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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오버 - 국가, 기업에 이어 AI는 우리를 어떻게 지배하는가
데이비드 런시먼 지음, 조용빈 옮김 / 와이즈베리 / 2023년 12월
평점 :
일을 하다가, 집에서 혼자 컴퓨터를 하다가, 친구들과 대화하다가 가끔 'ChatGPT'의 힘을 빌리고는 한다. '챗지피티'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대화형 인공지능은 누군가의 의견이 필요하거나, 무언가를 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싶거나, 그냥 대화를 하고 싶을 때 쏠쏠하게 도움이 되어 준다. 가끔은 뭐 이런 터무니없는 말을 하지? 싶을 때도 있지만, 가끔은 내가 상상조차 하지 못한 말을 꺼내 나를 놀라게 한다.
그래서 <핸드오버>에 흥미가 생겼다. 인공지능과 관련된 담론은 이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피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니, 인공지능에 관한 내용만을 다루고 있지는 않았다. 책은 먼저 이미 우리가 만든 AI나 다름없는 존재, 국가와 기업이 움직이는 방식에 관해 이야기한다. 목차를 보면 이 책이 국가와 기업의 작동 구조를 토대로, 인간이 AI와 공존하며 살아갈 미래 세계를 예측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국 서문의 '국가와 기업, 그리고 로봇은 닮았다' 란 문장으로 이 책을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인상깊은 내용은 2장에 있었다. 2장은 '집단 사고와 구성원의 의지' 라는 소제목을 달고, 집단 사고와 군중의 지혜, 집단이 져야 할 책임은 누군가에게 물어야 하는가, 등등에 관해 이야기한다. 내가 특히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답'과 '결정'은 다르다는 내용이었다. 책에서 나온 예시로 설명하자면, 청혼에 답하려면 마음의 결정을 해야 한다. 이럴 때는 결정이 곧 답변이 되므로 답과 결정이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병 안에 몇 개의 젤리빈이 들어 있는가? 와 같은 문제에 관해서는 누가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하든 그 답이 젤리빈의 개수를 결정할 수는 없다. 우리는 종종 이 두 가지를 혼동하는데,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답을 듣는 것인지 우리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것인지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권자나 배심원단, 그리고 관중 같은 개념으로 대표되는 집단은 특정한 결정을 내린 뒤에 해체되어 사라진다는 내용도 인상깊었다. 이를테면 특정한 정당이 정권을 잡은 여파로 좋지 않은 사건이 발생했다고 가정했을 때, 그 정당에 투표한 유권자에게 그 책임을 묻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 정당에 투표한 개개인은 여전히 사회 어딘가에 살아 있겠지만, 거기에서 특정하는 유권자라는 집단은 이미 선거가 끝난 뒤 흩어져 사라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업이나 국가, 그리고 특정 집단이 도덕적으로 해이해지는 원인 중 하나가 거기에 있다고 지적한다. 선거에서 내가 했던 선택이 잘못되었을 때 나 개인이 책임을 문다면 나는 투표하기 전에 더 신중해질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집단의 선택을 매번 개개인에게 묻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책의 후반부에는 인공 지능과 관련해 꼭 나오는 이야기들, 로봇 심판 등등의 도입으로 인간이 일자리를 잃을 것인지, 로봇의 권리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저자는 챗봇과 같은 AI가 '가짜 인간'이라고 말한다), 인류가 직면한 이런저런 문제들을 로봇이 해결할 수 있을지에 관해서도 언급된다. 이 부분을 읽으며 떠오른 건, 나를 포함해서 일반적인 사람들이 어떤 노동이 로봇에게 쉽게 대체되고 어떤 노동이 그렇지 않을 것인지에 관해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단순 노동'이 로봇에 의해 쉽게 대체될 것이고, 지적, 정신적 소양이 필요한 '예술' 같은 일이 더 늦게 대체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요즘 그림을 그리거나 소설을 쓰는 AI들을 보면 로봇은 생각보다 후자와 같은 일들을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가 국가와 기업을 로봇과 같은 선상에 두어 설명한 내용들은 흥미로웠다. 그리고 미래를 예측하려면 과거를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말에 대해서도 공감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핸드오버>는 AI 분야는 물론 사회과학 서적을 읽는 걸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도 재미있는 책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