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수업 - 불교철학자가 들려주는 인도 20년 내면 여행
신상환 지음 / 휴(休)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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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너무 가보고 싶은 여행지였는데, 괴담이 많아서 선뜻 도전하지 못했다. 유럽 여행을 같이 다녀온 친구와 인도도 같이 떠나자고 했지만 그것도 벌써 10년 전 일이다.


이안 감독의 <파이 이야기>를 보며 인도에 대한 환상은 더 커져 갔다. 무교지만 불교(의 교리)를 좋아하는데, 아마 절에 다녀본 적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초등부부터 고등부까지 꽤 오래 교회를 다녔는데 교리처럼 살 생각이 1도 없어 보이는 인간들에 환멸이 나서 멀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인도에서 20년 간 살다 온 불교철학자가 소개하는 인도의 모습이 궁금했는데 작가가 선배에게 들은 얘기라며 적어 놓은 문구가 책을 읽는 내내 맴돌았다.



인도를 일주일만 다녀오면 매 순간을 기억하고, 한 달을 다녀오면 중요한 모습만 기억하고, 1년을 다녀오면 인도를 다녀왔는지도 잊어버린다.



책을 덮을 즈음에는 주어를 어느 곳으로 바꾸어도 상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낯선 곳에 가면 익숙하지 않은 것에만 집중하게 되는데, 기실 사람 사는 것이 다 비슷하니 내가 그곳을 타자화하지 않으면 인도라고 다를 것이 있겠냐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래도 여행은 가고 싶어. 인도, 티벳, 쿤밍 갈 거야!)



그래서 이 책은 인도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작가가 인도라고 생각한 것, 즉 인도에서 경험한 불교 이야기에 가깝다. 그래서 책을 읽는동안 인도와 불교에 해박한 가이드와 함께 인도 구경을 하는 것 같았다. 팬데믹 이후로 이런 감각은 정말 소중하다. 그 전에는 책이 안전한 모험이고, 세상을 간접경험하게 해준다는 말을 들어도 ‘직접 가보면 되지 굳이?’라며 별 감흥이 없었는데 이제는 갓 나온 새책에서 흙먼지 냄새를 맡을 정도로 다른 세계를 궁금해 하다니.



책은 인도, 티벳, 무스탕, 투르크로 섹션을 나누는데, 이방인들이 발음을 잘못 표기한 지명 소개도 있어서 해당 지역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게 지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불교용어나 역사 이야기도 자주 나오는데, 사실 불교 교리를 좋아할 뿐이지 불교를 잘 알지 못하는 나에게는 조금 어려운 내용도 있었다.





티벳 불교에서는 1) 작-행-요가-무극상요가라는 4종의 딴뜨라, 즉 4종의 밀교의 구분법을 쓰는데 이것은 일상의 생활을 관통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작행요가-무극상요가’로 줄일 수 있는 이것의 작은 산스끄리뜨어 어원 ‘끄르kr’에서 온 것으로 무언가를 하는 일반적인 행위를 뜻하고 2)행은 산스끄리뜨어 어원 ‘짜르car’에서 온 것으로 예식 행위를 뜻한다. 95p


그렇다고 모든 불교용어에 주석을 달 수도 없으니 그냥 찬찬히 읽으면서 어렴풋이 의미만 짐작해 봤다. 딴뜨라 같은 낯선 용어 앞에서는 한글도 외국어처럼 보인다.






티벳은 곡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 육식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한 티벳 스님은 달걀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티벳 속담에 ‘잡으려면 야크를 잡아라’라는 게 있다는데, 살생할 수밖에 없다면 작은 것 여러개보다는 큰 것 하나를 잡아 불필요한 살생은 줄인다는 의미라고 한다. 비건지향 페스코테리언이 되어 채식을 하면서 나는 그저 고기 안 먹기 챌린지를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다른 동물이 들어간 고양이 사료를 구매하고 가족이나 친구들을 위해 고기를 사서 직접 요리하는 때도 있기 때문이다. 내 눈 앞에서만 죽(이)지 않으면 되고 고기가 내 입에만 안 들어오면 되는 건가 싶어서 이게 내가 바라는 채식의 삶인가, 생각하다가 현타가 올 때가 있었다. 그래서 불필요한 살생을 줄인다는 말이 크게 공감이 되었다.



이미 완벽한 채식을 하긴 글렀지만 다시 한번 휘뚜루마뚜루 채식을 결심하고! 나는 나의 길을 간다! 아좌좌! ㅋㅋㅋ




물론 재밌는 이야기도 많다. ‘자신을 등불로 삼고 의지하며, 진리를 등불로 삼고 의지하라’는 뜻의 ‘자등명 법등명(自燈明法燈明)’은 석가의 유언으로 유명한데 석가가 죽기 전의 일화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시주를 받는 수행자는 주는 음식을 가려 먹을 수 없는데, 석가는 어느 날 음식을 받고서 자신을 20년 간 따른 아난 존자에게 그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한다. 그럼 아난 존자는 굶어야하는데요? 너무 쪼잔한 일화라 다들 쉬쉬하는 건가 했더니, 그 음식이 상했을 거란 해석이 있다. 상한 줄 알지만 받은 음식은 먹어야 하기에 석가 혼자 음식을 처리하고 몸이 상해 결국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죽기 전에 남긴 말이라니 또 새롭게 들린다. 나를 등불로 삼으라는 말이 좋았는데, 누구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나를 믿고 가라며 등을 두드려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일화를 듣고 나니 음식을 준 이를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없다는 말로도 들린다.



불교철학자의 눈으로 본 인도가 꽤 재미났다. 챕터마다 글도 짧아서 읽기도 편하고 모르는 내용은 이해 못한 채로 넘어가도 나쁘지 않다. 직접 본다고 다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오히려 이런 게 더 생생한 여행 같은 느낌이 든다.



그나저나 읽고 나니까 정말 여행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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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동 이야기
조남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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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 작가의 신작 <서영동 이야기>를 가제본으로 먼저 받아보았다.

‘봄날아빠(새싹멤버)’, ‘경고맨’, ‘샐리 엄마 은주’까지 총 세 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모두 가상의 공간 서영동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따스해 보이는 표지와 달리 영 마음이 불편하다. (맞다. 이분 <82년생 김지영> 쓰셨지…) 분명 가상의 공간이지만 너무 이곳의 이야기이고, 또 내가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해서다. 서영동과 이웃한 은라동의 아파트와 가격차이로 발끈하는 주민들이나 유치원 엄마들의 브런치 모임에서 오가는 대화, 정년퇴직 후 경비원이 된 아빠의 일터 가까이 사는 k-도터 등 듣기만 해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불편한 상황들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유독 이런 이야기에 취약해서 이 짧은 가제본을 읽는 것도 조금 버거웠는데, 가장 마지막에 실린 ‘샐리 엄마 은주’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야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불편하고 말 이야기는 아니라는 확신을 주었다.


1.
유정은 사실 아파트 얘기가 싫다. 이 비싼 집을 세훈이 혼자 마련했다는 사실이 부담스럽다. 회사 동료들도, 오랜 친구들도, 유정의 부모님마저 좋겠다, 부럽다, 세훈에게 잘해라, 했다.
지금 세훈은 거의 1년째 구직 중이다. 외삼촌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총괄 매니저를 했었는데 레스토랑은 몇년 사이 매출이 계속 떨어지다 지난해 결국 폐업했다. 세훈은 개업 준비를 하다가 프랜차이즈 상담도 받다가 아예 상관없는 회사에 이력서를 넣기도 했는데 어느 것도 쉽지 않았다. 지금 생활비는 유정의 수입으로 충당한다. 그런데도 왜 자꾸 움츠러드는지 모르겠다. 이깟 아파트가 뭐라고.
-봄날아빠(새싹멤버)-


2.
대답할 수가 없었다. 말한다고 네가 이해할 수 있을까.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서울의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 소유주가 된 네가, 작은 아버지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다가 큰 아버지의 회사로 이직한 네가, 가족 단톡방의 부모님 해외 여행 사진에 무심히 이모티콘을 보내는 네가, 그 모든 일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네가 이해할 수 있을까?
-경고맨-



3.
지긋지긋하기는 은주도 마찬가지였다. 샐리 엄마도, 새봄 엄마도, 그런 여자들 중 하나로 보이지 않으려 애쓰는 생활도, 그런 여자들을 둘러싼 말들도, 오해도, 적의도, 정말 지긋지긋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대체 그런 여자는 어떤 여자고 그렇지 않은 여자는 또 어떤 여자인데.
-샐리 엄마 은주-





현실의 어두운 면을 굳이 작품으로 보고 싶지 않다. 존재하는 자체로도 끔찍하기 때문에 그걸 다시 가상의 이야기로 재구성 해서 볼 필요가 있나? 생각하는 편인데, 대게 대책 없이 현실 고증으로 끝나는데 그친 작품을 많이 봐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서영동 이야기>는 가제본이라 전체 내용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그다지 밝은 내용도 아닌데다 대책이 없다. 치솟는 아파트 가격으로 분열이 일어나는 주민들의 불만을 잠재울 대책을 알고 있다면 그건 소설이 아니라 부동산 대책 비법서가 되겠지. 그래서 또 잔뜩 한탄하다 끝날까봐 괴로워하며 읽었는데 샐리 엄마의 독백이 너무 좋았다. 나와 같이 괴로워하는 줄 알았는데, 괴로워하는 지점이 조금 달랐고, 괴로움을 들여다보고 감정과 현실을 분별하려고 노력하는 부분에서 나만 부끄러워졌다.


위로가 되었던 건 작가의 말에서 작가님이 소설을 쓰는 내내 괴롭고 부끄러웠다고 하셨던 부분이다. 그래도, 적어도 나만 멋쩍었던 게 아니었나보다.


괴롭지만 이상하게 따뜻한 이야기다.


#하니포터
#한겨레출판
#조남주
#서영동이야기
#하니포터2기_서영동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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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 - 박보나 미술 에세이
박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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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가 작품이 될 때>의 박보나 작가의 미술 에세이.

읽지는 않았지만 전작이 워낙 유명해서 <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이 퍽 궁금했다.

미술 에세이가 생소하기는 한데, 기억에 남는 그림 에세이가 있다. 우지현 작가의 <나를 위로하는 그림>인데, 그림을 하나 소개하고 그 그림에서 연상되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반면, 박보나 작가는 생존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뻗어나가는 이야기에 어울리는 예술 작품을 덧붙여 소개한다.



책 디자인은 이기준 디자이너가 맡았다. 예전에 친구와 서점에서 민음사 쏜살 문고 시리즈를 보고 마음에 드는 표지를 쭉 꺼내 디자이너를 확인해봤더니 전부 이기준 디자이너가 작업이라 그 뒤로 이름이 각인돼서 볼 때마다 반갑다. (이번 디자인도 취향 저격... 서체 뭘까, 궁금해...)

얇은 책이라 목욕하며 읽기 좋을 것 같아 욕조에 물을 한가득 받아놓고 들어가 읽었다. 시간을 확인하지 않아 금세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고 읽었다.



내용이 하나의 키워드로 묶이고, 한 장의 내용 말미에 나오는 키워드가 다음 장의 시작 키워드가 된다.

그렇게 쭉 돌아서 다시 시작할 때 나왔던 '나무' 키워드로 돌아오는 구조.

구조도 너무 흥미롭고 흥미로운 구조를 원형 목차로 디자인한 것도 너무 좋았다.

마음에 와닿았던 구절은 너무 많았지만, 내가 새로운 한해를 마주하는 마음가짐으로 삼을 문장들을 소개해 본다.



작은 생명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때, 주변을 더 넓게 이해할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한껏 당겨 읽어본다. 다른 생명과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세상은 파괴와 멸망의 나락 반대편에 선다. 그곳에서는 누구도 외로울 리 없다.

33-34p 새의 소리를 이어간다면



거대한 포춘쿠키 더미는 당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의 거대한 무덤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작업에 쓰인 포춘쿠키는 중국 이주민을 상징하기에 더없이 적절하다. 중국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면 공짜로 얻을 수 있는 이 과자는 정작 중국에는 없다. 쿠키를 처음 만든 사람도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일본인 사업가였다. 하찮게 부숴 맥락 없는 운세를 읽고 잊어버리고 마는 포춘쿠키는, 미국의 중국 이민자들처럼 미국에만 있다.

38p 상상의 맹수 호랑이를 키우고 있지 않은지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대한민국에 사는 외국인의 수는 133만 명이고, 그중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수는 공식적으로만 84만 명 이상에 달한다고 한다. 다양한 사회 구성원이 만드는 혼종 문화와 변화하는 정체성은 이미, 지금, 여기의 실제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차이와 낯섦을 구실로 이방인들을 여전히 멀리 밀어내곤 한다. (중략) 폭력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끔찍하지만, 혐오의 언어들이 그저 가볍게 받아들여지고 일상적으로 자리 잡아간다는 사실은 더 소름끼친다. 오해와 증오는 가짜 맹수를 살찌운다.

43p 상상의 맹수 호랑이를 키우고 있지 않은지



현대인은 동물을 가공되고 포장된 선홍색의 식자재로 슈퍼마켓에서나 볼 수 있을 따름이다. '애완동물'로 선택된 동물들은 동물성을 철저히 제거당하고 우리에게 복종하도록 훈련받으며 인간화된다. 동물보호구역이나 동물원의 동물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인간의 감시와 통제 아래, 동물들은 무대 위의 구경거리로 무기력하게 존재할 뿐이다.

90-91p 원숭이의 눈에 신성(神聖)이



나는 당신이 사는 집의 브랜드와 가격이 궁금하지 않다. 나는 당신이 같이 사는 세상에 대해 얼마나 깊이 생각하고 있고, 외로운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 부동산을 팔아 얼마의 시세차익을 남겼는지가 아니라, 무엇에 따뜻함과 위로를 느끼는지 알고 싶다. 당신의 공간을 욕심과 이기심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한 시간과 추억들로 채울 수 있으면 좋겠다.

134-135p 도시와 아파트에도 사람이





사람이 따뜻함과 위로를 느끼는 지점을 아는 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지점들은 내가 무기력해지거나 바닥이라고 생각될 때 다시 기력을 찾을 때까지 버티는 힘이 되어주고, 또 내가 버틸 수 있어야 타인의 괴로운 시간을 함께 견딜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사람들을 만나고 소소한 수다를 떨 때 따뜻함과 위안을 느끼고, 그 온기로 일주일, 한 달, 수 개월을 사는 것 같다. 그동안은 빵빵했는데 코로나로 곳간이 빵꾸나서 요즘 열심히 메우다가 다시 위드코로나 끝나서 빠른 속도로 온기가 사라지고 있다. 부스터샷 맞기 전에 만나지 말자고 해서 생일에도 친구들을 못 만났다. (왈칵) 애두라, 나 몰래 질병관리청으로 직장을 옮긴거니? 크리스마스에 겨우 친구 만나기로 했는데, 그때까지 존버해야 한다. 슬퍼... 저에게 사교와 우정을 허락해주세요. 몹쓸 전염병아...

'지구별의 다른 미래를 그려본다'는 작가의 말처럼 살생, 도시의 삶, 불안 조장하는 사회, 장애 차별 등 다양한 주제를 키워드 하나에서 시작해 이야기로 확산해가는 구조가 좋았다.

각 챕터가 길지 않고 비관도 낙관도 아니지만 희망을 담고 있는 점도 좋고.


상반기에 읽은 책이 뭐가 있는지 잘 떠오르지 않아서 일단 2021 하반기의 책으로 꼽았다.



*한겨레출판, 서평단 하니포터 1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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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집 - 불을 켜면 빵처럼 부풀고 종처럼 울리는 말들
안희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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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이 단어들과 제 삶이 톱니처럼 맞물린 적 있다는 사실이에요. 어떤 단어는 시간의 역할을 대신했고 어떤 단어는 공간의 역할을 대신했어요.

프롤로그에 써진 작가의 말. 각각의 단어와 그 단어를 만나거나 떠올리는 순간의 이야기가 모여있다. 라페나 버저비트처럼 내게도 익숙한 단어가 작가의 눈으로 새롭게 쓰일 때는 흥미로웠고, 밀코메다 같은 단어를 보면 먹먹해졌다.





그런 의미에서 '밀코메다(Milkomeda)'는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상상적 현실이다. 미 항공우주국에 따르면 현재 우리 은하의 이름은 '밀키웨이(Milky Way)'인데, 약 40억 년 뒤엔 안드로메다와 충돌해 새로운 은하가 탄생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새 은하의 이름이 (밀키웨이와 안드로메다의 합성어인) 밀코메다라고. (...) 그러나 그 먼 시간에도 이름이 있다. 내일, 한 달 뒤, 1년 뒤, 10년 뒤에게도 없는 이름이.

(...) 그러니 오늘의 나는 오늘 쓸 수 있는 문장을 쓰면서 이곳의 나를 찾아올 밀코메다의 시간을 기쁘게 맞이하고 싶다. 와야 할 시간은 기필코 오게 되어 있다. 그럴 때 나의 인사는 "왜 왔어?"가 아니라 "왜 이제야 왔어"이기를 바라며.

196p 밀코메다

명사를 잘 못 외우는 병이 있다. 한번 헷갈린 단어는 아주 오래 헷갈리는데, 머릿속에서 엉킨 정의를 딱히 바로 잡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모든 걸 제대로 아는 건 불가능하니 내 삶에 오해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인지한 채로 사는 것도 나쁘진 않다. 시력이 나빴을 때(지금은 수술을 해서 좌우시력 1.5의 인간이 되고 말았다) 종종 안경을 쓰지 않고 다녔던 것과 비슷한 감각으로.


시인의 세상에서 단어를 오해하는 건 어떤 의미이려나. 안희연 작가는 낯설고 새로운 단어를 발견할 때마다 골동품을 발견한 것처럼 조심스럽게 손으로 받쳐들고 먼지를 후후 불고 부드러운 천으로 닦아서 단어마다 제자리를 찾아주는 사람 같다. 글을 읽을 때마다 그 조심스러움이 종이 너머로 따뜻하게 전해져서 뭉클했다.


한때 친구와 밀코메다의 시간을 상상한 적이 있다. 모두가 야간 자율학습을 하던 시간에 우리는 몰래 나와 건물 중앙계단에 앉아 있었다. 커다란 통창 너머를 마주보고 어둡고 찬 계단에 앉아 있었다. 운동장을 비추는 희부연 불빛에 의지해 베이지색 우주와 문명의 끝과 신인류에 대해 소근거렸다. 우린 더 이상 그 주제로 이야기하진 않지만 종종 그애를 만날 때마다 같이 듣던 노래와 나눈 이야기를 떠올린다. '밀코메다'라는 단어를 마주친 순간 그 모든 것들이 쏟아졌다.


반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한 적산온도는 경직된 의미에 갇히지 않고 여러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온도를 저금한다는 말. 모든 존재가 꽃이라면, 나의 피어남에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할까.

(...)

왜 항상 스스로를 벌하는 방식으로만 살아온 걸까. 임계점은 한계가 아니라 꽃망울이 터지는 환희의 순간일 수도 있는데. 피려는 마음을 모른 척한 건 세상이 아니라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27-29p 적산온도



결핍은 결핍대로 아름답다는 거, 아니 결핍이 도리어 빛나는 무늬를 만든다는 거, 평생 모르고 사는 일도 허다하겠지. 알아도 부정하느라 애먼 시간만 허비하겠지. 노란 나비, 골목마다 놓인 전봇대와 가로수, 베란다의 화분들... 아주 가까이에서, 숱한 메신저들을 통해 알려주고 있는데도 못 보겠지. 나타남과 드러남의 의미, 안 믿겠지.

39p 삽수



우리 집에도 있다. 결핍으로 무늬가 아름다운 식물이. 지금은 동면 중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흰색과 분홍빛의 얼룩이 점점이 묻은 연둣빛 잎을 피웠다. 잘 키우고 싶어서 생육법을 찾아봤더니 물을 줄 때는 미지근하게 데워줘야하고, 비료는 금물이었다. 부족한 성분 때문에 색이 화려한 거라 비료를 주게 되면 색이 변한다는 게 이유였다. 인간이 스스로 결핍을 만들어 놓고 사랑하는 게 기괴했지만 그런 기괴함이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끔찍하게 아름다웠다. 내년에도 칼라디움의 아름다운 결핍을 만끽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대목은 같은 작가의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시가 떠오르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오래된 이름 하나를 가리키며
나는 그에게 세번의 어둠과 수천번의 알록달록한 기억을 주었노라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겨우 첫번째 어둠 앞에서 허물어졌다고 했습니다

(...)

삶과 죽음을 가르는 건 단 한걸음 차이였다고 했습니다
설탕이 물에 녹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라고도 했습니다

-내가 달의 아이였을 때,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너무 좋아서 우는 중)


인간이 제아무리 약하다 해도 인간은 저절로 강한 면이 있다. (...)

우리는 모두 찢기기 쉬운 피막을 가지고 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이의 피막에 함부로 막대기를 꽂아 휘저을 수 없다. 대단한 무엇이 파괴되어서가 아니다. 한 인간을 둘러싼 피막이 손상될 때 인간은 죽는다. 아주 작은 찢김으로도 상한다. 그러니 겪고 뒤척이면서 두터워지는 수밖엔 없다.

78-79p 피막




나는 그 애의 울음을 참는 얼굴을 알고, 우리가 눈 마주친 순간 반으로 쪼개진 커다란 슬픔을 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집이라면 그 집을 짓기 위해 설계된 내력벽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공평히 나누어 가진 부재의 기억같은. 신의 입장에선 당연한 설계일지 몰라도 인간의 관점에선 피하고 싶은 불운이다. 그런데 또 달리 생각해보면 내력벽이라는 건 모든 걸 부숴도 부서지지 않는 최후의 보루, 영혼의 핵심인 셈이니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아름다운 것이겠다.

100-101p 내력벽



마법이라는 단어를 여기에 쓰면 안될 것 같지만 슬픔의 마법에 걸린 것처럼 한 도시의 사람들이 모두 울음을 견디던 4월이 있었다. 그 봄을 함께 기억하는 사람들은 조금 특별하다.



세상 어떤 것도 당연한 것은 없다는 생각만으로도 제자리를 찾는 것들이 있다. 마음이 펄펄 끓을 땐 너는 왜 내게 심장을 꺼내 주지 않느냐고 따져 묻기 전에 이런 주문을 외워보는 건 어떨까. 일일시호일. 일일시생일. 날마다 좋은 날, 날마다 생일이라는 마음으로.

131p 구득



왜 당신은 인간에게 죽음을 가르치나요? 왜 당신은 시간의 손바닥 위에 우리를 올려두고 주사위 놀이를 하나요? 이 세계가 하나의 얼굴이라면, 왜 당신은 한결같이 슬픈 표정만 짓고 있나요?

166p 꼭두


꼭두는 상여를 장식하는 나무 조각상을 이르는 말로, 이승과 저승, 꿈과 현실을 잇는 존재다. 망자에게 길을 안내하고,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영혼을 위로하는 역할을 한다. 꼭두는 언제나 선두에 있다. 꼭두새벽이 아주 이른 새벽을 부르는 말이듯이 꼭두는 언제나 맨 앞에서 길을 내고 불가능한 물을 열며 나아간다.

167p 꼭두


존재가 깃털 같아지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168p 꼭두

당신은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의심합니까. 가장 깊이 찔린 기억과 가장 높이 뛰어올랐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어떨 때 흩어지거나 맺힙니까. 그러니까 당신의 온도, 색깔, 질감, 경도는 어떠합니다.

172p 안료

이거 완전 고백 아닌가요. 저런 게 궁금하면 사랑이지. (이마 짚)


이주영 배우님이 저 문장 낭독해주시면 좋겠다. 모닝콜로 해놓고(할 줄 모름) 매일 아침 나무아미타불할렐루야갓뎀 외치면서 일어날래.
중국어 버전은 주동우가... (혼절) 저 주동우 너무 좋아해서 중국판 우결도 꾹 참고 봤다요. 우결이 주동우 마지막 헤테로 역할이면 좋겠다. (아님)

갑자기 주동우 생각에 정신이 혼미하네.


안료는 염료와 다르다. 안료와 염료는 물질에 색을 발현시키는 색소라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염료는 물에 녹아 스며드는 반면 안료는 물이나 기름에 녹지 않는 성질을 지녔다. 안료는 다른 무엇과 섞이더라도 자신의 색을 잃지 않고 오히려 더 분명하게 자신임을 증명한다. 그런 안료를 재료 삼아 빚는 시는 빛에도 열에도 추위에도 강할 것이다.

174p 안료


내가 쓴 문장들이 징검다리가 될 때가 있다. 과거의 문장을 딛고 현재의 문장을 내려놓는다. 현재의 문장을 딛고 미래의 문장을 내려놓는다. 그렇게 간신히 한 걸음씩 나아간다. 망망대해 같은 바다를. 말과 사람이 함께, 느리더라도 함께.

179p 탁성

가끔 예전에 쓴 글을 보면서 위로 받을 때가 있다. 며칠 전에도 4년 전 일기에 쓴 문장에 기댔다. 내일을 위해서 오늘도 무언가 써놓아야 겠다. 느리더라도 멈추지 않고 걷기 위해 써야지.



연말에 아껴둔 카드처럼 꺼내 읽기 좋은 책이라 많이 추천하고 싶다.




*한겨레출판 서평단 하니포터1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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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게임 취급 설명서 - 게임에 대해 궁금하지만 게이머들은 답해줄 수 없는 것들
최태섭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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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를 쓴 최태섭 작가의 신작. 게임 산업이라 하면 규제, 노동자 이슈와 여혐 문제 등 여러 개의 키워드가 한 번에 떠오른다. 게임이 진짜 문제일까? (그럴 리가 없지.)



게임을 안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곰곰히 되짚어보니 나도 게임을 굉장히 좋아했다.






한때 컴퓨터에 기본으로 깔려있던 고인돌을 좋아했으며 (고인물 아님)



친구와 크레이지아케이드를 하던 시절도 있었고, 바람의 나라에서 열심히 도토리를 줍던 때도 있었다. 티끌 모아 비싼 갑옷 사놓고 레벨이 안되어서 못 입고 있었는데, 길드원에서 배신 당하고(킬 당함) 갑옷을 뺏긴 뒤로 온라인 게임에서는 완전히 손을 떼게 됐다. (다행인가.)



한때 CD 게임이 유행할 땐 쥬타이쿤과 롤러코스터 타이쿤도 했었고, 쇼미더머니의 스펠링을 외우게 만든 스타크래프트나 양육과는 전혀 관계 없는 육성 시뮬레이션 프린세스 메이커도 좋아했다.



휴대폰이 생긴 뒤로는 각종 타이쿤의 제왕이 되었다. 생과일 타이쿤, 붕어빵 타이쿤, 짜요짜요(젖소 키워서 우유파는 타이쿤), 편의점 타이쿤 등. 폰 게임으로는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는 것 같다. (왜 게임에서도 프롤레타리아를 벗어나지 못한 건지.)



꾸준히 오락실의 하우스 오브 데드를 좋아했는데(좀비 총살 게임), 고등학교 때는 뒤늦게 펌프에 빠져서 담임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야자 시간에 오락실에 간 적도 있었다.


그리고 폰게임 클래시 오브 클랜에 영혼을 팔았다. 지인들이랑 길드까지 만들어서 약 3년을 열심히 키웠는데, 무과금 유저는 손가락 관절을 갈아넣어야 키울 수 있는 구조로 바뀌어서 지금은 하지 않고 있다. 약탈하는 것도 재밌고, 일본 길드랑 붙을 때마다 질 수 없다며 다들 진심이 되는 것도 재밌었는데...


최근에는 동생이 산 닌텐도로 동물의 숲이나 낚시 게임 같은 걸 하기도 했다. 아, 사실 나는 엄청난 게임쟁이었구나...?!






PC, 콘솔, 스마트폰 등 다양한 기기를 거쳐 게임을 즐기기는 했지만 정작 유명한 롤이나 오버워치 같은 게임은 해본 적이 없다.


'모두'를 위한 게임 설명서라는 제목에 걸맞게 게임 산업과, 시장, 게이머, 노동자 등 게임과 연관된 다양한 키워드를 설명하는데, 게임학개론 같은 느낌도 들었다. 전공은 아니고 교양 수업 같은. 게임 산업에 대해 전반적으로 훑기에 좋았다. 전혀 게임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친절한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4장 때문이었다. 본격적으로 게임과 얽힌 이슈를 풀어주는 장이기도 하고 게임에 갖고 있는 오해를 풀어주는 장이기도 하다.


성우가 Girls Do not need a prince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그가 메갈리아(나는 아직도 이 집단의 정체를 모르겠다. 너무 온갖 이슈에 소환되는데 실체를 본 적이 없어서 관념 속의 커뮤니티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라며 남성 유저들이 항의한 일이 있었다. 결국 그 성우의 분량은 삭제됐다. 소설 <1984> 속 세상도 아니고 21세기에 사상 검증이라니, 당시에도 믿을 수 없었지만 지금도 아리송하다.


'혜지'라는 단어는 특정 여성의 이름이 아니었다. 너 왜 이렇게 여자 같냐, 라는 말을 보다 구체적이고 모욕적으로 쓰기 위해 채택한 이름이었다는 게 조금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게임하는 '일부' 남성이 문제라는 건가, 게임업계가 문제인가? 싶었는데, 잘못된 질문이었다.



이것이 다 게임 탓이라는 것은 사실 앞뒤가 바뀐 말이다. 오히려 세상이 게임에 반영되고 있다. 현실의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현실의 스트레스와 분노가, 현실의 능력주의와 약강강약의 비열함이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다는 사이버 세상 속에서도 그 지긋지긋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다. 오늘날 게임과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에 그다지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게임에는 그럴 수 있는 잠재력이 있고, 이미 그런 잠재력을 보여준 많은 게임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게임에 세상이 반영되고 있다는 당연한 말이 새삼스럽게 소름 끼쳤다. 범죄에도 세상이 반영된다. '묻지마 살인 사건'이라고 불리는 여성혐오 범죄가 얼마나 많았던가. 게임 속 세상만 정의로울 까닭이 없지. 오히려 가상의 세계이기에 더 필터링 없는 생각들이 오고 간다고 생각하자 머리털이 쭈뼛 섰다. 조금 암담하기도 했다.


책 도입부에서 게임과 문화로서의 게임에 대해 정의 내리면서 게임이라는 장르를 설명하는데, 게임은 현실과 마찬가지로 '상호작용'이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영화 같은 영상매체에서도 시도되지만 게임처럼 높은 상호작용을 일으키긴 어렵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게임을 하면서 현실과 똑같이 공과금을 내고 9 to 6로 출퇴근을 하지는 않는다. 게이머들은 상호작용과 더불어 '재미'라는 목적을 공유하는데, 지금이 그 재미의 정의를 다시 내릴 때가 아닌가 싶었다.


게임은 게임이다. 그것을 잊으면 안된다.





*한겨레출판 서평단 1기 하니포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제 한국사회에서 게이머를 소수라고 칭하는 것은 여러모로 멋쩍은 일이다. 그리고 게이머라는 말만으로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도 어렵다. 결국 어떤 게임을 어떻게 즐기고 있는지를 알아야 우리는 그가 어떤 게이머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또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는 것은 딱히 아니다.

여전히 젊은 남성이 가장 많지만 여성도, 중장년도 적지 않다. 이 조사에서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게이머는 장애인, 혼혈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빈곤층일 수도 있다. 게임을 하면서 호구조사를 할 일은 거의 없겠지만, 중요한 것은 게이머가 어떤 사람일 거라고 쉽게 넘겨짚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 게이머는 그야말로 ‘아무나‘이기 때문이다. - P115

전 세계의 언론과 종교계, 교육계, 학부모에게 게임은 아이를 망치는 주적처럼 인식되어왔다.

여기에는 게임이 갖고 있던 편리한 특성들이 있다. 역사가 짧았던 게임은 젊은 층에서 주로 즐기고 기성세대들은 그게 뭔지 잘 모르는 ‘세대구분적인 취미‘였기 때문이다. 잘 모르기 때문에 쉽게 악마화할 수 있다는 것은 사회적 혐오를 연구하는 많은 연구자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바다. - P182

여성 캐릭터들이 모조리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끈이나 천 쪼가리 같은 것을 옷 대신 걸치고 등장하는 게임에 대해서도 ‘네가 예민한 것일 뿐‘이라고 퉁치고 넘어가면 되는 것일까? 또 할리우드 영화가 백인이 아닌 사람들을 비열한 방식으로 정형화하는 것이 문제라면, 게임에서 묘사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 P184

남초커뮤니티의 일부 이용자들은 "허버허버가 특별히 남혐단어가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여초에서도 ‘보이루‘를 가지고 똑같이 우겼기 때문에 상관없다"는 식의 주장을 펴기도 했다. - P218

젊은 (이성애자) 여성은 이성애자 남성의 욕망의 대상이다. 게다가 게임하는 여자는 특별한 존재다. 앞서 말했듯이 여성이란 일반적으로 게임을 못마땅해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나와 같은) 게임을 하는 여성이라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나를 이해해줄 가능성이 있다. 게임하는 여성은 이렇게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유혹적인, 그리고 유혹하는 존재가 된다. 동시에 이것은 여성의 게임실력을 의심하는 새로운 근거가 된다. 여성은 ‘남자친구‘를 따라서 게임을 시작했거나 아니면 자신을 떠받들어주는 ‘보빨러‘들에게 업혀서 쉽게 등급을 올렸을 것이므로 그들은 게임을 잘 할 리 없다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여성의 입장이 단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음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P223

<오버워치>와는 다르게 음성채팅이 존재하지 않는 <리그 오브 레전드>는 다른 사람의 성별을 식별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하지만 인터뷰에 참여한 남성 게이머들은 자신들이 ‘혜지‘를 식별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사용하는 챔피언의 외형이나 성별, 움직임과 전투 방식에서의 ‘여성스러운‘ 플레이 스타일 등이 단서라고 주장했다. (중략) 이는 감식안이 별 의미가 없음을 입증하는 것은 물론이고, ‘혜지‘가 게임을 못하는 서포터를 ‘여성화‘해 모욕하는 것일 따름이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나아가 여성게이머에 대한 모욕을 넘어서, 게임을 빌미로 남성들이 여성적인 것이라고 여기는 것 자체를 하등한 것으로 여기고 있음을 고백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 P229

이 연구에서 얻을 수 있는 함의는 여성 게이머에 대한 그 수많은 말들은 모두 실제의 여성 게이머가 아니라 그저 남성 게이머들이 믿고 싶은 것을 떠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존재하지 않을 리는 없겠지만, 이렇게 지칭하는 단어까지 만들어내면서 떠들어댈 만큼 존재하는지를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게다가 아마도 현실에서 ‘혜지‘보다는 훨씬 많이 존재할 <롤>을 잘하는 동성 친구의 캐리를 받아 티어를 올리는 남성 게이머들을 지칭하는 단어는 없으며, 이들은 친구를 잘 만났다는 우연 때문에 높은 티어를 얻었음에도 공정성을 해치는 이들로 지목 당하지 않았다. - P231

이것이 다 게임 탓이라는 것은 사실 앞뒤가 바뀐 말이다. 오히려 세상이 게임에 반영되고 있다. 현실의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현실의 스트레스와 분노가, 현실의 능력주의와 약강강약의 비열함이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다는 사이버 세상 속에서도 그 지긋지긋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다. 오늘날 게임과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에 그다지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게임에는 그럴 수 있는 잠재력이 있고, 이미 그런 잠재력을 보여준 많은 게임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 P235

몇 겹의 아이러니 속에서 산업이자, 예술이자, 놀이이자, 매체로서의 게임이 존재한다. 게임은 우리에게 현실을 버텨낼 수 있는 즐거움과,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상상력을 준다. 예기치 못한 인연과, 작은 승리들의 기쁨도 준다. 하지만 이것을 마음 편히 즐기려면 게임이 게임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게임이 몰입의 핑계를 대면서 은근슬쩍 사람들의 삶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진화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고, 재미라는 핑계를 대면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는 인류의 긴급한 퀘스트에 역행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중략)

게임은 게임이다. 그것을 잊으면 안된다.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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