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둠벙가엔 아직도 잠자리가 날고 있을까
변종옥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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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화자의 여동생 '영화'의 가출로 시작된다. 가출이라고 하면 보통 청소년들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영화는 예순을 앞두고 있는 여성이다. 아들 수현과 싸우고 집을 뛰쳐나온 영화는 한동안 영남과 영남의 딸 부부가 함께 사는 집에 얹혀 지내게 된다. 조용하게 손주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며 글을 쓰는 화자 영남과 달리 영화는 톡톡 튀는 할머니다. 많은 애인을 만나고, 화려한 옷을 입고 원색의 화장을 즐기고 술을 좋아한다. 이 소설은 서로 다른 노년의 자매를 중심으로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가족은 필연으로 얽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소중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답답하기도 한 관계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겠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언제나 가족에게 좋은 감정만을 품을 수는 없다. 영남은 동생 영화를 사랑하고, 딸인 태양과 손주들을 사랑한다. 하지만 자신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영화, 그런 영화를 불편해하는 태양은 이따금 영남을 괴롭게 한다. 다섯 살짜리 어린 손주는 영남에게 행복을 주지만 그럼에도 손주를 돌보는 일은 힘든 일이다. 매일 밤 손주가 깨지 않게 아주 흐릿한 불만을 켜 두고 글을 쓰는 영남의 시력은 점점 나빠진다. 영화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뒤늦게나마 자녀들과 시간을 보내고 가족과 함께 있어 주려고 하는 영화와 그의 자녀들은 잘 맞지 않는다. 그런 사소한 삐걱거림이 폭발하여 결국 영화는 집을 나오게 된다. 시간이 지나며 처음에는 영화를 환영했던 영남의 딸 태양도 점점 영화를 불편해하게 되고, 영화의 딸 수정도 영화에게 다시 집으로 돌아올 것을 채근한다. 자세한 전개와 결말은, 소설을 직접 읽어 보고 아는 쪽이 좋다고 생각되어 적지 않는다.

영남의 집에 얹혀 사는 동안 영화는 충동적으로 제과제빵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다. 영남은 영화가 오기 시작할 무렵부터 단편 소설을 하나 쓰고 있다. 영남이 소설을 완성하고, 영화가 학원을 졸업하는 것과 함께 가족들의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소설의 화자는 영남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예순이 되어서도 새로운 일을 배우려고 도전할 줄 아는 영화가 더 인상적인 인물이었다. 영화가 졸업한 것이 단지 제과제빵 학원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가출과 귀가 과정을 통해 영화는 물론 영화의 가족들 역시 인생의 한 단계를 졸업하게 된다.


글을 마무리하며 머리말의 한 부분을 첨부한다. 머리말부터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저자는 하루를 구슬 알에 비유한다. 자연스레 나도 오늘은 구슬 알로 치면 어떤 하루였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 소설을 읽었으므로 아주 나쁜 날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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