자'다. 대한민국에서 물려받은 자산이 없는 평균 임금 생활자들은 보통 서울 안에 있는 아파트를 살 수 없다. 자산으로서의 부동산이라는 걸 가질 수도 없다. 이 책의 저자는 집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가 찾는 건 투자 대상으로서의 부동산이 아니라 실제로 살 집이다. 어머니와 둘이 살던 저자는 어머니가 거주할 집을 사고 자신은 월세를 얻어서 독립할 계획을 세운다. 그래서 저자는 빌라를 구입하고 오피스텔에서 월세를 내며 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왜 집을 살 거면서 또 월세를 내는지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저자에게 그런 지적을 한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 역시 자신만의 생각이 있고 삶의 우선순위가 있다. 빌라를 사고 자신은 오피스텔로 독립하기로 한 저자의 선택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여튼 빌라를 사기로 마음먹은 저자는 여러 가지 장벽을 마주한다. 우선 실거주 목적의 빌라를 구매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이야기하는 책들은 거의 없었다. 세상에는 분명 자신이 살아야 할 빌라를 구매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그런 사람들을 위한 안내나 팁은 거의 공유되고 있지 않은 셈이다. 이 책은 실거주 목적의 빌라를 구입할 사람들을 위한 정보는 물론이고, 집과 공간에 대한 저자의 경험들, 그리고 독립과 자유에 대한 이야기까지 담고 있다.

집을 구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집 같은 건 이 세상에 없다. 가격이 괜찮고 깔끔하면 교통이 심각하게 안 좋다. 역세권에 가격이 싼 집은 사람이 살라고 만들어 놓은 집이 아니다. 깨끗하고 역에서도 가깝고 넓은 집은 당연히 무서울 정도로 비싸다. 저자와 어머니는 많은 집을 둘러보고, 많은 이들과 이야기를 하고, 흥정을 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집을 산다는 걸 두려워하기도 하고 서로 감정이 상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집을 산다는 건 사람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와 부담감을 가져다 주는 과정의 연속이다. 저자에게 집을 산다는 건 '전 재산을 다 끌어오고, 거기에 대출받을 수 있는 돈까지 다 긁어모아야 하는'일이다. 월세나 전세로 살 집을 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물론 월세나 전세로 여기저기를 전전하는 생활의 고단함은 별개의 문제지만. 한정된 자원으로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저자의 모습이 남 같지 않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 힘들고 피곤한 내용만 실려 있는 건 아니다. 이 책이 단순히 내 집 마련에 대한 현실을 일깨워 주기만 하는 책이었다면 나는 재미있게 읽지 못했을 것이다. <생애최초주택구입 표류기>의 제목은 왜 '표류기'일까. 표류기라는 말은, 나를 포함해서 자리를 잡을 만한 좋은 집을 찾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헤매며 떠도는 사람들의 삶에 퍽 잘 어울린다. 이 책은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편히 발을 뻗고 누울 수 있는, 내가 원하는 물건들로 채울 수 있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나의 공간. 세상에 그런 공간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그런 공간을 찾아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며 읽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더 많은 사람들이 좋은 공간에서 살 수 있기를. 자신에게 허락된 집이 없어 불안해하지 않기를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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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씨,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요? - 생각의 동반자, 소크라테스와 함께하는 철학 수업
허유선 지음 / 믹스커피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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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은 먹고 사는 데 도움이 안 되는 학문으로 여겨진다. 철학적으로 말하고 생각하는 능력을 낮잡아 보는 시선도 팽배하다. 왜 그럴까? 아마 철학이 쓸모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철학 같은 건 몰라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철학은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 사는 삶이 '잘 사는' 삶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학문이다. 돈을 많이 버는 게 잘 사는 걸까?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인기를 누리면 잘 사는 걸까? 분명한 오답은 있을지 몰라도 아마 정답은 없을 것이다. <소크라테스 씨,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요?>는 소크라테스 철학을 통해 스스로의 사고를 확장시키고 자신과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책이다. 소크라테스 철학에 대한 책이지만 복잡하고 전문적인 내용보다는 어떻게 하면 철학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를 어렵지 않게 이야기하므로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다. 

 

 소크라테스 철학은 '한계 없는 물음'을 통해 대상을 깊이 파고든다는 특징이 있다. 예를 들면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의문을 해결하고 싶다면, 행복이란 뭘까? 정신적으로 풍족한 상태가 행복이 아닐까? 그렇다면 정신적으로 풍족한 상태인지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와 같이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정신적으로 풍족한 상태를 '잠을 자려고 누웠을 때 아무런 고민거리도 떠오르지 않는 상태'라고 정의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고민이란 뭘까?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다 보면 이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들을 떠올릴 수 있다. 물론 생각하는 과정에서 답을 찾지 못할 가능성도 높지만,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저자가 말하는 철학적 사고의 기초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답할 제대로 된 근거를 찾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건 자연스럽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기술이 부족함을 절실하게 깨달았을 때 우리는 더 나은 수준의 기술을 얻는 일에 몰두한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정은 우리를 앎으로 나아가게 한다." 철학적으로 사고하려 노력한다고 해서 모든 고민들이 갑자기 술술 잘 풀리지는 않는다. 혼란은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씨,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요?>는 철학 입문서다. 소크라테스 철학을 쉽게 마주하는 방법뿐 아니라 철학사 공부를 시작하는 법에 대해서도 알려 준다. 책에 따르면 철학사에서 반복적으로 다뤄지는 주된 물음은 존재론과 인식론, 그리고 가치론 세 가지다. 여기에서 존재론이란 '있음'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생명이란 있을까? 살아 있는 것과 살아 있지 않은 것은 분명 다르지만, 생명이 있고 없음에 따라 그 두 가지가 구분되는 것일까? 이런 물음들은 존재론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인식론이란 "인식론은 오랫동안 생각의 내용을 뜻하는 믿음, 거짓이 아닌 참, 참이 되게 만드는 근거와 검증으로서 정당화에 관한 문제를 다뤄왔다." 즉 앎을 주제로 하는 물음들이 인식론에 속한다. 우리가 무엇을 알고, 그것이 참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아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치론이란 말 그대로 의미와 가치에 대한 물음을 다룬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무엇이 의미 있고 무엇이 의미 없는지, 어떤 게 가치 있는 삶인지와 같은 물음들은 가치론의 영역에 속한다. 

 

 사람들은 보통 철학을 어렵게 생각한다. 철학에 관심이 있어 공부하려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소크라테스 씨,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요?>는 정말 내가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부터 생각해 보도록 도와 주는 책이다. 철학을 통해 자신의 삶을 지금까지와 조금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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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에 대해 말하자면 - 김현진 연작소설
김현진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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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내 이야기다. 아니, 우리의 이야기다. 책을 읽으며 그 생각을 했다. 내 이야기거나, 내 친구의 이야기거나, 건너 들은 어떤 여성의 이야기거나, 뉴스에 나온 다른 여성의 이야기라고. 내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임에도 감당하기는 힘든 일들이 있다. 사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은, 차마 듣지 못하겠는,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일들을 외면하지 못한다. 그런 일을 겪는 여성들은 곧 나 자신과 같기 때문이다. 소설가 박서련은 이 책의 추천사에서 이런 말을 한다. "이 이야기들이 남의 일이었으면 좋겠다. 작가와도 독자와도 상관없는 세계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들을 그린 것이라면 좋겠다." 하지만 우리는 이 이야기들이 우리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을 외면할 수 없을뿐더러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정아와 지현, 정정은 씨, 영진, 윤정화, 지윤, 화정, 수연, 그리고 숙이. 이들은 어딘가에서 정말 살아 숨쉬고 있을 것만 같다.

 

 나는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이 문제작이라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문학은 현실을 비춰 보인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동창에게 다단계 사기를 당하고 갈 곳을 잃어버리거나, 오랜 시간 뒷바라지를 해 온 애인에게 버림받거나, 믿고 사랑했던 애인이 알고 보니 유부남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거나, 공중화장실에서 낯선 남자를 마주친다. 위에서 질리도록 말했지만 이런 일들은 정말 일어난다.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쓴 소설이 어째서 문제작인가. 하지만 사람들이 이 소설을 문제작이라고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알 것 같다. 아직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작가를,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작가는 여기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삶을 '밋밋할 정도로 평범하다'라고 말했다. 소위 말하는 '불행 포르노'로 소비될 만한 여성들의 삶에 대해서는 쓰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지극히 밋밋할 정도로 평범한 여성들의 삶에 대해서도 듣고 싶지 않아한다. 그런 사람들이 많은 세계에서 이 소설은 당연하게도 문제작이 된다. 어떤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나서 너무 과장한 게 아니냐고 할 게 뻔하다. 이런 여자가 어디 있냐고, 이런 남자가 어디 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이전에 여성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 많은 책들 역시 그런 평가를 받아 왔다. 물론 그런 말을 할 만한 사람들은 애초에 이 책을 읽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모든 단편이 인상적이었다. <정정은 씨의 경우>의 주인공 정정은 씨는 어떤 일을 겪고 나서 성격이 뒤틀려 버린다. 정정은 씨는 자신이 야비한, 마음이 썩어 버린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렇게 독백한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음흉한 사람이 되었을까. 타인의 불행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 되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정정은 씨는 누군가에게 잘못을 했고 상처를 줬다. 정정은 씨를 그런 사람으로 만든 이들은 정정은 씨에 대해서 생각하기나 할까. 자신이 마음과 시간, 돈을 쏟아부은 대상에게 배신당하는 여성들을 누가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여성들이 자신보다 힘 없고 약한 다른 여성들을 가해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에는 다양한 여성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에는 그다지 훌륭하거나 멋지지 않은 여성들도 많다. 어떤 여성들은 어딘가 좀 이상해 보이기까지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상한 여성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매우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재미있게 읽었다. 세상에는 멋지고 훌륭한, 남에게 본보기가 될 만한 여성들뿐 아니라 뭔가를 성취하지 못하거나 어딘가 이상하거나 비열한 여성들도 많이 살아가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여성들의 이야기도 해 줬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한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집을 읽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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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만세 - 2020 6월 책씨앗 추천도서, 2020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선정도서, 2020 7~8월 학교도서관저널 추천도서
임정연 지음 / 산지니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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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감상을 품게 만드는 소설이다. 걸리는 데 없이 휘리릭 잘 읽히긴 한다. 다만 좋게 말하면 고전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조금 진부한 설정들이 좀 있다. 소설에는 너무나 예뻐서 전교생은 물론 중학생들에게까지 주목과 동경을 받는 어떤 소녀가 나온다. 모두가 아는 그 소녀에게 주인공인 평재만 관심이 없다. 주인공의 곁에는 여자 애들의 정보를 꿰고 다니는 친구가 있고, 그 친구는 주인공에게 어떻게 그 애를 모를 수가 있냐고 경악한다. 그 여자 애는 자신에게 고백한 많은 남자들을 전부 다 차 버렸고, 어느 날부터 갑자기 주인공과 엮이게 된다. 그 밖에도 조금 뻔한 이야기가 좀 나온다. 축구부 주장을 따라다니면서, 주장이 좋아하는 여자 애를 째려보는 여자 팬 클럽이라거나. 다른 학생들에게 존댓말을 듣는 '학생회장'과 그 학생회장에게 음료수를 따라서 가져오는 1학년 여학생 같은 것. 이미 나는 오래 전에 청소년 시절을 지나오긴 했지만, 요즘의 청소년들에게 이런 소재나 묘사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 예쁜 소녀의 별명은 '두 마디'인데, 주인공은 '두 마디'와 몇 번의 대화(사실 대화도 아니다)를 나누었다는 이유로 '두 마디'에게 차인 모든 남학생들에게 복수를 당한다. 작중의 묘사에 따르면 두 마디는 자신에게 고백하는 모든 남자들에게 싫다는 말로 거절을 고했다고 한다. 주인공이 두 마디와 사귄다는 것 자체가 사실이 아니지만, 주인공이 두 마디와 사귀든 말든 두 마디에게 차인 남자들에게 주인공을 괴롭힐 자격이 있단 말인가? 그런 부조리한 상황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행동도 영 이해가 가지 않는다.

너무 부정적인 평가만을 쓴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마음이 복잡해졌냐, 하면 이 소설에는 확실한 강점이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학교 생활을 다룬 부분이나 두 마디라는 여학생의 존재가 그렇게 매력적이지는 않다. 이 소설에서 좋다고 느꼈던 부분은 거의 주인공의 할아버지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북에 가족을 두고 온 주인공의 할아버지는 이산 가족 상봉을 기다린다. 아침마다 산을 오르고 주말마다 봉사 활동을 다니는 그는 몸도 마음도 건강한 노인이다. 주인공은 할아버지를 따라 혼자 사는 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나눠 주고, 달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집을 고쳐 준다. 독자는 그런 주인공과 주인공의 할아버지를 따라 외롭고 힘든 이들이 사는 동네로 찾아간다. 이 소설의 제목인 <지옥 만세>에서 알 수 있듯 어떤 이들에게는 삶이 지옥이다. 그들은 살 곳을 잃고 쫓겨나 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한다. 작고 허름한 방에 살면서도 스티로폼 박스에 채소를 기르는 누군가의 삶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치워 버려도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주인공은 그들보다 안온하게 살아가지만 그들도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안다. 지옥 같은 세계일지언정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아는 소년은 누군가에게서 함부로 대해지는 소녀를 만난다. <지옥 만세>에는 연대와 공생이 있다.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잊어서는 안 되는 가치가 녹아 있다.

호불호가 갈릴 법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하지만 확실히 가볍게 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두 마디'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리는 소녀, 유시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소설 안에는 시아가 갖는 감정의 흐름, 시아의 삶에 대해서는 그다지 잘 드러나 있지 않다. 신비스럽고 아름답지만 강한 소녀, 이런 말로만 수식하고 끝내기에 시아는 아까운 캐릭터다. 어쨌든 세상의 모든 시아와 평재가 너무 힘들지 않은 청소년 시절을 보내길 바란다. <지옥 만세>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지옥을 헤쳐 나가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모두의 삶이 행복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누구의 삶도 지옥 같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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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너의 마음이 궁금해 - 하나부터 열까지 궁금한 것 투성이인 우리 아이의 행동
김지은 외 지음 / 북폴리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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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너의 마음이 궁금해>는 엄마들이 육아를 하며 갖는 궁금증들에 대해 전문가들이 답을 해 주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생활습관부터 사회성, 부모와의 애착 관계, 성교육까지 육아에 관한 많은 조언들이 실려 있어 아이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부모들이 참고하고 배우기 좋은 책이다.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다른 부모들과 고민을 공유하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혼란을 느끼는 부모들도 많다는 모양이다. 인터넷, 책, 전문가의 글까지 육아에 대한 수많은 정보가 있는데도 '우리 아이'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어른들도 그렇듯 아이들도 아이마다 다 다르다. 백 명의 아이에게 같은 말을 들려 준다고 해서 백 명의 반응이 전부 같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들은 아동심리상담의 전문가로, 자신들의 지식과 경험을 이 책에 풀어 놓았다.

몇몇 질문에 대한 저자들의 대답을 읽다 보면 공통적인 내용들이 있다. 먼저 아이는 아무리 어른스러워 보여도 아이는 아이라는 사실을 부모가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이는 어리고 미성숙한 존재다. 혼자서 옷을 잘 입고 부모의 말을 잘 이해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린다고 해도, 아이가 어른이나 다름없다는 착각이나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 어른의 기준으로 보면 아이는 종잡을 수 없고, 불합리한 행동을 하기도 하며,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한다. 나이에 비해 일반적인 발달 과정을 거치지 못하는 아이라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발달해 가는 과정을 두고 부모가 너무 걱정하거나 힘들어할 필요는 없다. 책에 따르면 아이가 조금만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여도 조바심을 내고 스트레스를 크게 받는 부모들이 많다. 물론 아이를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런 태도가 과잉보호로 이어질 경우 아이에게도 별로 좋지 않다고 한다. 이 책에는 '한 번 말해서 듣는다면 로봇을 키우는 것이다'라는 소제목이 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이 문장을 읽고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어른들도 나쁜 습관을 고치거나 좋은 습관을 새로 만드는 걸 어려워한다. 아이들이 그렇게 쉽게 변할 리가 없다. 당연히 연습과 시간, 적절한 훈육이 필요한 것이다. "'맞아, 내 아이는 세상의 빛을 본 지 4년밖에 되지 않았지'라는 식으로 생각을 정리하면 아이에게 턱없이 기대하고 재촉하는 일이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이 책에 실린 이 문장이 많은 부모를 안심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이가 지나치게 공격적이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행동하려고 해서 걱정이라는 부모도, 아이가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를 전혀 말하지 않고 참기만 해서 걱정이라는 부모도 있다. 아이마다 성향이 다르다고는 해도 지나치게 충동적이거나 지나치게 스스로를 억압하는 건 당연히 좋지 않다. 가장 중요한 건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공감해 주고 아이가 적절한 선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화가 나면 남을 때리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는 아이들의 경우에는, 먼저 "~~가 ~~해서 화가 났구나."와 같은 말로 아이의 감정을 부모가 알아 준다는 걸 표현한다. 누군가를 때리거나 물건을 부수는 대신 다른 방법을 찾아 주는 것도 좋다. 그릇을 던지는 아이에게 그릇은 던져선 안 되는 물건이고, 대신 공은 마음껏 던져도 좋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반면 화가 나거나 슬퍼도 말로 표현하지 않는 아이의 경우에는 스스로의 감정을 부모에게 표현해도 괜찮다는 사실을 알려 주어야 한다. 그런 아이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면 부모에게 미움을 받거나 부모가 화를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책에는 분리불안이 있는 아이, 짜증스러워하는 아이, 집 밖과 집 안에서의 태도가 다른 아이, 거짓말을 하는 아이, 친구가 없는 아이, 성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은 아이, 동생을 질투하는 아이 등 이런저런 사례가 나와 있다. 저자들은 아이와 놀아 주는 방법이나 아이의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 주는 방법, 리더십 있는 아이로 자라게 하는 방법에 대한 조언을 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부모도 사람이기에 실수를 하고, 부모의 실수나 잘못을 아예 만회할 수 없는 건 아니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이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는 하지만 부모들 또한 적당히 편안한 자세로 아이들을 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육아에 관해 이런저런 궁금증이 있는 부모들이라면 이 책에서 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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