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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바다의 라라니 ㅣ 미래주니어노블 9
에린 엔트라다 켈리 지음, 김난령 옮김 / 밝은미래 / 2021년 11월
평점 :

황금색으로 씌여진 ‘먼 바다의 라라니’라는 제목 아래 “뉴베리 수상 작가의 모험 판타지 소설” 이라는 글자가 인상적인 책표지입니다. 뉴베리 상이 어떤 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고혹적인 표지 그림의 분위기가 신비한 환상의 여행을 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을 충분히 살려줍니다. 아이들이 읽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울만한 두께의 책인데 요즘 인기 있는 판타지 소설들은 두꺼운 책들도 많이 나오고 어떤 책들은 두께와 상관없이 아이들이 정신없이 빠져서 읽더라고요.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정령들과 미지의 캐릭터들은 작가가 필리핀 신화와 민담에서 영향을 받아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캐릭터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그리스 로마 신화속의 생물이나 해리포터 같은 유럽 판타지 속의 캐릭터들에 비해 약간 낯설고 이름도 조금은 어려운, 신비로운 등장인물들이 많이 나옵니다.
다소 낯설기는 하지만 새로운 생물이나 정령이 나타날 때마다 그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네가 만일 ㅇㅇㅇ라면...’ 이라고 상상하게 만들어주는 액자식 구성과 소개에 하나하나 생각을 달리해보고 상상해 보면서 작가가 꿈꾸는 배경의 인물들과 환경을 자연스레 빠져들게 됩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라라니 사리타’는 ‘산라기타’섬에 살고 있는 열두 살의 작은 소녀입니다. 외부와 교류가 없는 이 섬의 사람들은 섬의 지도자이자 치료사인 ‘멘요로’의 지도아래 각자가 정해진 업무를 분담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섬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할 일이 각각 정해져 있고 남녀 차별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함부로 할 수 없는 규율과 규제도 많았어요. 심지어 어린 아이를 치료할 유일한 약초를 찾으러 ‘카나산’으로 들어갈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멘요로’를 대신해서 다른 사람이 약제를 만들거나 치료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어요.
주인공 라라니의 경우는 더욱 끔찍했어요. 라라니의 아빠가 뱃사람으로 뽑혀 ‘아이사’섬으로 출항하게 되었거든요. 아이사섬은 만복이 깃들어 있는 섬이라고는 했지만 아무도 살아서 돌아온 사람이 없었어요. 더 큰 문제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섬에서 가장 성질이 사납기로 유명한 아빠의 형 ‘드럼’과 그 아비 못지않은 성질을 가진 ‘드럼’의 아들 ‘컬’과 한 식구가 되었다는 것이에요. 이런 구시대적인 불합리한 규율들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지켜지는 곳이 바로 ‘산라기타’섬이었어요.
가뭄으로 모든 것이 말라가던 어느 날 라라니는 우연히 금지된 카나산에 들어가게 되었다가 ‘아이사’섬에서 온 ‘엘세스’를 만나게 됩니다. 엘세스는 아이사섬에 사는 민도르 족이었는데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을 즐기며 과시하다가 사람들에게 끌려가 눈이 뽑히고 다른 섬으로 추방을 당해 카니산에서 살게 된 거에요. 그가 훔친 물건 중에는 섬을 지켜주는 정령 ‘페이 디와타’의 마법지팡이 ‘우됴’까지 있었지요. 라라니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비가 내렸으면 좋겠어요’ 라고 엘세스에게 소원을 말하는데... 그에게 소원을 구체적으로 분명히 말하지 않아서일까요? 비는 몇 주가 지나도록 쉬지 않고 내려 온 마을이 홍수에 휩싸이게 되어 더 이상 비는 선물이 아닌 저주가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비가 멈추지 않자 멘요로는 카니산을 향해 기도를 제대로 올리지 않은 사람을 색출하게 되고 라라니가 카니산에 몰래 다녀온 것을 본 아이들의 고발로 라라니는 감당하기 어려운 처벌을 받게 됩니다. 어마는 바느질병에 걸려서 시름시름 죽어가고 있고 라라니는 카니산의 노여움을 산 원흉이 되어 마을 사람들로부터 비난받고 감당하기 어려운 처벌을 받게 되자 라라니는 다시 한번 ‘엘세스’를 찾아가 소원을 말합니다.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그런데 첫 번째 소원을 들어줄 때 엘세스가 요구한 대가는 고작 핏방울 3방울이었는데 두 번째 소원을 이뤄주는 대가로 엘세스는 라라니의 ‘눈’을 요구하게 되고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은 엘세스의 계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무너진 카니산, 홍수에 이어 산사태로 마을이 휩쓸려가고 모든 상황이 최악으로만 치달아가는 상황에서 겨우 목숨만을 건진 라라니는 환상의 섬 ‘아이사’섬으로 홀로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아픈 엄마를 가장 믿을만한 친구 ‘베이다’에게 맡기고서요. 어린 소녀 라라니는 과연 미지의 섬 아이사섬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요?

‘산라기타’섬을 떠나 ‘아이사’섬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합니다. 수많은 정령과 괴이한 생물들의 위협에서 살아남아야했고 막상 아이사섬에 도착해서는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아이사섬을 찾아 떠난 뱃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충격적인 사실도 알게 되었죠. 거대한 새 ‘바이 빈카’와 ‘페이 디와타’를 만나면서 라라니의 모험과 도전은 극에 달하게 됩니다.
전체적으로 조금은 낯선 생물들과 정령들의 이야기로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지만 새롭고 신비로운 내용의 이야기였습니다. 작은 섬 사회 안에서 폐쇄되고 억압되고 차별적인 구시대적 분위기가 지속되어 마음이 내내 불편했지만 새로운 도전을 향해가는 라라니의 모습을 보며 응원을 하기도하고 섬 밖으로 떠나지는 못했지만 섬 안에서 용기를 내었던 라라니의 두 친구 베이다, 헤츠비를 통해 부족한 사람들도 모두 쓰임새가 있고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세상 만복이란 어디에서 오는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도 할 수 있고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던 좋은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