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현이 실토하지 못한 내심은 떠나는 동생에게 전하는 미안함과 고마움뿐이 아니었다. 희현은 그 어떤 감정도 제대로 실토하지 못한 채로 점점 망가져 간다. 마지막 남은 약과를 먹는 동생을 보며, 동생이 고르고 남은 옷감으로 옷을 지어 입으며, 복주머니를 바꿔 가며 희현은 정말 아무렇지 않았을까. 고통스럽게 일해서 동생을 먹여 살리고 원치 않는 결혼을 하며 살아가는 동안에는? 분명 작은 씨앗 같은 크기로 시작되었을 동생에 대한 미움은 희현의 안에서 점점 커져 증오와 질시, 저주가 된다. 희현의 어머니가 걱정한 대로 계속해서 억누른 화가 희현을 집어삼킨 것이다.
이야기를 어느 정도 읽다 보면 희현이 행복해지기 어렵겠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을 너무나 많이 저질러서, 상투적인 표현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희현을 마냥 미워하기는 힘들었다. 모현이 솔직하고 선한 인물이었던 건 결국 자매의 어머니가 말한 대로 '철없고 이기적인' 시절을 마음껏 거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희현이 없었더라면 모현은 그렇게 보호받으며 살아오지 못했으리라. 자매는 함께 살아왔지만 모든 것을 공평하게 나누어 지지 않았다. 더 많은 짐을 지고 걸어온 사람이 빨리 지쳐 쓰러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안타깝다. 희현이 혼자 그렇게 많은 것들을 짊어지지 않았더라면 자매는 더 오랜 시간 함께 걸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모현과 다른 매력적인 인물들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으나 너무 희현에 대한 이야기만 줄줄 쓰게 되었다. 시간과 의지가 허락한다면 한 번 더 감상을 남기고 싶은 책이었다. 오랜만에 정말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언니를 잃은 땅에서 살아가지 않아도 되는 모현이 때로는 철없고 이기적이더라도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