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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과 함께한 파리 디자인 산책 - 쉽고 재미있는 강의실 밖 디자인 이야기 ㅣ 썬 시리즈 2
권선영 지음 / 컬처그라퍼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처음 책을 집어 들었을때 먼저 놀란 건 이 책의 크기와 무게였다. 직접 보면 알겠지만 책의 가로세로 비율이 일반적인 책의 비율과 좀 다르다. 가로가 짧은 건지 세로가 긴 건지는 좀 더 재봐야겠지만 민음사 세계문학 책 비율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두께는 270페이지로 결코 얇지 않은데 딱 집었을 때 간편하다는 느낌이 딱 들었다. 이런 형태가 의미하는 것이 무언고 생각해보니 첫째, 가방에 넣고 다니기 좋고 둘째, 한손으로 잡기 편하며 또한 가볍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 기분 있지 않은가? 카페에 앉아 한손에 펴든 책을 들고 다른 한손으로 커피를 마시는 그 기분. 그 자세가 가능하다. 그리고 제목을 보라. 카페에서 읽기 얼마나 좋은 제목인가~
실제로도 표지의 종이재질 등이 가벼운 소재를 사용하여 펼쳐 보기에 전혀 무리가 없다. 밖에서 멋지게(!)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출판사의 세심한 배려임이 분명하다.
본론으로 책의 내용에 대해 들어가 보면, 이 책은 저자가 파리에서 느낀 것들을 파리만의 디자인들을 통해 어렵지 않고 가볍게 읽을 수 있게 집필한 책이다. 제목이 산책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덕분에 얇지 않은 분량임에도 부담없이 술술 읽히는 게 장점이랄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밀도감이 적은 건 절대 아니다. 이 책에만 나오는 디자이너, 디자인 용어들만 해도 왠간한 디자인 서적 뺨친다. 게다가 저자가 직접 파리에서 생활하면서 보고 듣고 인터뷰한 리얼리티가 책 안에 충분히 묻어나며 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들과 직접 찍은 여러 사진들이 그 리얼리티를 더 한다. 읽고 있노라면 간접적으로 파리여행을 하고 있단 느낌이 절로 든다.
흔히 파리와 관련된 글들을 읽어보면 파리예찬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파리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들을 표현하며 예찬만 늘어놓기에도 벅찬 듯한 글들에 식상해하던 본인이었는데, 이 책에는 파리 또한 더럽고 안좋은 곳도 있으며 그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사람 사는 도시라며 ‘자연스럽게’ 말한다. 현지에서 오래 산 사람에게서만 나오는 말투 그 자체다. 그 때문에 독자 또한 자연스럽게 읽혀지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키워드를 몇개 뽑아보자면 그 중 하나는 바로 ‘유머’다. 파리는 유머가 있는 도시. 거리마다 그리고 도시 안의 디자인들에는 유머가 있다는 것. 그것이 조화를 이루고 그것이 파리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책의 처음과 마지막에도 강조한 만큼, 유머란 것은 디자인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나타내고 있다. 의자,, 조명, 주방가구, 카페 인테리어, 시내 거리 할 것 없이 파리에는 유머가 살아있다.
또 하나의 키워드는 ‘공존’. 저자는 '인시튜(In Situ)'라는 개념을 설명하면서, 전통을 중시하며 보존하려는 프랑스 시민의식과 현대예술의 표현력으로 인해 ‘특정 장소에 설치되는 작품을 통해 그 공간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개념을 하나의 답으로 제시한다. 그것이 조화를 이루든 충격을 주든지 간에 그냥 지나쳤던 공간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볼 수 있게 한다면 그것 나름대로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가볍지만 읽고나면 절대 가볒게 느껴지지 않는 자연스러운 문체와 개성이 넘치는 그림들, 현장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사진들을 보고 나니 책 한권이 후딱 지나갔다. 저자는 마지막에도 '파리에 대한 사랑이 식기 전에 돌아올 것을 추천'한다며 파리에 대한 자연스러운 생각을 다시금 표현한다.
좋아함을 미친듯이 표현하다가 마지막엔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는 쿨함과 미련없는 모습. 이것이 궁극적으로 저자가 표현하려 했던 파리의 모습이었을까? ‘좋아해’가 아닌 ‘좋아했었다’로 정의하며 추억할 수 있는 파리의 모습에, 나도 그 추억을 간직하고픈 바람이 생겼다.
이제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거 같다. “너를 좋아해. 조금, 많이, 열정적으로, 미친듯이, 그리고 전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