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알고 싶은 영어의 비밀 Nominalism
유지훈 지음 / 투나미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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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규 교육 과정에서 계속 영어를 배웠지만 노미널리즘이라는 개념은 처음 들었다. 많은 영어 문장들이 동사나 형용사를 명사화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이렇게 동사나 형용사 등이 명사화되는 것을 명사화, 노미널리제이션이라 한다. 노미널리즘은 명사화 과정을 역으로 따라가며 문장을 이해하는 방법론인 셈이다. 



  생소한 개념 같지만 한국 학교의 교육 과정에서도 노미널리즘의 원리가 적용된 어구들을 가르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책 읽어 보면 이런 문장들을 각각의 카테고리로 세분화해서 많은 예시를 소개하고 있다. 노미널리즘이라는 개념이 생소하더라도, 책 속에서 한 번씩 눈에 뜨이는 예시들이 보인다. 예를 들어, 'The Survival of the Fittest', 즉 '적자생존'이라는 말은 'The Fittest survives'라는 문장과 같다. 'resemblance between the two stories'는 '두 이야기 사이의 닮음'이라고 직역할 수 있는데, 이 말은 곧 'The two stories resemble'라는 문장과 같은 의미이다. 특정한 전치사와 같은 단서들을 이용해 전자에 해당하는 문장들을 후자로 변환하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노미널리즘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을 언급한다. 특히 'government of the people, for the people'이라는 문장에 대한 해석이 '국민의, 국민에 의한'이라고 퍼져 있는 사실에 대해 지적한다. 아주 유명한 문장이고 아주 유명한 해석이지만, 잘 생각해 보면 '국민의, 국민에 의한' 이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국민의 정부'라는 게 정확히 무슨 말이란 말인가? 저자는 '~의'라는 조사를 가급적 쓰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건 '~의'라는 조사가 내포하는 뜻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바로 위에 첨부한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다. 책을 끝까지 읽어 보면 저자가 게티즈버그 연설의 마지막 문장에서 보통 '국민의, 국민에 의한'이라고 해석되는 부분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알 수 있다. 

 노미널리즘이라는 개념이 한국인에게는 그렇게 익숙하지 않고, 그래서인지 저자 역시 노미널리즘으로 문장을 읽는 데 익숙해지려면 대략 2주 정도의 시간 동안 집중해서 연습해야 한다고 한다. 과연 책을 한 번 읽는 것만으로는 노미널리즘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다소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책 속에 소개된 문장들과 문장을 해석하는 방법을 따라가며 읽다 보면, 노미널리즘이라는 방식에 익숙해질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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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둠벙가엔 아직도 잠자리가 날고 있을까
변종옥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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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화자의 여동생 '영화'의 가출로 시작된다. 가출이라고 하면 보통 청소년들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영화는 예순을 앞두고 있는 여성이다. 아들 수현과 싸우고 집을 뛰쳐나온 영화는 한동안 영남과 영남의 딸 부부가 함께 사는 집에 얹혀 지내게 된다. 조용하게 손주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며 글을 쓰는 화자 영남과 달리 영화는 톡톡 튀는 할머니다. 많은 애인을 만나고, 화려한 옷을 입고 원색의 화장을 즐기고 술을 좋아한다. 이 소설은 서로 다른 노년의 자매를 중심으로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가족은 필연으로 얽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소중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답답하기도 한 관계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겠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언제나 가족에게 좋은 감정만을 품을 수는 없다. 영남은 동생 영화를 사랑하고, 딸인 태양과 손주들을 사랑한다. 하지만 자신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영화, 그런 영화를 불편해하는 태양은 이따금 영남을 괴롭게 한다. 다섯 살짜리 어린 손주는 영남에게 행복을 주지만 그럼에도 손주를 돌보는 일은 힘든 일이다. 매일 밤 손주가 깨지 않게 아주 흐릿한 불만을 켜 두고 글을 쓰는 영남의 시력은 점점 나빠진다. 영화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뒤늦게나마 자녀들과 시간을 보내고 가족과 함께 있어 주려고 하는 영화와 그의 자녀들은 잘 맞지 않는다. 그런 사소한 삐걱거림이 폭발하여 결국 영화는 집을 나오게 된다. 시간이 지나며 처음에는 영화를 환영했던 영남의 딸 태양도 점점 영화를 불편해하게 되고, 영화의 딸 수정도 영화에게 다시 집으로 돌아올 것을 채근한다. 자세한 전개와 결말은, 소설을 직접 읽어 보고 아는 쪽이 좋다고 생각되어 적지 않는다.

영남의 집에 얹혀 사는 동안 영화는 충동적으로 제과제빵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다. 영남은 영화가 오기 시작할 무렵부터 단편 소설을 하나 쓰고 있다. 영남이 소설을 완성하고, 영화가 학원을 졸업하는 것과 함께 가족들의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소설의 화자는 영남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예순이 되어서도 새로운 일을 배우려고 도전할 줄 아는 영화가 더 인상적인 인물이었다. 영화가 졸업한 것이 단지 제과제빵 학원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가출과 귀가 과정을 통해 영화는 물론 영화의 가족들 역시 인생의 한 단계를 졸업하게 된다.


글을 마무리하며 머리말의 한 부분을 첨부한다. 머리말부터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저자는 하루를 구슬 알에 비유한다. 자연스레 나도 오늘은 구슬 알로 치면 어떤 하루였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 소설을 읽었으므로 아주 나쁜 날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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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죽겠다 싶어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고영 지음, 허안나 그림 / 카시오페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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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으로는 운동을 해서 체력을 늘리는 게 모든 면에서 나은 길이라는 걸 알지만, 당장 운동할 체력조차 없는 저에게 필요한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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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시간은 공평할까 - 오늘을 위해 내일을 당겨쓰는 사람들 더 생각 인문학 시리즈 9
양승광 지음 / 씽크스마트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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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의 학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오늘을 갈아 일하는 사람들에게 누군가는 쉽게 말한다. ˝미래에 투자하는 게 더 좋은 선택인데 왜 그래?˝ 오늘이 없으면 내일도 없다는 걸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느끼는 게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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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달님만이
장아미 지음 / 황금가지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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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직 달님만이>는 환상적이면서도 로맨틱하다. 이 이야기는 주인공 모현의 모험 이야기이자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모범생처럼 일반적인 모험 이야기의 요소들(주인공의 위기, 조력자, 과거에 행했던 선을 보답받는 것, 타락한 인물, 주변인의 배신 그러나 참회와 죽음 등)을 사용하고 있으나 뻔하지 않다. 이 소설의 결말은 해피 엔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주인공은 죽거나 크게 다치지도 않고, 위기를 해결하며 결국은 사랑하는 이를 만나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때로는 흐뭇한 마음으로 모현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동안에도 마음 속 한 켠에는 지울 수 없는 불편함이 남아 있었다. 희현의 일생 때문이다.

사실 모현은 선한 인물이기는 하나 아주 강하거나 현명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모현의 장기는 활 쏘기라고 하는데, 작중에서 모현이 꼭 필요할 때 목표물을 맞추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모현은 감정에 솔직하고 정의로운 판단을 할 줄 아는 매력적인 주인공이지만 영웅이라기보다는 평범한 사람에 더 가깝다. 그러나 희현은 현명하고 강했으며 또한 인내할 줄 알았다. 희현이 모현에 비해서는 물론이고, 모현과 떼어 놓고 생각하더라도 걸출한 인물이라는 사실은 여러 번 드러난다. 자매의 어머니가 희현에게 남긴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너를 품기에는 이 세상이 너무 작다. 안타깝구나. 네가 사내아이로 태어났어야 했는데. 그 머리를 곳간 속 낱알을 헤아리며 썩힐 수밖에 없다니. 꼿꼿한 그 성정이 네게 해를 입힐지도 모르겠다. 딸아, 내 말을 명심해야 한다. 화를 억누르다 못해 그것에 도리어 잡아 먹혀버려서는 안 돼. 자신을 상처 입히지 말아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니?

129p

희현은 너무 많은 것을 짊어져야만 했다. 어렸을 때부터 제멋대로 행동하는 동생을 자신보다 더 위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동생과 단둘이 외딴 섬에 버려진 이후로는 자매의 생활을 혼자 책임지다시피 했다. 모현은 어린아이니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희현과 모현은 고작 두 살 터울의 자매였다. 모현이 어린아이였다면 희현도 절대 어른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혼자 세상과 맞서기에는 한없이 어리고 무력한 존재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희현은 결국 해낸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악의가 자매를 집어삼키려 하기 전까지는, 힘든 노동을 하고 형편 없는 남자와 결혼하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자매의 삶을 지켜낸다. 물론 희현이 그 모든 일들을 감당하면서 아무렇지 않았을 리 없다. 인내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라 한들 언제까지나 모든 것을 참고 삼킬 수는 없으니까.

그런 희현이 동생에게 자기 대신 산제물이 되어 달라고 부탁한 것을 부당하다고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모현이 무력한 어린아이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희현이 말한 것처럼 모현은 희현에게 기생해서 살아왔다. 그리고 그제까지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 온 희현에게도 지키고 싶은 존재가 생겼다. 바로 아들이다. 오랫동안 양보하고 인내하며 살아 온 희현은 아들을 지키고 키워 내기 위해 더 이상 무턱대고 모든 걸 양보하지 않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희현이 바로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나 비인간적인 존재가 된 것은 아니다. 희현은 자기 대신 죽게 된 동생에게 어머니가 남긴 칼을 보낸다. 하지만 칼만 보낼 뿐 제대로 마음을 보내지는 못한다.

동무에게서 장도를 전해 받은 동생이 차마 밝히지 못한 자신의 진심을 읽어주기를 고대하는 수밖에. 그것이 모현을 위해 희현이 해 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실토하지 않은 내심이란 무의미할 뿐임을, 그 같은 고집스러움이 스스로를 더욱 고독하게 만들 것임을 알지 못한 채.

131p

희현이 실토하지 못한 내심은 떠나는 동생에게 전하는 미안함과 고마움뿐이 아니었다. 희현은 그 어떤 감정도 제대로 실토하지 못한 채로 점점 망가져 간다. 마지막 남은 약과를 먹는 동생을 보며, 동생이 고르고 남은 옷감으로 옷을 지어 입으며, 복주머니를 바꿔 가며 희현은 정말 아무렇지 않았을까. 고통스럽게 일해서 동생을 먹여 살리고 원치 않는 결혼을 하며 살아가는 동안에는? 분명 작은 씨앗 같은 크기로 시작되었을 동생에 대한 미움은 희현의 안에서 점점 커져 증오와 질시, 저주가 된다. 희현의 어머니가 걱정한 대로 계속해서 억누른 화가 희현을 집어삼킨 것이다.

이야기를 어느 정도 읽다 보면 희현이 행복해지기 어렵겠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을 너무나 많이 저질러서, 상투적인 표현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희현을 마냥 미워하기는 힘들었다. 모현이 솔직하고 선한 인물이었던 건 결국 자매의 어머니가 말한 대로 '철없고 이기적인' 시절을 마음껏 거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희현이 없었더라면 모현은 그렇게 보호받으며 살아오지 못했으리라. 자매는 함께 살아왔지만 모든 것을 공평하게 나누어 지지 않았다. 더 많은 짐을 지고 걸어온 사람이 빨리 지쳐 쓰러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안타깝다. 희현이 혼자 그렇게 많은 것들을 짊어지지 않았더라면 자매는 더 오랜 시간 함께 걸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모현과 다른 매력적인 인물들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으나 너무 희현에 대한 이야기만 줄줄 쓰게 되었다. 시간과 의지가 허락한다면 한 번 더 감상을 남기고 싶은 책이었다. 오랜만에 정말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언니를 잃은 땅에서 살아가지 않아도 되는 모현이 때로는 철없고 이기적이더라도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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