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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삶이 될 때 - 낯선 세계를 용기 있게 여행하는 법
김미소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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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주 얼렁뚱땅 영어 스터디를 하고 있다. 실은 스터디라고 하기도 좀 그렇고 실패해도 아까울 게 없는 챌린지에 가깝다.


주3회 이상 페파피그 영상을 보고 인증하는 건데, 화면을 찍어서 올려도 되고 새로 익힌 표현을 받아 적고 그 공책을 찍어 올려도 된다.


영어와는 담을 쌓은지 오래고 토익을 마지막으로 본 것도 까마득하니, 다들 영어를 ‘공부’하는 행위가 어색하지만 재밌게 하고 있다. 요는 그거다. ‘재미’.


인생에서 영어 학습자로 산 기간을 헤아려보면 그때 태어난 애가 대학에 가고도 남았는데 영어와 아직도 서먹하다.



제2언어로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상황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갈 때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때로는 부당함과 무시도 감수해야 한다. 세상은 성인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으며, 제2언어를 통해 성인 대 성인으로 맺는 관계는 꼭 평등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아, 외국어를 배우는 건 숨 쉬듯 편안했던 자신의 자아를 다 무너뜨리는 과정이구나. (중략) 모국어 세계에 편안히 머무르면서 제2언어 자아를 만들어나갈 수는 없다.


35p



제2언어를 배우는 적기에 대해서는 조금 의견이 갈리지만, 공통적으로 성인은 배우기 힘들다고 말한다. 뇌가 굳고 혀가 굳고, 아무튼 다 굳어서 그렇다는데 책은 다른 게 문제가 아니라 ‘모국어로 단단히 형성된 자신의 자아’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자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언어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지나가는 여섯 살 아이에게도 배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페파피그 스터디가 즐거운 이유는 영상 내용이 쉬운 것도 있지만, 정말 쉬운 표현들을 가지고 ‘나 이런 것도 몰랐어~’라는 태도로 부끄러워 하지 않고 깔깔 웃어넘길 수 있는 친구들이 함께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저자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거치고 지금은 일본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독특한 경력은 저자가 언어와 제2언어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게 했다.


제2언어를 배우는 이유는 그 문화에서 나고 자란 원어민과 똑같이 말하기 위함이 아니라, 나의 시선으로 그 언어와 문화를 직접 바라보기 위함이다. 나다운 고유함이 가장 소중하다.


80p


발음을 잘하는 것, 뉴스를 이해할 수 있는 것, 여행지에 가서 길을 물어볼 수 있는 것 등 제2언어를 잘하는 기준은 저마다 다를 수 있지만 어떤 언어를 습득하는 이유가 나의 시선으로 언어와 문화를 ‘직접’ 바라보기 위해서라는 점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영어는 제1언어로 구사하는 사람보다 제2언어로 구사하는 사람이 더 많은 언어’인 만큼 그 안에 담긴 문화를 영미권에 한정지어 설명할 수 없다. 저자는 영어를 배우는 일을 ‘다른 문화와 충돌하고 서로의 문화에 균열을 내며 세계를 넓혀가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앞서 나왔던 자아를 무너뜨려야 제2언어를 배울 수 있다는 말이 다시 떠오르는 지점이었다.




분명 제목에 적은 오타쿠 외국어에 찔린 분들이 있겠지.



모르는 사람을 위해 설명하자면 소위 ‘덕질’을 하며 배운 외국어를 말하는데,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과는 동떨어져 있어 생활하며 쓰기에는 무리가 있는 말들이다. 예컨대 중국의 고장극을 보며 외우게 되는 ‘꾸이씨아(꿇어라)’, ‘삐줴이(닥치거라)’, ‘황샹(황제폐하)’ 등이 그렇다. 분명히 외국어인데, 외국인을 만나 쓸 일이 없다.



야자시간에 공부하기 싫을 때면 당시 좋아했던 가수 보아의 일본어 가사를 받아적거나 일본어로 쓰인 가사를 해석하며 시간을 떼우곤 했는데, 그때 익힌 단어들은 거의 연애편지에나 쓸 수 있는 말들이었다. ‘사랑의 증표’, ‘세상의 지도’, ‘우리가 사랑이 아니라면 이 세상에 사랑은 존재하지 않아’ 같은 말들이었으니…. (이마짚)



그리고 성인이 되어 만난 나루토의 일본어! ^^! ‘술법’이라는 단어를 외워서 어디에 쓴단 말인가. 저자가 책에서 말하듯이 나 역시 초급 수준에서는 여행지에서 조금 말을 하는 정도, 고급 단계가 되어야 비즈니스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실제로 초급-중급-고급 단계를 거쳐 미국으로 간 한국 유학생들은 수업 발표나 연구 토론은 쉽게 하는데 오히려 사교 모임에서 말하기를 어려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건 그 상황에 맞는 표현이나 문화적 지식의 부족 때문이다.




언어 능력은 아래에서 위로 쭉 그어나가는 수직선이 아니다. 옆으로 계속 덧붙여 확장해 나가는 퍼즐 맞추기에 가깝다. 처음 조각을 맞추기 시작할 때는 막막하지만, 어느 정도 맞춰놓으면 다음에 어떤 조각을 끼워야 할지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90p



‘오타쿠 외국어’는 엘사 얼굴만 멋지게 완성해 놓은 겨울왕국 퍼즐에 가깝다. 좋아하는 부분만 완성도 높게 만들어둔 후에 다른 부분은 일단 비워놓은 단계. 이렇게 한 부분을 완성해 두면 다른 능력을 짜 맞춰 나가기도 상대적으로 쉬워진다.


91p



최근에는 언어 지식은 오히려 부차적이고, 대화 상대자와 함께 의미를 만들어갈 수 있는 유연한 태도 및 주변의 의미 자원을 활용하여 의사소통의 목적을 달성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예를 들면 같은 제1언어를 공유하는 한국인 사이에서도 “나 때는 말이야~”를 설파하는 사람과는 아무리 노력해도 대화가 되지 않는다. 언어 지식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상대와 함께 의미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의지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102p


그럼에도 계속 제2언어 앞에서 움츠러드는 나에게 저자는 ‘지식’보다는 ‘의미’를 강조한다. ‘의사소통의 목적을 달성’하는 일.


아무 말 대잔치를 하는 것도 나이고, 어느 날 운이 좋아 유창하게 말하는 것도 나이다. 내 말의 하찮음을 견디는 만큼 내 말그릇이 넓어진다.


136p


실질적인 지식서는 아니지만 제2언어를 대하는 태도와 관점을 다시 세우게 한다는 점에서 확실히 의욕을 고취 시키는 책인 것 같다. 내 말의 하찮음을 견디는 만큼, 이라는 문장이 크게 와닿았다. 오늘은 페파피그지만, 언젠가는 언젠가는 최사라가 될 것이다!!!



제2언어 학습에 좌절하고 또 다시 시도하려는 사람들이 마음을 다잡을 때 읽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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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통당한 몸 - 이라크에서 버마까지, 역사의 방관자이기를 거부한 여성들의 이야기
크리스티나 램 지음, 강경이 옮김 / 한겨레출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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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전쟁터에서 여성의 몸은 여전히 전장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없었다면 이 문장이 이렇게 생생하게 와닿았을까.

우크라이나가 아니라도 현재 진행중인 전쟁은 얼마든지 있는데, 물리적 거리가 가깝다는 이유로 더 충격적이고 잔혹하게 느낀다. 요즘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철학>을 아주 조금씩 읽고 있는데, 그곳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눈앞의 아이가 물에 빠져 있다면 기꺼이 뛰어들어 구하지만 지구 반대편의 아이가 굶어죽는데는 적은 돈도 기부하지 못한다.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고찰하는 글을 읽고 난 후라 마음이 더 싱숭생숭해졌다.





사실 읽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어떤 묘사는 지나쳤고, 어떤 건 거짓이 섞여 있었고, 어떤 건 사실과 구분할 수 없었다. 사실이 중요할까도 싶었다. 관통당한 몸에 온전한 무언가가 남아있을리 없다. 망가진 채로, 망가진 모양 그대로 기록하려는 이 책이 그래서 소중했다.

하지만 이 기록조차 그들에게 또다른 폭력은 아닌지 고민하는 저자의 생각이 읽는 내내 마음을 괴롭게 했다.

한국전쟁을 겪은 할머니는, 부모의 죽음을 귀로 들었다. 쌀 뒤주에 숨어 부모를 앗아가는 총소리를 듣고 사나흘을 숨어 있었다고 했다. 그 전후의 기억은 온전치 않다. 끔찍한 이야기들의 전후는 가끔 앞뒤가 맞지 않고 흐릿하다.




언젠가 여성들이 회복할 수 있을까요? 내가 그에게 물었다.
“저는 아주 많은 여성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만 그 대답은 그럴 수 없다는 겁니다. 한 여성이 자기 이야기를 하겠다고 결정할 때 그건 자신이 회복됐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주체가 되겠다고 말하는 겁니다.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났지만 내 아이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나게 놔둘 수는 없다고 말하는 것이죠.”
-468p





하지만 그들이 입을 열 때, 변화의 주체가 되기로 마음 먹었을 때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가? 역사의 방관자이기를 거부한 그들의 이야기에 우리는 늘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 관통당한 몸을 똑바로 쳐다볼 용기나 있나, 내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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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을 까는 여자들 - 환멸나는 세상을 뒤집을 ‘이대녀’들의 목소리
신민주.노서영.로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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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가 마음 아프다. 최악과 차악만을 던져주는 사회에서 20대 여자들은 어디로 향하는가. 그러게요. 정말 어디로 향하고 계세요? 그들에게 지금은 최악인지 차악인지. 저에게는 확실히 최악입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엇갈리는 표심이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이번 대선은 기운이 빠진다.




20대가 아니라 '이대녀'라는 타이틀은 모면했지만(더 웃긴 삼대녀가 있다...ㅂㄷㅂㄷ) 이번 대선 결과에 아무도 주지 않은 부채감을 느꼈다. 실은 세월호 이후로 늘 그 또래들에겐 부채감뿐인 것 같다. 내가 더 잘 살았어야하지 않을까? 조금이라도 더 빨리 사회에 나와, 아무튼 선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주제에, 그 호칭에 떳떳하려면 내가 더 괜찮은 어른이 되었어야하지 않을까. 적어도 내가 경험한 끔찍한 일들은 모르고 지낼 수 있게 도와주어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내가 더 나쁜 사람이 되지 않도록, 그날이 나를 지탱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부채감은 내게 과분하고 감사하고 미안하다. (나보다 엉망진창인 어른이 많은 걸로 위안을 삼아도 되겠지만, 그들은 나에게 수치만 안길 뿐.)







남성혐오는 있지만 없는 것.


이 얘기를 2016년 회식자리에서도 선배랑 했었다. 여성을 혐오하는데, 여성을 죽이겠냐고 쳐다보기도 싫어서 안 마주치겠지, 그러니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말하는 그에게 더 설명할 기운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땐 했다. 선배에게 되바라진 새끼라고 실컷 욕을 먹었다. 되바라진 게 맞아서 억울하지도 않았다.


이제 이런 원론적인 얘기는 따분하게 느껴질 정도로 교묘하고 치사한 방법으로 여성혐오를 펼치는 걸 보면, 참 누굴 미워하는데 진심이구나 싶다. 진짜 미우면 그냥 안 보면 그만인데, 늬들 그거 사랑이다. 짝사랑. (절레)


가뜩이나 기운이 없는데, 이렇게 화가 나는 텍스트를 차분히 읽고 읽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와닿았던 목차는 '우리 자연사하자'였다. 죽음을 떠올릴 때 나를 처음 발견하게 되는 이의 얼굴을 상상하게 되면 조금 더 단정히 살고 싶어진다. 시체만으로도 당황스러울텐데, 다른 걸로 머릿속을 어지럽히지 말아야지. 물론 아주 나중의 이야기다.


마지막 퇴근길에는 내가 포기한 것과 다시는 가질 수 없는 것들이 머리에 뱅글뱅글 돌았다. 그러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것조차 못 버티는 사람이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해? 스스로에게 한 날카로운 질문에 대답할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187p, 우리 자연사하자



스스로 던진 질문도 아니었고, 가까운 이에게 들은 질문이라 더 오래 남았다. 다들 버티라고 했고, 나도 저 질문을 마주하기 싫어 버티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먼저 무너진 건 몸이었다. 몸이 망가진 뒤에야 더 무너질 마음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기대수명이고 자연사고 참 사치스럽다는 생각을 20대 후반에 했다. (당시 내 생활패턴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내 예상 수명은 40 초중반이었고, 예상 사인은 병사였다. 아마 그때의 패턴이 수명을 20년은 깎지 않았을까? 인생 얼마 안 남았다 아자자!)


좌절하지 말고, 일단 살아남아야지. 라고 말하면서 지난 정권에서의 내 삶을 돌이켜보면 그다지 희망적이지는 않다. 사실 아직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왜 지레 겁먹고 있을까.


'세상을 뒤집을 '이대녀'들의 목소리'라고는 하지만, 세상을 단번에 뒤집는 건 투표로도 안 된다. 매일매일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그리고 가끔씩 이렇게 분노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의 글을 읽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괜찮아?


앞으로 5년 간 자주 묻게 될 것 같다. 주변에, 그리고 스스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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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지 않다
최다혜 지음 / 씨네21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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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면 노래방을 가는 친구들이 있다. 우리는 가성비를 챙긴다며 대학가 코인 노래방을 찾아 작은 부스에 서너명이 꾸역꾸역 몸을 웅크리곤 했다. 각자 좋아하는 곡은 달랐지만 떼창곡은 장범준의 ‘노래방에서’였다. 그 가수의 곡은 벚꽃 연금이라는 벚꽃 엔딩 말고는 듣지 않아서 그날 노래방에서 친구들이 부른 ‘노래방에서’가 제대로 들어본 첫 곡이었다. 노래방에서 나와 가사 한소절이 자꾸 귀에 맴돌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지 않아요.’



<아무렇지 않다>에 등장하는 김지현, 강은영, 이지은은 비정규직 노동자다. 일러스트레이터로 자기 작업을 하고 싶지만 생계 때문에 ‘남의 글’에 그림을 그려주는 지현,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근무하지만 정교수는 까마득하기만 한 은영, 내 작업을 하겠다며 회사를 나왔지만 정작 현실과의 괴리에 자꾸만 작아지는 지은. 이들의 삶은 아무렇지 않지 않다.

편의점에서 3,500원짜리 도시락을 고르다가 “돈 100만 원만 보내달라”는 엄마의 전화에 850원짜리 컵라면을 고르고, 박사학위도 없이 정교수 자리를 꿈꾸기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다음 학기 강의 연장을 위해 정교수와의 식사자리에서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작업을 위해 물감을 사면서도 주머니 사정 때문에 물감 몇 개를 내려놓는 모습은 세 사람만의 일상은 아니다.

익숙한 일상보다 더 와닿았던 건, 지현과 은영과 지은이 때때로 얼굴을 붉히고 달아나거나 덤덤한 표정이 무너지며 눈물이 비죽 나오는 장면이다.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아무렇지 않지 않아’진 순간 미묘하게 달라지는 표정들. 우리도 몰랐던 우리의 얼굴이 그곳에 있다.


“ 불행은 늘 초대 없이 무례하게 찾아온다. 그리고 세상은 불행을 겪는 이들에게 그것이 그들 스스로 초래한 것이라 말하는 더 큰 무례를 범한다.”

“ 나는 그들의 결론을 말하고 싶지 않았고, 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내게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들이 그저 살아가기만을 바랐다.”
-작가의 말 중에서-


생존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가는 것.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살아낼 수 있을지 조차 잘 모르겠다. 

마음 어딘가가 무너질 때마다 먼저 울고 있던 지현과 은영, 지은의 얼굴이 떠오를 것 같다. 아무렇지 않다고 중얼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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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달리기
조우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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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레즈비언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과 영화를 종종 접하는데, 작품의 완성도나 호불호를 떠나 일단 반가운 마음이 든다.



소설 속에서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중년의 레즈비언 성희과 그를 둘러싼 관계를 조카와 이모로 풀어낸 게 흥미로웠다. 레즈비언이 정체성으로 고민하거나 섬처럼 존재하는 게 아니라 정상가족의 이웃으로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로 등장해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과 연대가 마음에 들었다.




죽음을 앞둔 성희는 살아서 치르는 장례를 하고 싶다며 자신을 아는 사람들에게 부고장을 보낸다. 그리고 전 여자친구의 조카, 언니의 딸, 동네 주민의 아이 등 조카라 부르는 일곱 아이에게는 미션을 주고 완수 시 자신의 재산을 물려주겠다는 편지를 동봉한다. <이어달리기>에는 이제는 성인이 된 조카들이 미션을 진행하는 7개의 단편이 옴니버스 식으로 수록되어 있다.


​소설에서 너무 현실감을 바라는 걸까. 중년인 성희가 굉장한 자산가라는 설정은 조금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조카들의 회상 속 성희는 너무나 소시민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성희가 조카들에게 미션을 완수했을 때만 유산을 주기로 한 게 악취미 같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덮고 그리고 오늘 같은 아침을 맞이하고 나니 이해가 됐다.



세상에 그 무엇도 그냥 얻는 건 없다는 걸, 이모만의 안전하고 다정한 방식으로 전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오늘 아침, 2012년 대선에 함께 좌절하던 친구와 메시지를 나눴다. 침울해 있는데, 그가 조심스럽게 기다리던 아이가 찾아왔다는 기쁜 소식을 알려왔다. 그는 이런 시대에 태어나는 아이는 무슨 의미일까요, 하며 멋쩍어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아이를 벌써 사랑하면서, 나는 이런 시대에 태어날 수많은 아이들을 떠올렸고. 그렇게 성희의 미션을 이해하게 됐다.



어쨌든 삶은 계속되고, 포기할 이유는 없으니까. 살아남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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