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을 까는 여자들 - 환멸나는 세상을 뒤집을 ‘이대녀’들의 목소리
신민주.노서영.로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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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가 마음 아프다. 최악과 차악만을 던져주는 사회에서 20대 여자들은 어디로 향하는가. 그러게요. 정말 어디로 향하고 계세요? 그들에게 지금은 최악인지 차악인지. 저에게는 확실히 최악입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엇갈리는 표심이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이번 대선은 기운이 빠진다.




20대가 아니라 '이대녀'라는 타이틀은 모면했지만(더 웃긴 삼대녀가 있다...ㅂㄷㅂㄷ) 이번 대선 결과에 아무도 주지 않은 부채감을 느꼈다. 실은 세월호 이후로 늘 그 또래들에겐 부채감뿐인 것 같다. 내가 더 잘 살았어야하지 않을까? 조금이라도 더 빨리 사회에 나와, 아무튼 선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주제에, 그 호칭에 떳떳하려면 내가 더 괜찮은 어른이 되었어야하지 않을까. 적어도 내가 경험한 끔찍한 일들은 모르고 지낼 수 있게 도와주어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내가 더 나쁜 사람이 되지 않도록, 그날이 나를 지탱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부채감은 내게 과분하고 감사하고 미안하다. (나보다 엉망진창인 어른이 많은 걸로 위안을 삼아도 되겠지만, 그들은 나에게 수치만 안길 뿐.)







남성혐오는 있지만 없는 것.


이 얘기를 2016년 회식자리에서도 선배랑 했었다. 여성을 혐오하는데, 여성을 죽이겠냐고 쳐다보기도 싫어서 안 마주치겠지, 그러니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말하는 그에게 더 설명할 기운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땐 했다. 선배에게 되바라진 새끼라고 실컷 욕을 먹었다. 되바라진 게 맞아서 억울하지도 않았다.


이제 이런 원론적인 얘기는 따분하게 느껴질 정도로 교묘하고 치사한 방법으로 여성혐오를 펼치는 걸 보면, 참 누굴 미워하는데 진심이구나 싶다. 진짜 미우면 그냥 안 보면 그만인데, 늬들 그거 사랑이다. 짝사랑. (절레)


가뜩이나 기운이 없는데, 이렇게 화가 나는 텍스트를 차분히 읽고 읽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와닿았던 목차는 '우리 자연사하자'였다. 죽음을 떠올릴 때 나를 처음 발견하게 되는 이의 얼굴을 상상하게 되면 조금 더 단정히 살고 싶어진다. 시체만으로도 당황스러울텐데, 다른 걸로 머릿속을 어지럽히지 말아야지. 물론 아주 나중의 이야기다.


마지막 퇴근길에는 내가 포기한 것과 다시는 가질 수 없는 것들이 머리에 뱅글뱅글 돌았다. 그러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것조차 못 버티는 사람이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해? 스스로에게 한 날카로운 질문에 대답할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187p, 우리 자연사하자



스스로 던진 질문도 아니었고, 가까운 이에게 들은 질문이라 더 오래 남았다. 다들 버티라고 했고, 나도 저 질문을 마주하기 싫어 버티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먼저 무너진 건 몸이었다. 몸이 망가진 뒤에야 더 무너질 마음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기대수명이고 자연사고 참 사치스럽다는 생각을 20대 후반에 했다. (당시 내 생활패턴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내 예상 수명은 40 초중반이었고, 예상 사인은 병사였다. 아마 그때의 패턴이 수명을 20년은 깎지 않았을까? 인생 얼마 안 남았다 아자자!)


좌절하지 말고, 일단 살아남아야지. 라고 말하면서 지난 정권에서의 내 삶을 돌이켜보면 그다지 희망적이지는 않다. 사실 아직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왜 지레 겁먹고 있을까.


'세상을 뒤집을 '이대녀'들의 목소리'라고는 하지만, 세상을 단번에 뒤집는 건 투표로도 안 된다. 매일매일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그리고 가끔씩 이렇게 분노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의 글을 읽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괜찮아?


앞으로 5년 간 자주 묻게 될 것 같다. 주변에, 그리고 스스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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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지 않다
최다혜 지음 / 씨네21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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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면 노래방을 가는 친구들이 있다. 우리는 가성비를 챙긴다며 대학가 코인 노래방을 찾아 작은 부스에 서너명이 꾸역꾸역 몸을 웅크리곤 했다. 각자 좋아하는 곡은 달랐지만 떼창곡은 장범준의 ‘노래방에서’였다. 그 가수의 곡은 벚꽃 연금이라는 벚꽃 엔딩 말고는 듣지 않아서 그날 노래방에서 친구들이 부른 ‘노래방에서’가 제대로 들어본 첫 곡이었다. 노래방에서 나와 가사 한소절이 자꾸 귀에 맴돌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지 않아요.’



<아무렇지 않다>에 등장하는 김지현, 강은영, 이지은은 비정규직 노동자다. 일러스트레이터로 자기 작업을 하고 싶지만 생계 때문에 ‘남의 글’에 그림을 그려주는 지현,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근무하지만 정교수는 까마득하기만 한 은영, 내 작업을 하겠다며 회사를 나왔지만 정작 현실과의 괴리에 자꾸만 작아지는 지은. 이들의 삶은 아무렇지 않지 않다.

편의점에서 3,500원짜리 도시락을 고르다가 “돈 100만 원만 보내달라”는 엄마의 전화에 850원짜리 컵라면을 고르고, 박사학위도 없이 정교수 자리를 꿈꾸기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다음 학기 강의 연장을 위해 정교수와의 식사자리에서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작업을 위해 물감을 사면서도 주머니 사정 때문에 물감 몇 개를 내려놓는 모습은 세 사람만의 일상은 아니다.

익숙한 일상보다 더 와닿았던 건, 지현과 은영과 지은이 때때로 얼굴을 붉히고 달아나거나 덤덤한 표정이 무너지며 눈물이 비죽 나오는 장면이다.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아무렇지 않지 않아’진 순간 미묘하게 달라지는 표정들. 우리도 몰랐던 우리의 얼굴이 그곳에 있다.


“ 불행은 늘 초대 없이 무례하게 찾아온다. 그리고 세상은 불행을 겪는 이들에게 그것이 그들 스스로 초래한 것이라 말하는 더 큰 무례를 범한다.”

“ 나는 그들의 결론을 말하고 싶지 않았고, 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내게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들이 그저 살아가기만을 바랐다.”
-작가의 말 중에서-


생존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가는 것.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살아낼 수 있을지 조차 잘 모르겠다. 

마음 어딘가가 무너질 때마다 먼저 울고 있던 지현과 은영, 지은의 얼굴이 떠오를 것 같다. 아무렇지 않다고 중얼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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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달리기
조우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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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레즈비언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과 영화를 종종 접하는데, 작품의 완성도나 호불호를 떠나 일단 반가운 마음이 든다.



소설 속에서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중년의 레즈비언 성희과 그를 둘러싼 관계를 조카와 이모로 풀어낸 게 흥미로웠다. 레즈비언이 정체성으로 고민하거나 섬처럼 존재하는 게 아니라 정상가족의 이웃으로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로 등장해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과 연대가 마음에 들었다.




죽음을 앞둔 성희는 살아서 치르는 장례를 하고 싶다며 자신을 아는 사람들에게 부고장을 보낸다. 그리고 전 여자친구의 조카, 언니의 딸, 동네 주민의 아이 등 조카라 부르는 일곱 아이에게는 미션을 주고 완수 시 자신의 재산을 물려주겠다는 편지를 동봉한다. <이어달리기>에는 이제는 성인이 된 조카들이 미션을 진행하는 7개의 단편이 옴니버스 식으로 수록되어 있다.


​소설에서 너무 현실감을 바라는 걸까. 중년인 성희가 굉장한 자산가라는 설정은 조금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조카들의 회상 속 성희는 너무나 소시민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성희가 조카들에게 미션을 완수했을 때만 유산을 주기로 한 게 악취미 같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덮고 그리고 오늘 같은 아침을 맞이하고 나니 이해가 됐다.



세상에 그 무엇도 그냥 얻는 건 없다는 걸, 이모만의 안전하고 다정한 방식으로 전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오늘 아침, 2012년 대선에 함께 좌절하던 친구와 메시지를 나눴다. 침울해 있는데, 그가 조심스럽게 기다리던 아이가 찾아왔다는 기쁜 소식을 알려왔다. 그는 이런 시대에 태어나는 아이는 무슨 의미일까요, 하며 멋쩍어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아이를 벌써 사랑하면서, 나는 이런 시대에 태어날 수많은 아이들을 떠올렸고. 그렇게 성희의 미션을 이해하게 됐다.



어쨌든 삶은 계속되고, 포기할 이유는 없으니까. 살아남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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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시집
강혜빈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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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은 읽지도 않으면서 시를 열심히 쓰던 때가 있었는데, 막상 시집을 읽어보니 내가 쓰던 건 시가 아니었다. 그 뒤론 시가 너무 어려워서 읽지도 쓰지도 않게 됐다.



시와 아주 아주 멀어진 후에야 조금씩 시를 읽고 있다.




혼밥과 시가 어떻게 어울릴 수 있을까 생각하며 이 책을 골랐는데 혼자 점심을 먹으며 꺼내보기 좋은 책이다. 어떤 시는 김밥 같고 어떤 시는 샐러드 같고, 또 어떤 시는 잼을 바른 식빵 같다.



시 전체를 적는 것도, 일부만 찍거나 옮겨 적는 것도 내키지 않지만 그래도 셋 중엔 일부를 옮겨 적는 게 가장 나은 것 같다.






말하는 사람의 의중을 파악하는 일은

물맛의 차이점을 느끼는 일과 비슷해서



점심이라는,

어떤 장르를 만드는 일과 같아서



그러나 여자에게

가벼운 친밀감을 느끼기 시작할 때

오늘분의 점심시간은 끝이 나고



사람들은 문득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서둘러 바깥으로 나선다


「다가오는 점심」 中, 강혜빈



점심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시도 있고, 전혀 점심과 관련 없는 이야기를 하는 시도 있다. 시를 읽는 동안 우리가 점심을 먹으며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의 주제를 떠올려 봤는데 그 폭의 넓이 만큼이나 시가 다루는 소재도 다양하다.



오은 시인이 쓴「그」는 사실 조금 웃겼다. '김성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가 성 씨 성을 가진 친구와 진 씨 성을 가진 친구를 가진 바람에 셋이 모여 다시 김성진이 된다.



점심 시간에는 , 특히 일을 같이 하는 사람과 먹는 점심에는 나도 너도 아닌 제 3자의 비극이 희극으로 둔갑해 반찬이 되곤 하는데 김성진의 이야기가 딱 그랬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 시집은 정갈한 반찬 같기도 하고, 도시락 속에서 뒤섞인 반찬 같기도 하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다른 맛의 찬이 등장해서 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식당에서 밥을 기다리는 동안 한 두 페이지씩 읽다보면 혼자 먹는 점심도 제법 왁자지껄한 기분이 들 것 같다.





날마다 조금씩 다르게 걷는 일은

왜 너에게 중요한지


알지 못하면서도 너는 다르게 걷는다


「오늘의 산」 中, 주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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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
강지희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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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 다양한 직업의 10명의 사람이 함께 글을 썼는데, 그중 <경찰관속으로>와 <아무튼 언니>를 쓴 원도 작가님도 있다.


혼밥이라는 단어가 없던 시절부터 혼자 먹는 밥을 즐겼다. 아는 분은 이런 나를 두고 1인 가구에 최적화된 사람이라고 칭하기도 했는데, 맞다. 1인 가구에 최적화된 사람, 삶.


매일 뭔가를 먹어야만 하루가 건너가니까, 누가 무엇을 어떻게 먹는 지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혼자 먹는 점심에서 출발한 열 개의 삶에서 나와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읽으면 내 얘기가 쏟아지는 글들이 있는데, 이 산문들이 내겐 그랬다.



나는 오늘도 점심을 먹었고 내일도 먹을 것이며 모레도 먹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먹어야만 하는 밥은 싫다. 진정으로 마음이 동해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바삐 놀리고 싶다. 식사가 즐거워지고 음식을 감사히 여겼으면 좋겠다. 끼니를 때우는 게 아니라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포만감을 진심으로 만끽했으면 좋겠다. 내가, 우리 모두가.


191-192p


한때 금요일 저녁은 늘 치킨까스였다. 매일이 야근이었지만 새벽 1시가 넘어야 퇴근할 수 있던 금요일은 유일하게 회사에서 저녁을 사주는 날이었다. 치킨과 맥주를 파는 허름한 호프집에서는 돈까스와 치킨까스를 팔았다. 가끔 대표님의 의견을 따라 순댓국을 먹기도 했다. (이때 살면서 처음으로 순댓국을 먹어봤다. 물에 잠긴 순대라니...) 소주나 맥주를 곁들이고도 누구하나 붉어지지 않은 얼굴로 사무실로 돌아가 마감을 끝냈다.



점심과 저녁은 시간이 따로 정해지지 않았다. 열두 시가 넘으면, 일곱 시가 넘으면 대충 밥을 먹으러 갔다가 자리로 돌아오는 데까지 삼십분이 채 안 걸렸다. 몸이 빠르게 망가졌다. 이렇게 살면 마흔에 죽겠다 싶었는데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관두었지만 옮긴 직장도 야근이 잦긴 마찬가지였다. 사먹는 밥은 소화되지 않고 위장에 쌓였고 자주 체했다. 체기는 사나흘씩 이어졌고 날이 추워지면 체기에 몸살이 겹쳐 링거를 맞으러 가기도 했다. 링거를 맞고 택시를 타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이 가까워서 기운이 빠졌다. 그 와중에 8년을 같이 살던 새가 죽었고 많이 울었다. 사실 그 무렵의 기억이 별로 없다. 해소되지 못한 감정의 덩어리만 남았다.



몸이 아픈 걸 이상하게 생각한 적은 없었다. 일을 그만두고 집을 쓸고 닦고, 매일 끼니를 차리면서 다음 일터를 어렴풋이 상상했다. 음식을 연료로 쓰지 않고, 식사를 할 수 있는 삶. 食事는 단어 그대로 ‘먹는 일’이다. 일과 일 사이에 끼어있는 윤활제가 아니라. 나는 먹는 일이 하나의 행위로 존재할 수 있는 삶이 살고 싶었고, 채식을 시작하면서 먹는다는 행위는 행위 그 이상이 되었다. 직접 챙겨먹는 게 귀찮지 않느냐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먹는 일엔 전혀 손을 댈 수 없었던 시간을 떠올린다. 그러면 이 귀찮음이 얼마나 호사스러운지도 깨닫게 된다.



매일 비슷한 푸성귀에 버섯 반찬이라도 눈앞에 놓인 음식을 볼 때마다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이는 투명함이 좋다. 이 호사가 사는 동안 계속 이어지기를.






수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애호박이 5000원을 찍은 그날 본 뉴스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범람한 강물 위에 비죽이 튀어나온 철근콘크리트 건물들은 그 모습만으로 문명이란 단어에 조소를 보냈다. 내가 야채값과 외출할 때 젖는 신발 때문에 고민하고 있을 때 어떤 사람들은 삶의 터전이 사라지고 있었다.


71p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존재를 마주할 때마다 내 거처는 더 작아도 된다는 생각을 한다. 큰 집에 살고 싶은 욕망과 안분지족해야한다는 가치관이 충돌할 때 모서리에 놓인 냉장고 속에는 숨길 수 없는 욕망이 뒹굴고 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온 레몬과 아무튼 한국 출신은 아닌 아보카도 같은.



코로나19인지 코비드19인지 우한코로나인지 이름도 불분명하던 2020년 초입에는 외출을 최소화했다. 하루 확진자가 50명도 나오지 않던 때였다. 작은 방에 앉아 죽기 위해 태어난 동물을 거처를 생각했다. 삶의 터전은커녕, 삶도 터전도 없는 어떤 생.



내가 채소가게에서 푸성귀 값을 보면 투덜거릴 때, 맞은편 정육점에는 피부가 벗겨진 채 반으로 잘린 소나 돼지의 몸이 걸려있다. 가끔은 눈알이 없는 머리가 놓여있기도 하다. 나는 그것의 맛을 잘 알고 있다는 게 마음이 무거워서 가끔은 부러 빤히 보기도 하고, 또 가끔은 아예 고개를 돌리기도 한다. 마주하거나 모른 척 하거나 어느 쪽도 쉽지는 않다.




모두가 경계를 잃어버리는 비행기라는 공간은 그래서 어딘가 뭉클한 구석이 있다. 불이 모두 꺼졌을 때 특히 그렇다. 피부색이나 표정이나 다른 정보 없이 앞에 놓인 화면만이 우리를 대변한다. 그런 광경은 좀 공평하지 않나. 서로를 모르고도 괜찮을 때. 누구도 구분 짓지 않아도 될 때 왜인지 조금 안도한다.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을 우리는 가끔 원하지 않나.


213-214p


‘경계를 잃어버리는 공간’이라는 말이 좋다. 점심은 내게 경계를 잃어버리기 좋은 시간이다. 회사라는 공적인 시간과 시간 사이에 적당히 일탈을 누리는 시간. 직장인처럼 보이지 않는 차림으로, 누가 봐도 백수청년인 듯 동네 개를 데리고 산책하고 돌아오는 시간. 비행기 안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도 괜찮지만, 개를 데리고 있을 때도 그렇다. 나는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에게 쉽게 말을 건네고, 다른 사람들도 개를 데리고 있는 내게 쉽게 말을 건넨다. 사람은 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 시간. 점심시간에 개와의 산책은 그야말로 훌륭한 디저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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