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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배우는 수사학 - 말과 글로 살아가는 모든 이를 위한 고전 수사학 특강
에드워드 P. J. 코벳 외 지음, 홍병룡 옮김 / 꿈을이루는사람들(DCTY) / 202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한 권으로 배우는 수사학 (에드워드 P. J. 코펫, 로버트 J. 코너스) 서평
“말하는 것, 어쩌면 그게 전부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내가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는 예비부부에게 꼭 해 주는 말이다. 최소한 한 시간 이상, 앞으로 부부가 될 두 사람을 붙잡아 놓고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해야 할 말들을 점검하고, 더 나아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제안해 준다. 그래야만 단순히 결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결혼 생활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따지고 보면 결혼할 부부만이 아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된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기록된 말이나 발화된 말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생각보다 말과 글을 바르게 사용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다. 책임자나 선생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그리고 왜라는 기본적인 내용을 담지 않고 마구자비로 지시하여 아랫사람들이 혼란을 겪게 만들며, 매우 중요한 보고나 억울한 사건에 대해서 논리 정연하고 일목요연하게 설명하지 못하기에 오히려 그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게 만들고 더 억울한 상황으로 치달아 버린다.
수사학은 바로 이렇게 말과 글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을 말답게 만들고 글을 글답게 만드는 학문이고 훈련이며 통로다. 하지만 이런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기회나 책이 지금 한국에는 많지 않다. 그래서 이번에 출간된 “한권으로 배우는 수사학”은 참으로 가뭄에 단비와 같은 소중한 책이다. 이 책은 총 6부로 밀도 있게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서론으로서 우리가 그 동안 기록된 글과 사용한 말에 숨어 있었던 수사학의 무늬들(로고스, 파토스, 에토스)을 주목하게 함으로서 지금도 적실하고 필요함을 자극한다. 2부는 논증의 발견으로서 글과 말의 뼈대가 되는 내용을 마치 엑스레이처럼 찍어서 보여준다. 3부는 재료의 배열로서 글과 말의 순서라고 할 수 있다. 서론으로 문을 열고, 사실을 요약 진술하며, 그것을 확증하고 논박한 후에 결혼을 맺는 흐름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글의 배열에 따라서 글의 힘과 영향력도 달라지는 것을 확인하게 해 준다. 4부는 양식으로서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글과 말의 수사학적 핵심들이 소개되기 때문이다. 문법과 어휘, 문장 종류와 양식, 다양한 비유와 어법들(평행법, 대조법, 도치, 병치, 생략, 중첩, 두운, 유운, 반복어법과 치환, 대구, 그리고 대위에 은유, 직유, 제유, 환유, 환의, 중의, 완곡, 의인, 과장, 곡언, 수사적 의문, 아이러니, 그리고 모순과 역설까지)을 소개한다. 마지막 5부는 수사학 개관으로서 수사학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학부시절부터 나는 언어학과 논리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좋은 스승이 없어서 이 책 저 책을 규모 없이 읽었다가, 이번에 이렇게 이 모든 것이 잘 종합된 책을 통해서 정리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두 방향으로 이어지는데, 하나는 누구나 이 책을 꼼꼼히 읽는다면 가장 먼저 글과 말을 분석하는 힘이 생길 것이다. 마치 태권도 겨루기를 하는 두 사람을 보면서 그저 ‘싸운다’라고 느끼던 사람이 태권도의 기본기를 배우고 나면 다음부터는 두 사람의 겨루기에서 세분화된 동작들을 발견하는 것처럼 말이다. 다른 하나는 역으로 분리되었던 발차기와 손동작들이 모여서 하나의 완성된 권법이 되듯이 글을 구성하는 단위와 흐름 및 수사적 방법론이 합쳐져서 상당히 논리적이고 효과적인 말과 글을 완성하는 집약적 형태로 이끌어 줄 것이다. 쉽게 말해서 말을 더 잘하게 되고 글을 더 잘 쓰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수사학이라는 분야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도 많다. 마치 정육점의 빨간 조명이나 참외를 담는 노란 봉지처럼 내용보다 형식을 과장하고 포장해서 그 본질적인 것을 변형시키거나 심지어 속인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형식이다. 조금 더 강하게 말하자면, 내용이 형식을 만들지만, 동시에 형식이 내용을 만들기도 한다. 맛있는 음식이 있다면 아름다운 그릇에 담는 것이 합당하듯이 우리가 진리와 소중한 가치를 내용으로 품고 있다면 당연히 그것은 아름다운 글과 말의 통로에 담겨서 다른 사람과 세상에 나와야 한다.
이 책의 원서는 무려 제4판으로 개정되어 나올 만큼 세월의 검증을 받은 책이며 매우 훌륭한 고전의 문장과 글들이 담겨 있고 자상한 설명과 연습문제까지 수록되어 있다. 물론 언어학적 기본기가 약한 독자들은 쉽게 읽히지 않겠지만 욕심내지 말고 매일 조금씩 천천히 읽어가다 보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다른 이들의 말과 글 속에 전개되는 흐름을 보게 될 것이고(아, 저건 삼단논법이구나, 여기서 평행법과 도치를 사용했구나 하면서), 더 나아가 자신이 쓰게 될 글과 말이 더 글답고 말다워지는 변화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앞으로 수사학 분야에서 언어가 가진 가장 깊은 해부학에서 언어가 펼칠 수 있는 가장 긴 유연성까지를 도전하고 적용할 수 있는 소중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원서도 살펴보았는데) 상당히 어려운 문장을 수고로이 번역한 홍병룡 대표님과 수익과 상관없이 소중한 책을 용기있게 출간한 꿈을 이루는 사람들 출판사에 감사를 전한다. 평범한 훈련과 책을 읽은 사람은 평범한 결과와 열매를 누릴 수밖에 없다. 남들보다 더 나은 말과 글을 펼치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에 걸맞은 수준의 책과 훈련을 해야 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일을 할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글을 글답게 읽고 쓰며, 말을 말답게 듣고 말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정독해 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