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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달리기
조우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2월
평점 :

근래 레즈비언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과 영화를 종종 접하는데, 작품의 완성도나 호불호를 떠나 일단 반가운 마음이 든다.
소설 속에서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중년의 레즈비언 성희과 그를 둘러싼 관계를 조카와 이모로 풀어낸 게 흥미로웠다. 레즈비언이 정체성으로 고민하거나 섬처럼 존재하는 게 아니라 정상가족의 이웃으로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로 등장해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과 연대가 마음에 들었다.

죽음을 앞둔 성희는 살아서 치르는 장례를 하고 싶다며 자신을 아는 사람들에게 부고장을 보낸다. 그리고 전 여자친구의 조카, 언니의 딸, 동네 주민의 아이 등 조카라 부르는 일곱 아이에게는 미션을 주고 완수 시 자신의 재산을 물려주겠다는 편지를 동봉한다. <이어달리기>에는 이제는 성인이 된 조카들이 미션을 진행하는 7개의 단편이 옴니버스 식으로 수록되어 있다.
소설에서 너무 현실감을 바라는 걸까. 중년인 성희가 굉장한 자산가라는 설정은 조금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조카들의 회상 속 성희는 너무나 소시민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성희가 조카들에게 미션을 완수했을 때만 유산을 주기로 한 게 악취미 같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덮고 그리고 오늘 같은 아침을 맞이하고 나니 이해가 됐다.
세상에 그 무엇도 그냥 얻는 건 없다는 걸, 이모만의 안전하고 다정한 방식으로 전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오늘 아침, 2012년 대선에 함께 좌절하던 친구와 메시지를 나눴다. 침울해 있는데, 그가 조심스럽게 기다리던 아이가 찾아왔다는 기쁜 소식을 알려왔다. 그는 이런 시대에 태어나는 아이는 무슨 의미일까요, 하며 멋쩍어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아이를 벌써 사랑하면서, 나는 이런 시대에 태어날 수많은 아이들을 떠올렸고. 그렇게 성희의 미션을 이해하게 됐다.
어쨌든 삶은 계속되고, 포기할 이유는 없으니까. 살아남자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