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목소리의 힘으로 꽃은 핀다
최광기 지음 / 마음의숲 / 2020년 7월
평점 :
언제부터인지 에세이 읽는 걸 좋아하게 됐다. 물론 모든 에세이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어떤 에세이들은 내가 다른 사람의 삶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저자 최광기는 사회자다. 특히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거리에 모인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낸다. <목소리의 힘으로 꽃은 핀다>는 저자가 수십 년 동안 다른 이들의 목소리가 되어 주면서 겪고 느낀 것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수많은 촛불집회는 물론이고 장애인 차별 금지 집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에 열린 수요시위, 노숙인 추모 문화제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목소리가 필요한 자리라면 어디든 빠지지 않는다. 저자가 얼마나 많은 걸 보고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왔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책의 내용은 전혀 어렵지 않고 머리를 비운 채로 가볍게 읽을 수 있을 정도지만,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가볍지만은 않다.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긴 책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다른 이들에게 말을 잘 하는 법에 대해 가르칠 일이 많았다고 한다. 김근태 전 장관의 연설 코칭을 맡기도 했고, 시 의원 출마 준비를 하는 환경미화원들에게 연설을 가르치기도 했다. 공무원 연수원에서 자기소개 실습 진행을 맡은 적도 있다. 실습을 할 때는 자기소개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살다 보면 가끔 자기소개를 할 일이 있다. 새로운 모임에 나갈 때라거나, 회사를 옮겼을 때, 모르는 사람을 소개받는 자리와 같이 말이다. 그럴 때마다 대체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 할 말이 없기도 하고, 너무 뻔한 말만 떠오른다. 그렇다고 특이한 말을 해서 괜히 사람들의 눈 밖에 나고 싶지도 않다. 그러다 보면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다. 게다가 나서서 말을 하려는 사람을 아니꼽게 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저자가 실습을 갔을 때도 어릴 적 회장 선거에 나가 떨어졌다가 어머니에게 "그러게 계집애가 그런 데 나가서 망신이나 당한다"라는 말을 들은 이후로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걸 두려워하게 된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 사람이 지금은 그 기억을 극복했기를 바랄 뿐이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자신의 의견이나 말하고자 하는 바를 조리 있게 타인에게 전달하는 사람은 말을 잘 하는 사람이다. 다소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울릴 줄 아는 사람도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닐까. 물론 사회 보는 일을 업으로 하는 저자는 두 가지 모두 해당될 것이다. 저자는 다른 사람에게 연설이나 말하는 법을 가르칠 때 먼저 그 사람의 장점을 봐 준다고 말한다. 일단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는 태도로 말할 수 있다면 그 다음 단계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진심을 다해 세심하게' 칭찬하는 자세다. 진심이 담긴 구체적인 칭찬은 사람을 바꿔 놓는다. 그리고 그렇게 바뀐 사람은 더 이상 이전의 자신과는 같지 않다.
사실 이 책에 훈훈하고 따뜻한 이야기들만 실려 있는 건 아니다. 읽기 괴로운 이야기, 가슴이 답답해지는 이야기, 왠지 모르게 화가 나는 이야기들도 있다. 그야 사회적 약자들이 있는 자리를 찾아다니는 저자가 행복하고 즐거운 일들만을 겪을 수는 없기에 당연한 일이다. 힘든 일을 겪은 사람들의 사연을 읽다 보면 공감이 되기도 하고 마음 한 구석이 먹먹해진다. 그런 갑갑한 현실을 이겨 내도록 돕는 게 바로 연대의 힘, 저자가 말하는 목소리의 힘이다. 이 책의 제목은 <목소리의 힘으로 꽃은 핀다>인데, 여기서의 꽃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불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상을 바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