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평점 :
정여울의 추천사가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인가 보다 하는 생각에 차분히 읽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이지 화제의 전환을 따라가다 보면 다시 앞 페이지로 넘어가야 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등장하는 살구 그리고 아이슬란드의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 글자에 집중하다 보면 갑자기 프랑케슈타인을 이야기하고 있고 그리고 불교 이야기가 나오는 듯하다가, 에스키모의 삶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처음 부분에 얽힌 화재의 전환과 엄마에 대한 원망 혹은 안타까움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처지 같은 것을 다른 화제를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작가 리베카 솔닛이 싫었습니다. 어디에 방점을 두고 맥을 잡으며 줄거리를 이어가야 하는 것 일까 하는 생각에 글의 흐름을 따르지 못하고 문장의 아름다움과 글의 정의만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만 읽을까? 아니 시작을 했으니 끝을 봐야지 소설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언가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을거야. 그렇게 밑줄을 그어가며 읽기를 시작합니다.
읽는다는 것, 쓰는 것, 공감한다는 것, 감정이입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가 제가 생각하는 것 보다 매우 명쾌하고 시원하게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글을 쓰면서 고민했던 것들에 대한 단상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이런 단어와 느낌의 정의가 하나씩 눈에 들어오고 밑줄이 그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감정이입은 이야기꾼의 재능이며,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는 방법이다. Page 13
무감각이 자아의 경계를 수축시미는 것이라면, 감정이입은 그 경계를 확장한다. Page 161
고통에도 목적이 있다.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Page 151
심지어 썩어 가는 것도 다른 생명으로 변신하는 하나의 형식이다. Page 121
복수와 용서, 우리가 서로에게 보였던 그 두 가지 단호한 행동방식은 어떤 계산에 따른 결과였을 것이다. Page 342
멋진 문장들에 밑줄을 그어가고 있는 동안 무언가 모를 뭉클함이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것이 무엇일까? 목차를 보면 알겠지만 작가는 살구에서 거울 얼음으로 주제를 연결하여 풀어갔다가 다시 마지막으로 살구로 돌아오면서 마무리를 하고 있습니다. 같은 주제의 배열이 앞과 뒤에서 마주보고 있는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앞의 글에서는 자신의 처지와 부당한 대우를 하고 있는 엄마에 대한 원망과 그에 대한 단상들이 늘어져 있어서 조금 우울하고 짜증이 나는 부분이라면 이런 것을 마주하고 있는 뒷부분에서는 그 원인과 감성 그리고 그 마음 밑에서 우러나오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말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살구에 대한 생각 그리고 아이슬란드의 기억, 이누아트에 대한 기억이 동일한 주제로 등장을 하지만 다른 행동과 관점으로 상반된 느낌을 전해줍니다. 그녀가 이해한 치매 걸린 엄마에 대한 원망보가 그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뒤에 담겨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쯤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는 화재를 전환하기 위한 의도적인 글을 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 흘러가는 자신의 경험과 독서의 기록을 그냥 떠오르는 대로 배열을 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입니다. 엄마의 거울이 되고 싶지 않았던 자신이지만 스스로 자신의 병을 치료하면서 엄마와 같은 거울을 느끼는 그런 감정 말입니다.
물이 목에 찰 때까지 걸어갔다가 보트 반대편으로 돌아왔다. 조금 시원해진 것 같다. Page370
책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인생의 어느 순간 목에 찰 때까지 무언가에 대한 공포와 짓눌림이 있었다면 다시 돌아온 그 길에는 시원함이 남아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 저자는 그 먼 길을 돌아오면서 조금 시원해진 자신의 이야기를 저에게 해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