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일 잘할 수 있다 - 유능한 직장인의 50가지 성공 습관
기토 마사토 지음, 조해선 옮김 / 리브레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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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나는 일을 잘 미루는 편이었다. 학교에 다닐 때는 숙제나 과제를 항상 마감 직전까지 붙잡고 있곤 했다. 일을 시작하기까지 워밍업을 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할 일이 많을 때는 우선순위를 제대로 정하지 못하는 바람에 해야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하기도 했다. 분명 금방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발목을 잡는 일도 허다하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은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도 일 잘할 수 있다>는 일을 잘 하는 노하우를 모아 놓은 책이다. 사실, 일을 잘 하는 법에 대한 책은 한두 권이 아니다. 나는 모든 종류의 자기계발서를 읽기 전에 이런 생각을 한다. '이 책에서 하나라도 건질 수 있다면 다행이다.' 책은 책일 뿐이다. 아무리 옳은 말들을 늘어놓은 책을 읽어도 읽고 실천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리고 옳은 말들을 구구절절 쓰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결국 이런 책은 읽는 사람이 정신을 차릴 수 있게 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꽤 괜찮았다. 확실히 하나를 건질 수 있는 책이었다. 책은 크게 일 처리가 느린 이유, 일을 잘 하는 사람의 사고방식, 시간 절약법, 행동법, 그리고 생활 습관으로 나뉜다. 이 책의 팁들은 기본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을 타겟으로 쓰였지만, 공부나 집안일 등에도 응용할 수 있다.

가장 와 닿았던 내용은 먼저 처리할 일과 뒤로 미뤄야 하는 일을 구분하는 방법이었다. 저자는 업무의 긴급성과 수고로움에 따라 일을 네 가지로 분류한다. 1. 긴급성이 높고 손이 많이 가는 일. 2. 긴급성이 높고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일. 3. 긴급성이 낮고 손이 많이 가는 일. 4. 긴급성이 낮고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일. 이렇게 두고 보면 당연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1번이고, 2번도 긴급성이 높으면서 빠르게 해치울 수 있기 때문에 우선순위의 앞쪽에 둘 만 하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은 3번이다. 3번과 같은 일을 미루게 되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긴급성이 높고 손이 많이 가는 일, 즉 1번이 된다. 이런 일은 '지금은 작아서 눈에 띄지 않을지라도 머지않아 거대한 괴물로 변해 우리를 괴롭힌다'. 특히 습관적으로 일을 미루는 사람이라면 더 주의해야 한다. 덧붙여 이 책의 1장을 보면 소제목 중 '마감일은 제출일이 아니다'라는 문장이 있다. 조금 과장하자면, 이 문장을 읽은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은연중에 마감일을 제출일이라고 생각하는 바람에 일어났던 수많은 해프닝들을 떠올리면, 역시 마감은 빨리 하면 빨리 할수록 좋다.

하지만 마감을 빨리 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라면 이런 책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가 알아서 마감을 빨리 하고 일을 잘 한다면 일을 잘 하는 법에 대한 책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위에도 말했지만 나는 일을 시작하기까지 워밍업을 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유는 크게 의욕이 나지 않아서, 집중이 잘 되지 않아서로 구분된다. 집중이 머리의 문제라면 의욕은 마음의 문제인데, 저자는 의욕에 관해 뇌 연구자인 이케가야 유지의 말을 인용한다. "의욕이 없어서 시작을 못 하겠다는 말은 '안 하는 사람의 변명'에 불과하다. 애초에 의욕은 처음부터 생겨날 수가 없다. 어떤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비로소 솟아나는 것이다." 즉, 하기 싫다는 생각을 그만두고 일단 시작하라는 말 되시겠다. 집중에 관해서는 자신만의 집중 루틴을 만들라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한 입 베어 먹으면 그 어떤 귀찮은 일도 바로 시작하게 만들어 주는 마법의 음식'을 정하라는 것이다. 디저트를 좋아한다면 초콜릿이나 마카롱 같은 게 좋고, 에너지 드링크 같은 음료도 괜찮다. 집중이 필요한 일을 시작하기 전에 마법의 음식을 먹는 걸로 몸과 마음에 신호를 주라는 의미다. 이 팁은 당장 내일부터 시험해 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도저히 따라할 수 없을 것 같은 팁들도 있다.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출근하기 전 카페에서 미리 일을 한다든가, 일을 게임처럼 즐긴다든가. 하지만 이런 방법들이 맞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직장인에게 일을 잘 하게 된다는 건 단순히 맡은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이 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인생에서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일을 하며 보내기 때문이다. 즉 직장에서의 생활은 삶의 질에 너무나도 큰 영향을 끼친다. 스스로의 업무 능력에 회의를 느낀다거나, 좀 더 일을 잘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럼 나는 '마법의 음식'을 뭘로 하는 게 좋을지 고민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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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세상에 왔지 - 내 인생에 주어진 단 한 가지 의무
이지현 외 지음 / 내가그린기린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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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세상에 왔지>는 아홉 명의 저자들이 각자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이런 제목의 책을 손에 드는 사람이라면 아마 행복에 대해 깊이 고민해 봤거나, 행복해지고 싶다고 간절히 바라고 있지 않을까. 아홉 저자들은 사실상 접점이랄 게 딱히 없다. 성별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고, 성장 환경도 다르다. 어떤 저자는 뱃속에 여덟 달 동안 품어 왔던 아이를 잃었다. 어떤 저자는 큰 병을 앓았고, 어떤 저자는 여러 번의 이혼을 경험했다. 어떤 저자는 어렸을 때 부모의 이혼을 겪으며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그들은 크고 작은 고통을 겪으며 살아왔음에도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행복이라는 개념이 그들과 독자들을 이어 준다.

이 책을 읽으며 '킨츠기'라는 말을 알게 되었다. 킨츠기란 그릇 수선, 깨진 도자기를 메꾸거나 이어 붙이는 행위를 말한다. 흔히 마음을 도자기에 비유한다. 보통 한 번 깨져 버린 그릇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의미로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깨진 도자기도 수선할 수 있다. 그릇을 어떻게 수선하느냐에 따라서 깨지기 이전보다 더 아름답게 만들 수도 있다. 누구나 살다 보면 마음에 금이 가는 것만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스스로가 산산조각났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본의 킨츠기 작가 나카무라 구니오는 저서 <킨츠기 수첩>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완벽하기를 요구하지 않을 때, 깨진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 세상의 가치관은 변하기 시작합니다." 완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크고 작은 실수나 상처들이 우리를 깨지게 만들었다고 해서 깨진 마음을 평생 안고 살아갈 필요는 없다.

중간에 마음이 찔리는 내용도 있었다. 소제목은 '하고 싶은 일을 잘하는 방법'.

1. 매일 보고 매일 그려라.

2. 그림 그리는 친구 혹은 스승을 만들어라.

3. 관찰하고 분석하고 실험하라.

4. '그림, 한 달 안에 마스터하기!' 이런 건 없다. 그림 실력은 투자한 시간에 비례한다.

...

10.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은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게 한다. 첫발이라도 움직인 후에 걱정해보자.

잘 하고 싶은 게 많았다. 그림도 잘 그리고 싶고, 글도 잘 쓰고 싶고, 외국어도 잘 하고 싶고, 운동도 잘 하고 싶고.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매일 노력하기보다는 방 안에 가만히 누워서 '오늘 자고 일어나니까 갑자기 그림을 잘 그리게 됐으면 좋겠다.'하고 생각하곤 한다. 그렇게 생각만 해서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 리가 없다. 이 내용을 쓴 저자는 마음 속에 쌓인 부정적인 요소들을 배출하는 방법이 그림 그리기였다고 한다.

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서, 재미있는 책이 읽고 싶어서,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다. 나는 이 책을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세상에 왔지>라는 제목이 나를 잡아끄는 바람에 읽게 되었다. 뒷표지에는 이런 문장이 인용되어 있다.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오직 행복하게 살라는 한가지 의무만 있을 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지." 헤르만 헤세가 남긴 말이라고 한다. 행복하게 산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행복에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들을 하다 보면 어제보다는 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나중에 언젠가는 행복해지기 위한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나오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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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의 힘으로 꽃은 핀다
최광기 지음 / 마음의숲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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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에세이 읽는 걸 좋아하게 됐다. 물론 모든 에세이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어떤 에세이들은 내가 다른 사람의 삶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저자 최광기는 사회자다. 특히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거리에 모인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낸다. <목소리의 힘으로 꽃은 핀다>는 저자가 수십 년 동안 다른 이들의 목소리가 되어 주면서 겪고 느낀 것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수많은 촛불집회는 물론이고 장애인 차별 금지 집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에 열린 수요시위, 노숙인 추모 문화제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목소리가 필요한 자리라면 어디든 빠지지 않는다. 저자가 얼마나 많은 걸 보고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왔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책의 내용은 전혀 어렵지 않고 머리를 비운 채로 가볍게 읽을 수 있을 정도지만,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가볍지만은 않다.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긴 책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다른 이들에게 말을 잘 하는 법에 대해 가르칠 일이 많았다고 한다. 김근태 전 장관의 연설 코칭을 맡기도 했고, 시 의원 출마 준비를 하는 환경미화원들에게 연설을 가르치기도 했다. 공무원 연수원에서 자기소개 실습 진행을 맡은 적도 있다. 실습을 할 때는 자기소개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살다 보면 가끔 자기소개를 할 일이 있다. 새로운 모임에 나갈 때라거나, 회사를 옮겼을 때, 모르는 사람을 소개받는 자리와 같이 말이다. 그럴 때마다 대체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 할 말이 없기도 하고, 너무 뻔한 말만 떠오른다. 그렇다고 특이한 말을 해서 괜히 사람들의 눈 밖에 나고 싶지도 않다. 그러다 보면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다. 게다가 나서서 말을 하려는 사람을 아니꼽게 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저자가 실습을 갔을 때도 어릴 적 회장 선거에 나가 떨어졌다가 어머니에게 "그러게 계집애가 그런 데 나가서 망신이나 당한다"라는 말을 들은 이후로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걸 두려워하게 된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 사람이 지금은 그 기억을 극복했기를 바랄 뿐이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자신의 의견이나 말하고자 하는 바를 조리 있게 타인에게 전달하는 사람은 말을 잘 하는 사람이다. 다소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울릴 줄 아는 사람도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닐까. 물론 사회 보는 일을 업으로 하는 저자는 두 가지 모두 해당될 것이다. 저자는 다른 사람에게 연설이나 말하는 법을 가르칠 때 먼저 그 사람의 장점을 봐 준다고 말한다. 일단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는 태도로 말할 수 있다면 그 다음 단계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진심을 다해 세심하게' 칭찬하는 자세다. 진심이 담긴 구체적인 칭찬은 사람을 바꿔 놓는다. 그리고 그렇게 바뀐 사람은 더 이상 이전의 자신과는 같지 않다.

사실 이 책에 훈훈하고 따뜻한 이야기들만 실려 있는 건 아니다. 읽기 괴로운 이야기, 가슴이 답답해지는 이야기, 왠지 모르게 화가 나는 이야기들도 있다. 그야 사회적 약자들이 있는 자리를 찾아다니는 저자가 행복하고 즐거운 일들만을 겪을 수는 없기에 당연한 일이다. 힘든 일을 겪은 사람들의 사연을 읽다 보면 공감이 되기도 하고 마음 한 구석이 먹먹해진다. 그런 갑갑한 현실을 이겨 내도록 돕는 게 바로 연대의 힘, 저자가 말하는 목소리의 힘이다. 이 책의 제목은 <목소리의 힘으로 꽃은 핀다>인데, 여기서의 꽃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불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상을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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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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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독자들은 미나토 가나에를 <고백>으로 처음 알았을 것 같다. 나도 그랬다. 처음 한국어로 번역된 책들이 <고백>과 <속죄>였다. 미나토 가나에의 치밀하고 날카로운 이야기에 빠져 한동안 번역되어 나오는 책들을 먹어치우듯이 읽었다. <왕복서간>, <경우>, <모성>, <소녀>, 비교적 최근에 읽었던 <유토피아>까지 내 기대에서 벗어나는 작품이 없었다. 나는 추리가 주가 되는 미스터리 소설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을 읽으면서 사건의 범인을 찾고 트릭을 밝히는 미스터리보다는 인물들의 감정과 동기에 주목하는 미스터리 소설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들 중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람과 사회 사이의 복잡한 문제들을 섬세하게 표현해 내는 작품들이 많다. 모성이 신성하고 절대적인 것이라는 편견에 반박하는 <모성>이나, 죄의식에 시달리는 이들의 삶을 서늘하게 그린 <속죄>와 같은 소설들이 그렇다. 가장 유명한 작품인 <고백>역시 (아주 납작하게 요약하자면)복수에 대한 이야기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조각들>은 외모 지상주의와 관련된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 한 소녀가 자살하고 미모의 성형외과 의사인 다치바나 히사노는 소녀의 주변인들을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듣는다. 죽은 소녀의 이야기는 아주 큰 퍼즐을 맞추듯 천천히 완성된다. 죽은 소녀는 히사노의 딸 뻘이고, 히사노가 자란 지역에서 자랐다. 히사노와 다른 이들의 대화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건 소녀의 이야기뿐이 아니다. 소설을 읽다 보면 외모를 가지고 다른 이들을 줄세우는 사람들의 모습, 그렇게 세운 줄에서 뒤에 서 있다고 평가받는 이들에 대한 주변의 멸시와 혐오, 저열한 악의에 대해 엿보게 된다. 멀쩡해 보이다가도 외모와 관련해서는 뒤틀린 사고방식을 드러내는 인물들이 소름 끼치다가도, 그들의 모습이 현실과 그리 동떨어져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녀가 자살한 이유와 소녀 본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이 소설의 핵심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쓰지 않는다. 소설 뒷표지에 인용된 몇 개의 문장만 봐도 이 소설이 하고자 하는 말을 대강은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모델처럼 예쁜 애라며?", "아니 학교에서 제일 뚱뚱하다고 들었는데". 당연히 자살한 소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외모가 당연히 그가 자살한 이유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소설을 읽어 보면 죽은 소녀의 외모에 관해서는 생각보다 복잡한 일들이 얽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건 '예쁜 애가 자살했다', 혹은 '뚱뚱해서 자살했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문제다.

요즘 사회에서 개인이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외모 강박에서 벗어나기란 굉장히 어렵다. 온갖 매체에서 더 예쁘고 더 마른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과체중인 사람들에게는 '살을 빼면 예쁠/잘생겼을 것 같다'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칭찬이랍시고 한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여학생들에게 취업을 하고 싶으면 성형수술을 하라고 말하는 교사가 정말로 있었다. 지금의 학생들이라고 얼마나 다른 말을 들을까. 머리로는 다들 이렇게 뒤틀린 기준에 맞춰 스스로의 외모를 검열할수록 사회는 점점 더 좋지 않은 방향으로 향할 거라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외모의 선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부당한 일을 겪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외모 강박에서 벗어나고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은 옳은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조각들>의 띠지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키가 큰 것도 작은 것도, 뚱뚱한 것도 마른 것도, 눈이 큰 것도 작은 것도, 코가 높은 것도 낮은 것도 전부 표면적인 개성일 뿐 그걸로 전부를 판단하는 건 천박한 행위라고 마음속 깊이 생각하게 될……리가 없죠."

하지만 이대로 모두가 외모 강박의 굴레에 갇혀 영원히 고통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분명히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느린 속도로 움직이고 있을지언정 분명히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남들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뭔지 깨닫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부끄럽지만, 나도 아직은 외모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신경이 쓰일 때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서서히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익숙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부분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이게 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더 긍정적인 쪽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조각들>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당신이라는 조각이 딱 들어맞는 장소는 반드시 있으니까요." 이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 말을 하는 사람의 존재가 꺼림칙하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문장으로 훈훈하게 끝맺기에 이 이야기는 너무 잔인하다. 하지만 잔인함에도 눈을 돌릴 수 없는 이야기가 있는 법이다. 미나토 가나에의 다른 소설들이 대개 그렇듯, 이 소설 역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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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비혼주의자로 잘 살게요 - 연애 좀 해 본 작가의 쏘-쿨한 비혼 에세이
홍경희 지음 / 바른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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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결혼을 꼭 해야 하는 걸까? 내 부모 세대까지만 해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당연히 '그렇다'였다. 가끔 다들 어떻게 그렇게 당연하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른 건지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좋은 의미로도 그렇고, 나쁜 의미로도 그렇다. 내가 태어났을 때 내 부모는 지금의 나보다 어렸다. 그 나이에 어떻게 결혼을 하고 나를 가질 생각을 했을까? 오랫동안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랑 역시 결혼의 이유였겠지만, 결혼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다면 내 부모는 결혼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 부모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랬으리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로 생각하는 것과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일로 생각하는 건 아예 다른 일이다. 요즘에는 점점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개인적인 이유 때문일 수도 사회경제적인 이유 때문일 수도 있겠다. 중요한 건 예전과는 달리 결혼이 인생의 필수 코스가 아니라 선택 가능한 옵션이 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합리적 비혼주의자로 잘 살게요>의 저자 역시 비혼주의로 삶의 노선을 정했다. 정확히는 '비무일'(비혼, 무자녀, 1인 가구)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비무일'로서의 삶, 비혼주의자로 살아가기로 한 이런저런 이유들, 비혼주의자로 알차게 잘 살아가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이 책의 내용과 관련된 통계들이 첨부되어 있다.

비혼주의자라고 하면 주변에서 꼭 하는 말들이 있다. 나중에 늙어서 외롭지 않을 거 같아? 아프면 수발은 누가 들어 줘? 이런 말들이다. 저자 역시 그런 말을 한두 번 들어 본 게 아닌 모양이다. 결혼 상대와 자녀를 나중에 내 수발 들어 줄 사람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이 잘못됐다는 것부터 지적해야겠지만, 그런 사람들과 그런 이야기를 해 봐야 한도 끝도 없다. 저자는 '마르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마르코는 수십 년 뒤에 개발될 고성능 AI 집사 로봇이다. 지금의 인공지능 스피커가 수십 년 후에는 더 발전하고 정교해지지 않을까. 노년의 외로움이나 불편함을 해결할 만한 기술들도 더 많이 나올 것이다. 지금을 기준으로 수십 년 후를 생각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마찬가지로, 저자는 수십 년이 지나면 부상이나 질병이 지금처럼 사람의 발목을 잡지 않을 거라고 예상한다. 벌써부터 노년에 내 병 수발을 들어 줄 사람이 없다는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연애나 섹스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한다. 자신은 연애와 섹스가 간절하고 애인이 늘 고팠던 시기를 거쳐, 안정적인 장기 연애를 꿈꿨던 시기를 지나 지금에 다다랐다고 한다. 그러나 수십 년 장기 연애의 꿈은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저의 입장에서는, 상대가 너무 과도하게 의존하려 들거나, 무기력 비관주의이거나, 다른 건 다 좋다가도 여성주의 입장에는 유독 심한 거부감을 표현한다든가, 바람기를 보인다든가, 때론 같이 있을 수 없게 상황이 너무 어긋나는 등의 이유가 있었어요.' 연애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정적인 장기 연애에 대한 꿈을 꾼 적이 있지 않을까. 항상 애가 타고 불이 타지는 않더라도 서로를 따뜻하고 든든하게 지지해 줄 만한 파트너와의 관계. 하지만 확실히 그런 것도 영 쉬운 게 아니다. 사람을 오래 만나다 보면 그 사람의 결점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게 마련이다. 물론 누구나 결점이야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절대 이해하고 넘어갈 수 없는 결점도 있는 법이다. 저자는 파트너와의 관계 맺는 노하우를 이야기하면서 내 인생은 나만의 인생이라는 걸 잊지 말자고 강조한다.

<합리적 비혼주의자로 잘 살게요>의 특징은 구어체로 쓰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마치 저자와 직접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비혼주의, 연애, 섹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망설임 없이 털어 놓는 이 책은 일단 꽤 재미있다. 뒷표지를 보면 어떤 사람들에게 이 책이 필요한지를 적어 놓은 체크리스트가 있다. 그 중에 이런 문장들이 특히 눈에 들어왔다. '남의 인생 조연 말고 내 인생의 주연으로 살아야 행복하다.', '연애에만 다 걸지 않고 내 원래 인생도 계속 관리하는 균형감을 원한다.' 자기 인생을 꾸리며 연애도 잘 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읽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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