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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들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0년 7월
평점 :
대부분의 독자들은 미나토 가나에를 <고백>으로 처음 알았을 것 같다. 나도 그랬다. 처음 한국어로 번역된 책들이 <고백>과 <속죄>였다. 미나토 가나에의 치밀하고 날카로운 이야기에 빠져 한동안 번역되어 나오는 책들을 먹어치우듯이 읽었다. <왕복서간>, <경우>, <모성>, <소녀>, 비교적 최근에 읽었던 <유토피아>까지 내 기대에서 벗어나는 작품이 없었다. 나는 추리가 주가 되는 미스터리 소설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을 읽으면서 사건의 범인을 찾고 트릭을 밝히는 미스터리보다는 인물들의 감정과 동기에 주목하는 미스터리 소설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들 중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람과 사회 사이의 복잡한 문제들을 섬세하게 표현해 내는 작품들이 많다. 모성이 신성하고 절대적인 것이라는 편견에 반박하는 <모성>이나, 죄의식에 시달리는 이들의 삶을 서늘하게 그린 <속죄>와 같은 소설들이 그렇다. 가장 유명한 작품인 <고백>역시 (아주 납작하게 요약하자면)복수에 대한 이야기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조각들>은 외모 지상주의와 관련된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 한 소녀가 자살하고 미모의 성형외과 의사인 다치바나 히사노는 소녀의 주변인들을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듣는다. 죽은 소녀의 이야기는 아주 큰 퍼즐을 맞추듯 천천히 완성된다. 죽은 소녀는 히사노의 딸 뻘이고, 히사노가 자란 지역에서 자랐다. 히사노와 다른 이들의 대화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건 소녀의 이야기뿐이 아니다. 소설을 읽다 보면 외모를 가지고 다른 이들을 줄세우는 사람들의 모습, 그렇게 세운 줄에서 뒤에 서 있다고 평가받는 이들에 대한 주변의 멸시와 혐오, 저열한 악의에 대해 엿보게 된다. 멀쩡해 보이다가도 외모와 관련해서는 뒤틀린 사고방식을 드러내는 인물들이 소름 끼치다가도, 그들의 모습이 현실과 그리 동떨어져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녀가 자살한 이유와 소녀 본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이 소설의 핵심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쓰지 않는다. 소설 뒷표지에 인용된 몇 개의 문장만 봐도 이 소설이 하고자 하는 말을 대강은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모델처럼 예쁜 애라며?", "아니 학교에서 제일 뚱뚱하다고 들었는데". 당연히 자살한 소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외모가 당연히 그가 자살한 이유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소설을 읽어 보면 죽은 소녀의 외모에 관해서는 생각보다 복잡한 일들이 얽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건 '예쁜 애가 자살했다', 혹은 '뚱뚱해서 자살했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문제다.
요즘 사회에서 개인이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외모 강박에서 벗어나기란 굉장히 어렵다. 온갖 매체에서 더 예쁘고 더 마른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과체중인 사람들에게는 '살을 빼면 예쁠/잘생겼을 것 같다'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칭찬이랍시고 한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여학생들에게 취업을 하고 싶으면 성형수술을 하라고 말하는 교사가 정말로 있었다. 지금의 학생들이라고 얼마나 다른 말을 들을까. 머리로는 다들 이렇게 뒤틀린 기준에 맞춰 스스로의 외모를 검열할수록 사회는 점점 더 좋지 않은 방향으로 향할 거라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외모의 선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부당한 일을 겪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외모 강박에서 벗어나고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은 옳은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조각들>의 띠지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키가 큰 것도 작은 것도, 뚱뚱한 것도 마른 것도, 눈이 큰 것도 작은 것도, 코가 높은 것도 낮은 것도 전부 표면적인 개성일 뿐 그걸로 전부를 판단하는 건 천박한 행위라고 마음속 깊이 생각하게 될……리가 없죠."
하지만 이대로 모두가 외모 강박의 굴레에 갇혀 영원히 고통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분명히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느린 속도로 움직이고 있을지언정 분명히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남들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뭔지 깨닫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부끄럽지만, 나도 아직은 외모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신경이 쓰일 때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서서히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익숙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부분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이게 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더 긍정적인 쪽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조각들>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당신이라는 조각이 딱 들어맞는 장소는 반드시 있으니까요." 이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 말을 하는 사람의 존재가 꺼림칙하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문장으로 훈훈하게 끝맺기에 이 이야기는 너무 잔인하다. 하지만 잔인함에도 눈을 돌릴 수 없는 이야기가 있는 법이다. 미나토 가나에의 다른 소설들이 대개 그렇듯, 이 소설 역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