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륵의 봄날
최창원 지음 / 채륜서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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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륵이란 인물을 먼저 알고갈 필요가 있다. 우륵이란 인물은 가야의 악사로 , 가실왕에 의해 발탁이되고 , 훗날 가야게 신라에 망하게 되지만 , 뛰어나 음악적 예술 덕분에 진흥왕에 의해 다시 발탁이 되어 신라 음악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는 인물이다.


올해 들어 정말 오래간만에 역사 소설을 읽게되었다 . 이 소설에 가장 매료되었던 점은 우륵과 금관 가야 공주의 사랑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우륵이란 인물의 중요성도 있지만 , 사실 우륵과 사린의 사랑이야기가 가장 중요한 글의 줄거리가 아닐까 싶다.


글을 읽는 내내 설레는 마음/암울한 마음/침통한 마음/벅찬 마음을 모두 느낄수 있었다. 과연 나였다면

저렇게 버티고 오랜 세월을 살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살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모두

죽었다면 과연 제정신에 살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모든 슬픔과 사랑을 음악. 가야금으로

표현해 우륵이란 인물이 성공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소설의 줄거리

소설의 줄거리상 우륵은 대가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다. 점꾀상 우륵이 신라 앞날에 큰 장애물로 여겨져

신라 자객에 의해 살해 계획이 세워지지만 , 태어나자마자 궁을 탈출해 신분을 버리고 살아가게 된다.

(MBC 드라마 "선덕여왕"의 초기 줄거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갈것으로 보인다)


궁의 악사와 왕후의 무사 두명에 의해 탈출한 우륵은 악사 "휘" , 무사"등흔"의 밑에서 키워지게 되고

자연스럽게 두사람이 부모의 역할을 하게 된다. 물론 우륵도 두 사람을 부모로 알고 살아가게 된다.


우륵은 휘에서 거문고를 등흔에서는 검을 배우게 되지만 ,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탓에 거문고에 더

뛰어난 재능을 보이게 된다.


우륵은 자라 금관가야의 음악/무사 선발 대회에서 특별상을 수상하게 되고 , 그 계기로 금관 가야의

공주 사린을 만나게 된다. 한편 그자리에 진흥왕도 같이 구경을 하고 있었으니 , 진흥왕의 금관가야의

공주의 모습을 보고 사랑의 감점이 싹트기 시작한다. 사린의 가야금 스승이 된 우륵은 날이 갈수록

공주에 대한 마음이 커지고 공주 또한 우륵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커져가게 된다. 그렇게 함께 할수

없는 신분임에도 둘은 비밀의 장소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마음을 더욱더 키우게 된다.


어느날 신라의 침탈로 금관 가야가 멸망하는날 우륵은 사린을 궁에서 탈출 시키고 그렇게 둘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살게 되지만 , 훗날 휘어 어머니 즉, 할머니 집에 들어가 살게 되고 그곳에서

혼인을 하며 부부의 연을 맺고 살아가게 된다. 그 시각 금관 가야를 탈취 하면서 진흥왕은

가야의 공주 사린을 찾게 되지만 이미 궁을 빠져나간 후임을 알게 되고 , 음밀히 사린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순탈할 것만 같던 그들의 삶은 진흥왕이 본격적으로 왕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부터 반전은 맞이하게

된다. 가야의 힘이 약해지고 신라의 기운이 더욱 강해질 무렵 사린은 결국 진흥왕에 측근에 의해

진흥왕이 있는 곳으로 잡혀 가게 되지만 이미 그의 뱃속에는 사랑하는 우륵의 아기가 커가고

있었다. 혼인과 뱃속의 아기를 꿈에도 모르는 진흥왕은 여전히 사린을 사랑하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눈을 땔수가 없었다. 하루만에 소설을 읽어 내려갈 정도로 소설에 빠져 들었고

스토리 또한 내 감성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구구절절 하였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깊은 여운을 가실수가 없다. 언제 또 이런 감성적이 역사 소설을 만날수 있을까?

가을날 어쩌면 가장 어울리는 소설이 알맞는 시기에 나온거 같다. 가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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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약 집을 짓는다면 - 후암동 골목 그 집 이야기
권희라.김종대 지음 / 리더스북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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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을 생각을 한다. 나는 왜 이렇게도 힘들게...바쁘게 살아가는 걸까?

과연 우리는 왜 그렇게 즐거운 시간과 여가의 시간도 없이 살아가는 걸까? 아마도 따뜻한 보금자리

를 얻기 위해서 일것 이다. 잘못된 부동산 정책으로 아파트 분양가는 고공행진을 하고 있고

너나 할 것없이 빚을 내서 집을 장만하고 있다. 이런 위태로운 생활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본인은 아파트를 싫어 한다. 아파트 사는 사람들에게는 안좋게 들리고, 어떤 사람은 무식하다고

할수있도 있다. 나느 아파트가 닭장 같아서 싫다. 똑같은 크기에 똑같이 생긴 집. 구조도 똑같고

아마 가구 배치도 똑같을수도 있겠지...


우리들의 로망속의 집은 2층에 넓은 마당이 있는 집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집을 가지려면

일단 변두리에 주변에 논과 밭만 있어야 한다. 대도시에 그런 집을 갖겠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부자가 아니면 불가능하겠지?


나는 이책을 보면서 바로이거야!!! 라는 영감은 받지 못했다. 왜냐? 내 얘기가 아니니깐?

그렇다고 내가 작가들처럼 시간이 있어 주변을 탐방하고 알아보고 할 시간도 없으니깐?

막상 하려도 해도 많은 제약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가슴에 확 와닿거나 , 이책에서 정답을

찾지는 못했다. 보금자리란 개념을 일깨워준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주식/부동산 책을 보면 부자가 되지 못하듯이 , 이책을 보고 할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찾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직접 집을 구하고 세우고 등기를 치는 과정까지 어쩌면 살면서 유용한

정보가 될지도 모르는 것들을 책으로나마 자세하게 배울수가 있었다.


주변을 둘어보면 짜투리 땅들은 참 쉽게 찾아 볼수 있다. 평수는 작아 아무것도 짖지 못하는 땅

어쩌면 작가들은 그런땅만 골라 잡았을지도 모른다.더이상 발전 가능성은 없을것 같지만 주변에

없는것 없이 모두다 갖춰져 있는.... 하지만 노후되어 사람들이 찾지 않는 구역.

작가들은 그런 구역을 잡아 구옥을 허물고 자신들만의 집을 지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갖춰져 있는 것만 잡을려고 할수도 있다. 집을 사기도 전에 주변 학군을 보고 병원의

위치를 먼저 따진다. 집 구조는 보지도 않고 주변에 병원이 없다..학군이 별로다..라는

이유로 쳐다 보지 않는 세상이 됐다. 따뜻한 보금자리가 무엇일까?


이책은 어쩌면 그런  고정관념을 깨부수고 진정한 따뜻한 보금자리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TV를 보면 연예인들의 집을 자주 보게 되는데 , 꼭 그런집을

보는 사람들의 첫마디는 돈이 많은니깐 저런집에서 살겠지...라고 한다.


그런데 연예인들집을 보면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 학군과 주변 상권을 따지지 않는

다는 것이다. 미래에 나의 집값이 오르냐 안오르냐가 좋은 보금자리의 판단기준으로

삼지 않는 다면 , 모두 연예인들과 같은 집에 살수 있지 않을까?


물질 만능 시대에 정말 참된 보금자리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 책이다.

마음이 따뜻한 집을 지어서 살고 싶은 사람. 집값에 연연하지 않고 정말 나의

인생과 함께 할수 있는 집을 짓고 싶은 사람은 이책을 꼭 보도록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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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읽는 남자
안토니오 가리도 지음, 송병선 옮김 / 레드스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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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받고 나서 조금 의아했다. 유럽의 작가가 어떻게 중국 역사 소설을 배경으로 집필을 하였을까?

우리 나라 작가도 다른 나라를 배경으로 더군다나 역사적인 내용을 집필하기가 매우 어려웠을텐데...


많은 학습과 상상력이 동반되지 않으면 결코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주인공은 송자.

시체 판독관의 내용이다. 그럼 송자라는 인물은 누구 인가?  송자라는 인물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그가 집필한 세원집록만 검색될뿐.. 그가 그때 당시 시대적 배경에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인물이지 찾아 볼수가 없었다. 다만 후세에 많은 도움을 준 책을 집필했다는 사실만 있다.


이책은 송자의 일생을 그린 소설은 아니며 , 어떤 하나의 사건의 처음과 끝을 소설로 표현한 책이다. 하나의 사건임에도 책의 두께는 매우 두꺼웠고 , 내용도 방대하였으며 , 내용도 두께에 비해 난잡하지 않았다.


송자는 관리의 밑에서 일했던 아들로 어려서 부터 명석하고 노력파 인간임을 소설에서 보여준다.

법의학에 있어 매우 뛰어나 , 죽은 시체는 분석하고 사망원인을 찾아내는데 탁월했다.


그의 스승인 펭판관은 그를 가장 아끼는 조수로 임명하고 , 그를 아들과 같이 대했다 . 그런 환경속에 그는 의학/법학등을 공부할 수 있었으며 , 장차 판관이 될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별세로 다시 시골로 내려올수 밖에 없었으며 , 그는 꿈을 접어야만 했다. 몇년이 지나 아버지는 다시 공무를 맡길 원했으나 , 그는 돌아갈수 없는 처지에 놓이기 되고 , 억수 같이 쏟아지는 비로 인해 산사태가 발생하여 송자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모두 사망을 하게 된다.


가족이 사고를 당하기 전 송자는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논일을 계속하게 되고 , 그러던 중 하나의 시신을 발견하게 된다. 목과 몸이 분리되어 있는 시체는 당시 마을을 방문한 펭판관에 의해 범인이 찾아내게 되고 , 그 인물은 송자의 형 "루" 였다.


공부에 대한 열망이 컸던 송자는 린안으로 도망을 오게 되고 , 그곳에서 밍교수 눈에 띄게 된다.

밍교수는 그에게 학원에서 일을하며 기숙사비를 충당할 것을 지시하고 그에게 공부를 가르친다.

그러던 와중 연쇄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기회를 받게 되고 ,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결론을

찾아내게 되고 , 송자는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된다.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은 송자가 생각하지 못한 반전의 인물이었고 , 결국 부패하고 썩어빠진 정신때문에 이 모든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과연 반전의 인물은 누구이고 , 어떻게 그를 찾아 냈을까?? 송자는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많은 역경과 고난을 겪게 되고 , 사랑하는 가족 모두를 잃게 된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모든 삶을 포기하고 홀가분한 마음을 가지고 싶었겠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의 일에 매진했고

결국 부패/부정에 넘어가지 않고 자신의 본분에 충실했다.


이책을 넘기면서 어쩌면 현재 우리 나라의 사정과 동일하지 않을까 싶었다. 청렴하고 깨끗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사람만 있었어도 이지경이되지 않았을것 같은데...라는 생각??

재미 있으면서 씁쓸한 생각이 드는 건 이 책이 주는 또 다른 교훈이 아닐까 싶다. 


역사적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인물을 그린 소설이긴 하지만 그안에 우리가 분명 배워야 할 것은

있다. 책이란 각자의 주관적인 생각과 해석을 하겠지만 그래도 이책으로 많은 교훈을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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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로부터 온 편지
이정서 지음 / 새움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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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제목이 일단 시선을 잡기에 충분했다.이미 죽은 사람으로 부터 온 편지라니.

책의 제목을 본 나는 이 책을 그냥 지나 칠수 없었다. 스릴러인가? 범죄 심리 소설인가?

아니면 판타지 인가? 어쩌면 역사 소설 일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내가 생각했던 내용이 아닌 이방인 소설에 대한 이야기 였다.

이방인... 내가 그렇게도 재미 없게 본 소설이 이 책의 중심이라니... 책을 덮어 버리고 싶었지만

무언가 다른 내용을 담았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책을 읽어 보았다.

이방인은 카뮈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드라마 한편 잘 써 대박 작가로 신분 상승을 하는 그러한

작가는 아니겠지만, 이방인으로 유명해진 작가임을 틀림 없다. 이방인의 영향으로 노벨 문학상까지

받았으니. 그런 소설을 나는 왜 싫어 했을까? 내 10년전 기억으로는 이방인=지루하다 하는 수식어가

따라 다녔던 것 같다. 지루함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 했던 것은 아마도 번역의 실수가 있지

않았나 싶다. 외국 소설의 장점은 한국 소설에서 표현되지 않는 섬세함이 있지만 반대로

그 섬세함이 잘못 오역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방인은 그러한 이유로

내 기억속에서는 지루함 소설로 남아 있었을지 모른다.


이 소설에서는 그러한 내용을 소설로 재미 있게 풀이 하고 있다. 이방인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정확한 번역을 해내는 것. 잘못 오역된 부분과 정확한 번역 부분을 비교해서

소설에 표현해 주었다. 하지만 소설에서 번역하고 있는 내용도 100% 정확하다

라고 할 수 는 없다.(소설 마지막 엔딩도 End 아닌 And로 끝맺음을 한다)

왜냐면 , 소설의 진짜 작가는 이미 고인이 되어 등장 인물의 성격을

물어 볼 수 없으니...하지만 왠지 내가 알고 있던 이방인의 지루함은 조금.. 아주 조금

사라진 것 같다. 아마도 글의 맥락이 조금 더 매끄러워 졌다고 할까??


이방인을 보지 않으면 이 책의 즐거움을 알지 못할지 모른다. 넘쳐나는 이방인 번역 소설을

모두 볼 수는 없지만 , 대표적인 가장 많이 팔리는 출판사의 이방인을 읽어 본다면 조금 더

이 소설을 읽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내가 알고 있는 이방인 / 여러분이 알고 있는 이방인이 진짜 이방인이 아니라면 어떻까?

생각해 보면 끔찍하고 소름이 돋겠지만 한번쯤 상상을 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한국의 가장 유명한 번역가를 상대로 번역의 오점을 낱낱이 파헤친 소설. 어쩌면 이 소설을

집필하면서 엄청난 압박과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을 것 같다.
 

번역의 정확성과 즐거움은 독자들의 몫이기 때문에 평가는 독자의 몫이다. 지루하게 느껴졌던

소설이 더 이상 지루하지 않고 , 즐겁다면 유명 작가의 번역이라도 나는 이 소설에 한표를

던지고 싶다. 이방인 소설에 대한 즐거움을 이미 만끽 하였다면 상관 없지만 무언가 부족함을

느꼈다면 이 책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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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고 있는 소녀를 보거든
캐서린 라이언 하이드, 김지현 / 레드스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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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국내 소설보다 해외 소설을 더 많이 읽는 것 같다. 아마도 해외 소설의 섬세한 표현과

국내에서 쓰지 않는 표현 기법들 , 주인공들의 언어 표현들이 컬쳐 쇼크(?)를 안겨주기 때문에

더욱더 그러는 것 같다. 이 소설 역시 나에게 엄청난 큰 컬쳐 쇼크를 안겨다 주었다. 과연

한국에서 저런 일들이 가능하기나 할까? 아니면 비슷하게라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문득하게 된다. 가슴 따뜻해지는 소설이 과연 어떤걸까? 많은 소설들의 감상평에 "가슴이 따뜻해

지는 소설이다""감동적이다"라는 표현들로 도배가 되어 있다. 가슴이 따뜻해진다는 말 표현이

어떤 것이지 본인은 모른다. 그러나 어렴풋이 따뜻한 소설이라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 느끼게

되었다. 스토리의 구성? 아니면 소녀의 처해진 환경들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나는 소녀가 아니라

주변 인물들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 같다.


1.그레이스

-이 소설의 소녀는 그레이스다. 약물 복용으로 매일같이 잠에 빠져사는 엄마 밑에 살고 있다.

잠들어 있는 엄마를 피해 매일 아파트 입구 계단에 앉아 하루를 보낸다. 부모 없이 학교를

갈수 없는 어린나이. 어린 나이의 상상력과 그 나이에 맞는 표현력. 이 소녀의 현재의 감정들을

잘 표현해 냈다. 소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아파트 이웃의 삶. 그 중심에 선 소녀.

그 소녀로 인해 아파트 주민들을 각자의 트라우마/문제점들을 하나씩 밖으로 꺼내 고쳐 나가고

이웃 공동체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준 인물.


2.빌리

-소녀 말고 또다른 주인공. 어린 나이에 공황장애를 극심하게 앓고 있었다. 그 공황장애를

이기기 위해 춤을 췄던 빌리. 그렇지만 나이가 먹을수록 병은 심해지고 자신의 꿈까지 포기

하며 집에 틀어밖혀 산지 12년. 어느날 문득 그레이스와 대화를 나눈 빌리. 엄마가 약물에

잠이들어 있을때, 잠깐 동안 소녀를 돌보면서 자신의 꿈이었던 춤을 가르친다. 소녀의

성장 과정을 보며 문득 자신의 옛 기억을 하게되는 빌리. 소녀를 만나 12년 만에 문밖을

나서게 되고 , 스스로 병을 소녀를 통해 고쳐 나가게 된다.


3.레일린

-소설에서 소녀/빌리 두명을 중심으로 돌어가지만 또다른 제3의 주인공. 어떨결에

소녀의 보모가 되고 , 그 날부터 소녀를 돌보게 된다. 책 속의 레일린을 착하고

여린 여성. 하지만 그 여성도 트라우마가 있다. 바로 남자에 대한 트라우마.

결국 소녀와 빌리에 의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남자를 만나게 되지만, 이 여성은

트라우마 보다 소녀를 돌보는 과정에 더 많은 이야기가 할애 된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여러명이 더 있지만, 이야기의 구성은 결국 소녀를

엄마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과정에 있다. 약물에 중독된 엄마를 고치게 하고 다시

엄마의 품으로 돌오가는 과정. 모든 아파트 주민은 소녀를 위해 자신이 잘하는

것들을 가르치고 그 속에서 참된 사랑을 느끼게 된다. 내가 이 소설에서 느낀

따뜻함이란 한국에서 이젠 찾아 볼 수 없는 우리 이웃의 따뜻함을 이 소설에서

느꼈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에서 찾아 볼 수 없다고 하지만 이 소설을 통해

옛날의 따뜻함을 어렴풋이 느낄수 있어 좋았다.


아마 이 소설을 감동/재미를 떠나 , 우리가 잊고 지낸던 이웃간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어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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