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한 권으로 배우는 수사학 - 말과 글로 살아가는 모든 이를 위한 고전 수사학 특강
에드워드 P. J. 코벳 외 지음, 홍병룡 옮김 / 꿈을이루는사람들(DCTY) / 202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한 권으로 배우는 수사학 (에드워드 P. J. 코펫, 로버트 J. 코너스) 서평

 

 

말하는 것, 어쩌면 그게 전부일 수 있습니다이 말은 내가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는 예비부부에게 꼭 해 주는 말이다. 최소한 한 시간 이상, 앞으로 부부가 될 두 사람을 붙잡아 놓고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해야 할 말들을 점검하고, 더 나아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제안해 준다. 그래야만 단순히 결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결혼 생활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따지고 보면 결혼할 부부만이 아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된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기록된 말이나 발화된 말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생각보다 말과 글을 바르게 사용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다. 책임자나 선생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그리고 왜라는 기본적인 내용을 담지 않고 마구자비로 지시하여 아랫사람들이 혼란을 겪게 만들며, 매우 중요한 보고나 억울한 사건에 대해서 논리 정연하고 일목요연하게 설명하지 못하기에 오히려 그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게 만들고 더 억울한 상황으로 치달아 버린다.

 

수사학은 바로 이렇게 말과 글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을 말답게 만들고 글을 글답게 만드는 학문이고 훈련이며 통로다. 하지만 이런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기회나 책이 지금 한국에는 많지 않다. 그래서 이번에 출간된 한권으로 배우는 수사학은 참으로 가뭄에 단비와 같은 소중한 책이다. 이 책은 총 6부로 밀도 있게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서론으로서 우리가 그 동안 기록된 글과 사용한 말에 숨어 있었던 수사학의 무늬들(로고스, 파토스, 에토스)을 주목하게 함으로서 지금도 적실하고 필요함을 자극한다. 2부는 논증의 발견으로서 글과 말의 뼈대가 되는 내용을 마치 엑스레이처럼 찍어서 보여준다. 3부는 재료의 배열로서 글과 말의 순서라고 할 수 있다. 서론으로 문을 열고, 사실을 요약 진술하며, 그것을 확증하고 논박한 후에 결혼을 맺는 흐름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글의 배열에 따라서 글의 힘과 영향력도 달라지는 것을 확인하게 해 준다. 4부는 양식으로서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글과 말의 수사학적 핵심들이 소개되기 때문이다. 문법과 어휘, 문장 종류와 양식, 다양한 비유와 어법들(평행법, 대조법, 도치, 병치, 생략, 중첩, 두운, 유운, 반복어법과 치환, 대구, 그리고 대위에 은유, 직유, 제유, 환유, 환의, 중의, 완곡, 의인, 과장, 곡언, 수사적 의문, 아이러니, 그리고 모순과 역설까지)을 소개한다. 마지막 5부는 수사학 개관으로서 수사학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학부시절부터 나는 언어학과 논리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좋은 스승이 없어서 이 책 저 책을 규모 없이 읽었다가, 이번에 이렇게 이 모든 것이 잘 종합된 책을 통해서 정리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두 방향으로 이어지는데, 하나는 누구나 이 책을 꼼꼼히 읽는다면 가장 먼저 글과 말을 분석하는 힘이 생길 것이다. 마치 태권도 겨루기를 하는 두 사람을 보면서 그저 싸운다라고 느끼던 사람이 태권도의 기본기를 배우고 나면 다음부터는 두 사람의 겨루기에서 세분화된 동작들을 발견하는 것처럼 말이다. 다른 하나는 역으로 분리되었던 발차기와 손동작들이 모여서 하나의 완성된 권법이 되듯이 글을 구성하는 단위와 흐름 및 수사적 방법론이 합쳐져서 상당히 논리적이고 효과적인 말과 글을 완성하는 집약적 형태로 이끌어 줄 것이다. 쉽게 말해서 말을 더 잘하게 되고 글을 더 잘 쓰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수사학이라는 분야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도 많다. 마치 정육점의 빨간 조명이나 참외를 담는 노란 봉지처럼 내용보다 형식을 과장하고 포장해서 그 본질적인 것을 변형시키거나 심지어 속인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형식이다. 조금 더 강하게 말하자면, 내용이 형식을 만들지만, 동시에 형식이 내용을 만들기도 한다. 맛있는 음식이 있다면 아름다운 그릇에 담는 것이 합당하듯이 우리가 진리와 소중한 가치를 내용으로 품고 있다면 당연히 그것은 아름다운 글과 말의 통로에 담겨서 다른 사람과 세상에 나와야 한다.

 

이 책의 원서는 무려 제4판으로 개정되어 나올 만큼 세월의 검증을 받은 책이며 매우 훌륭한 고전의 문장과 글들이 담겨 있고 자상한 설명과 연습문제까지 수록되어 있다. 물론 언어학적 기본기가 약한 독자들은 쉽게 읽히지 않겠지만 욕심내지 말고 매일 조금씩 천천히 읽어가다 보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다른 이들의 말과 글 속에 전개되는 흐름을 보게 될 것이고(, 저건 삼단논법이구나, 여기서 평행법과 도치를 사용했구나 하면서), 더 나아가 자신이 쓰게 될 글과 말이 더 글답고 말다워지는 변화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앞으로 수사학 분야에서 언어가 가진 가장 깊은 해부학에서 언어가 펼칠 수 있는 가장 긴 유연성까지를 도전하고 적용할 수 있는 소중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원서도 살펴보았는데) 상당히 어려운 문장을 수고로이 번역한 홍병룡 대표님과 수익과 상관없이 소중한 책을 용기있게 출간한 꿈을 이루는 사람들 출판사에 감사를 전한다. 평범한 훈련과 책을 읽은 사람은 평범한 결과와 열매를 누릴 수밖에 없다. 남들보다 더 나은 말과 글을 펼치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에 걸맞은 수준의 책과 훈련을 해야 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일을 할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글을 글답게 읽고 쓰며, 말을 말답게 듣고 말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정독해 보기를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럽 가족 소풍 - 느린 시간을 살아가는 아이와 90일간의 여행 믿음의 글들 360
문지희 지음 / 홍성사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지희 선생님의 <유럽가족소풍>을 읽고

- 십자가교회 강산목사

 

나의 어머니는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내가 만 세 살이 될 때까지 말을 못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내가 언어장애를 가진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셔서 버스도 다니지 않는 시골 마을에서 꼬박 세 시간을 걸어 병원에 다녀오신 일을 이제는 웃으며 말씀하셨지만, 그 때는 얼마나 마음이 어려우셨을까? 솔직히 나는 그 마음을 알 수 없다. 열 달이나 기다려 받은 소중한 선물, 자신의 몸을 찢으면서 받아낸 귀한 생명, 부모라는 영원한 이름을 새겨 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가 태어났지만 모든 부모가 소박하게 기대한 그 평범이라는 기준조차 미치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바로 그 때의 마음을 말이다. 그리고 그 충격과 아픔이라는 시작만이 아니라 그 가슴 아린 관계의 매일을 끝없이 밀어나가야 했던 매 순간의 마음을 말이다.

 

문지희 선생님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다르다는 생각으로 설마하면서 검사를 받았던 첫째 아들 겸이의 자폐증상 진단은 처음으로 엄마의 길을 가는 그녀의 마음과 삶을 얼마나 무겁게 짓눌렀을까? 만약 그 현실을 그냥 무시하거나 포기하거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넘어가 버렸다면, 하나님께서 겸이를 통해 써 내려가려 하셨던 이야기는 몇 페이지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겸이 아빠의 용기와 엄마의 기도, 온 가족의 헌신을 통해 이어진 수많은 사람들의 만남을 통한 사랑과 섬김은 그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서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울릴 이야기가 되었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사랑과 소망이 무엇이며, 부모가 어떤 존재인가를 곱씹어 보게 되었다. 평범한 사람도 90일이나 유럽을 여행한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데, 잘 다니던 직장에서 휴직을 신청하고 일상을 정리해 장애를 가진 아이 하나와 아직도 기저귀를 차는 또 한 아이를 데리고 예상할 수도 없는 어려운 긴 여정을 향해 나가는 단 하나의 이유는 사랑, 바로 그 하나뿐이었을 것이다. 작은 가능성을 부여잡고 부모의 전부를 걸어서 새로운 시간과 장소를 향해 나가는 모습은 아무리 작은 빛이라도 소망이 될 수 있음을 단순히 말이나 이론이 아니라 헌신과 삶으로 보여 준 것이다. 아울러 어린 생명이 잘못된 부모를 만나서 학대당하고 비참하게 죽어가는 뉴스들이 판을 치는 이 세상에서 진짜 부모란 어떤 마음과 태도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잔잔한 감동을 던진다.

 

세 아이를 기르는 아빠로서 나는 책을 읽던 중간 중간에 이 가족의 여정 속에 함께 있는 듯한 상황과 감동에 동화되었다. 특히 겸이 아빠가 겸이에게 용서를 구하는 장면에서(278-279) 나는 눈물이 흘러서 잠시 글 읽기를 멈추어야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참으로 소중한 깨달음은 부모가 자녀를 키우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녀가 부모를 세운다는 것을 알았고, 연약한 한 자녀로 인해 가정이 파괴되기 보다는 오히려 진짜 부모와 진짜 가정이 되어 가고 있음을, 더 나아가 자녀를 회복시키기 위해 떠난 여행을 통해 부모가 회복되어 가고 있음을 감격적으로 보게 되었다. 연대 국문학과 출신의 저자가 펼치는 탁월한 글 솜씨에 꼼꼼한 여행의 여정을 따라서 그려지는 사진들은 개인적으로 아직 한 번도 다녀오지 못한 유럽의 곳곳을 밝혀주었고 그 장소, 장소에서 겸이 가정이 보여준 크고 작은 삶의 이야기를 나의 삶에 비춰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반영된 감정들과 깨달음은 씨줄과 날줄이 되어서 나의 삶에도 던져지는 소중한 도전과 열정이 옛날에 어머니가 뜨개질을 해 만들어주신 옷처럼 나에게 입혀졌다.

 

책을 덮으며, 이 세상의 모든 부모가 조금씩 문제와 장애를 가진 자녀를 이끌고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는 세상을 향해 떠나는 여행가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상이 정해 놓은 시간과 속도가 아닌,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흐름에 따라서 신실하게 걸어가야 할 가정들이 이 책을 통해서 소망을 가지고 다시 일어날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시간이 많이 지나 겸이가 커서 이 책을 다시 읽을 때, 부모님이 그려 내신 그 헌신의 도화지 위에 그려낼 아름다운 미래도 소망하게 되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겸이의 가정을 알고 지낸 한 목회자로서 그 가정의 기도와 신앙이 이 책에 충분히 담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 하지만 지금 그 가정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일들을 기대하면서 다시금 간절히 기도하였다. 유럽 여행은 오래전에 마무리 되었지만 지금 이 한국 땅에서 이어지고 있는 겸이네 가족의 남은 여행은 이 세상 그 어떤 가정보다 더 빛나고 아름답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부족한 서평을 마무리 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믿다, 살다, 웃다 - 인생이 확실히 꼬여버린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믿음의 내공
김지찬 지음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지찬 교수님의 설교집 <믿다, 살다, 웃다> 서평

- 십자가교회 강산목사

 

일반대학을 다니다가, 하나님의 강권적인 부르심으로 신학교에 입학 한 후, 특별하고 소중했던 시간은 가장 먼저 모든 수업을 시작할 때, 교수님들이 기도해 주시던 시간이었다. 모든 시작과 끝에서 간결하지만 진실하고 또 간절한 그 기도들은 우리가 단순히 지식을 쌓기 위해서 이곳에 모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아니 더 깊게 만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사실 그보다 더 특별하고 소중했던 시간은 일주일에 한 두 번씩 진행되는 채플이었는데, 특히 대학원 시절에 교수님들께서 해 주시던 설교가 아주 감동적이었다. 일부 학생들은 단순히 학점 때문에 그 자리에 앉아 있기도 했으나 나는 그 시간에 말씀을 깊게 풀어서 전달해 주시던 교수님들의 짧은 설교들이 참으로 오래 기억에 남았고 또 은혜가 넘쳤다.

 

그러다가 최근에 그 때 그 시절의 추억이 생각나는 한 권의 설교집을 만났는데 바로 존경하는 김지찬 교수님의 설교집 <믿다, 살다, 웃다>이다. 3부의 구성으로 10편의 설교가 담긴 이 작은 책에서 김지찬 교수님은 설교자로서의 진면목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한 편씩 읽어 가면서 좋았던 점은 첫째로 설교의 시작이었다. 무작정 성경을 설명하고 원어를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잔잔하게 질문을 던지고 우리 옆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솔직하고도 무게감 있는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마치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씨앗이 뿌려지기 전에 그 씨앗이 뿌려질 땅에 대한 공감과 배려였고 그렇게 마음의 밭을 깊게 파서 엎어 놓은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내고 있었다. 또한 두 번째로 설교가 전반적으로 따뜻하고 진솔하다는 것이다. 보통 교수님들의 설교가 직설적이고 일방적인 경우가 많은데 김지찬 교수님의 설교들은 누구나 그 안에 금방 공감해 들어갈 수 있는 부드럽고도 친밀한 표현과 묘사들이 이어지고 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김지찬 교수님의 설교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용과 성경을 아우르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교수님의 폭넓은 독서의 지경과 사고의 지경에서 오는 유익일 것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첫 번째로 개인적일 수도 있지만 설교 본문으로 잡은 성경에 대한 조금 더 깊은 천착이 없었던 것 같다. 그 흐름을 잘 잡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문의 깊이를 파 올리는 것도 중요한데 아무래도 청중의 눈높이에 맞추다 보니 그런 부분이 많이 아쉬웠다. 두 번째로는 폭넓은 인용과 주제의 연결을 펼치다 보니 이따금 이 설교가 가진 더 본문 중심적인 주제에서 이탈하거나 비약을 하는 모습도 보인다. 예를 들어 194페이지에서 눈에 대한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는 마태복음 20장의 설교내용이 전개되다가 갑작스럽게 자크 데리다의 눈의 본질은 보는 것이 아니다. 눈의 본질은 눈물이다라는 인용은 개인적으로 크게 동감이 되지 않는 비약으로 보였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가장 큰 아쉬움은 설교 마지막의 임팩트가 거의 모든 설교에서 다 약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적용의 부재로도 이어졌다.

 

21살 때부터 설교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거의 26년간 거의 매일 설교를 준비하고 다양한 강단에서 설교를 해온 한 사람으로서, 좋은 설교에 대한 갈망은 죽는 날까지 이어지는 사명이다. 하지만 책을 덮으며 스스로에게 물어 보게 된다. 무엇이 좋은 설교인가? 단순히 청중들이 잘 이해하고 또 좋았다고 말하는 것이 좋은 설교는 아닐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가장 깊은 진리를 파서 우리의 삶이라는 현실에 가장 진중하게 담아내어 한 사람, 한 사람의 실제적인 삶을 변화시키는 생명이 되는 것이 가장 좋은 설교가 아닐까 생각한다. 김지찬 교수님의 책 제목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고 또한 열매를 맺음으로서 이 땅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진정한 믿음으로 믿고, 아름다운 삶으로 살아내며, 진정한 기쁨으로 웃어보기를 소망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종교개혁을 오해했다 - 교회가 500년간 외면해온 종교개혁의 진실
로드니 스타크 지음, 손현선 옮김 / 헤르몬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종교개혁을 오해했다 (로드니 스타크, 헤르몬, 2018)
- 십자가교회 강산목사 서평

 
강연이나 책에서 한 번 즈음 들어봤거나, 스스로 이런 이야기를 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바로 솔개의 환골탈퇴라는 이야기에 대해서 말이다. 이야기의 내용은 이렇다. 조류 중에서 매우 장수하는 솔개는 약 70세의 수명을 누릴 수 있는데, 그렇게 하려면 약 40세 정도가 되었을 때에 특별한 결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솔개가 40세가 되면 부리와 발톱 및 날개가 노화되어 더 이상 사냥을 효과적으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솔개는 먼저 바위에 자신의 부리를 쪼아서 부서트리고 발톱을 뽑아내며 심지어 날개의 깃털까지 뜯어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시간동안 먹지 못하는 상태를 견디면 새로운 부리와 발톱 그리고 깃털이 나와서 건강해진 몸으로 30년의 인생을 새롭게 이어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나도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척이나 감동을 받았고 이 솔개의 환골탈퇴와 연결하여서 다양한 도전을 받을 수 있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설교나 강의에서 써먹고 싶어졌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라는 마음으로 다양한 통로를 통해서 이 이야기의 진실 여부를 조사해 보았다. 이름이 있는 조류 전문가와 학자들의 의견을 찾아서 읽어 보았고 연락을 해서 진의를 점검해 보았다. 결론은 이 모든 사실이 거짓이라는 것이다. 솔개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조류는 한번 부리가 부러지게 되면 거의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다를 바가 없으며 포유류와 달라서 새들은 음식을 먹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짧다는 것이다. 솔개의 환골탈퇴라는 이야기는 감동적이지만 그것은 거짓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스스로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가 그저 남에게 그렇다고 들었기 때문에 기정사실로 여기는 감동적인 내용들 중에서 솔개의 환골탈퇴와 같이 교정되어야 할 이야기가 또 있지 않을까하고 말이다.
 
로드니 스타크가 쓴 <우리는 종교개혁을 오해했다>는 바로 그런 교정을 해 주는 특별한 책이다. 개혁주의 흐름에 있지는 않지만, 개신교 교회의 목사로서 나는 지금부터 약 500년 전에 시작된 루터의 종교개혁을 필두로 이 세상에 일어난 긍정적인 신학적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서 직간접적으로 읽고 들은 바가 많다(루터와 칼빈에 대한 책만 거의 100권을 읽었다). 예를 들어서 종교개혁을 통해서 신앙의 부흥이 일어났다거나 기존 중세 시대의 온갖 폐단을 척결하고 건강한 교회의 모습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 가톨릭교회의 죽어가는 예배와 신부의 고해성사 교황 무오설 같은 억압적인 종교 착취에서 개인 성도들을 진리로 자유롭게 했다는 이야기들을 말이다. 더 나아가 베버와 같은 사회학자들의 책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통해서 종교개혁이 자본주의를 부흥하게 하는 단초가 되었으며 머튼과 같은 과학자들을 통해서 종교개혁은 과학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이야기 등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해서 이 책의 저자는 이 모든 것들이 대다수 거짓이라고 한다(저자는 신화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첫째 종교개혁으로 신앙의 부흥은 일어나지 않았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후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교회를 멀리 했고 그들의 신념체계 속에는 이교적 사상이 가득했다. 실제로 많은 군주들이나 지역에서 종교개혁을 받아들인 이유는 신앙적인 이유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였다.
 
둘째 종교개혁은 개인에게 더 큰 자유를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억압하는 국교회의 형태를 만들고 말았다. 칼빈이나 성직자를 깍아내리는 발언을 한 사람은 징역형이나 강제 출국형에 해당하는 범죄였으며, ‘비도덕적인 높이로 올림머리를 한 여자는 투옥을 시켰다. 아이들의 이름은 구약 인물로만 지을 수 있었고 혼외 성관계는 유배나 익사형으로 처벌했다(실제 처벌한 사례가 있었다). 불륜은 무조건 사형으로 처벌했으며 칼빈의 수양딸과 사위도 이 혐의로 처형되었다. 신성모독과 우상숭배는 사형으로 다스렸다(본서 50페이지)고 한다. 더 심각한 것은 실제로 그 동안 가톨릭교회가 유대인에 대한 폭력적 태도를 막아 주고 있었으나,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지만 결국 나중에) 루터와 칼빈은 철저한 반유대주의적 태도를 보였다. 유명한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루터는 유대교의 회당을 불사르고 약탈하며 심지어 랍비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에게 목숨과 사지를 잃는 고통을 가하라고 권한다. 결국 이러한 태도는 히틀러와 나치의 정권이 무서운 범죄를 행하도록 부추기는 역할을 하게 된다. 물론 많은 루터파 성직자들이 나치를 악으로 인식하고 최선을 다해 저항했으나 상당수의 루터파 신도들은 히틀러의 끔찍한 반 유대정책에 대해서 일조하게 된 것이다.
 
셋째 종교개혁은 특유의 민족주의적 문화를 지닌 강력한 민족국가의 출발을 만들었고 이것이 1차 세계대전과 같은 흐름에 부정적인 영향력을 주게 되었다.
 
넷째, “이 세속적인 활동의 도덕적 정당화는 종교개혁을 통해 루터가 초래한 가장 중요한 결과 중의 하나였다라는 유명한 베버의 말은 근거가 없는 내용이었다. 노동의 가치와 자본주의 정신을 바르게 인식시킨 장본인은 오히려 가톨릭과 수도원의 시스템이었고 베버의 논제가 표방하는 내용은 실제로 연구에 의한 결과물이 아니라 분수에 지나친 개신교에 대한 추측이었다. 아울러 과학 혁명의 출발점으로서 청교도 윤리를 주장한 베버의 내용도 실제로 연구해 본 결과 영국 과학자의 대다수가 청교도가 아닌 성공회 교인으로서 개혁주의가 과학 혁명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는 근거를 제시하기에는 부족했다.
 
물론 이 외에도 더 많은 내용들을 이 책은 공개한다. 아마도 종교개혁에 대한 지나친 애착을 가진 몇몇 독자들은 이 저자가 종교개혁에 반대하는 다른 종파이거나 이단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놀랍게도 저자 로드니 스타크는 루터교인이며 단순히 종교개혁에 대한 비난을 할 목적이 아니라 개신교회가 그동안 맹목적으로 찬양해 온 내용들에 대해서 자기반성을 담은 성찰을 던지고 있다. 무엇보다 감동을 받은 것은 저자의 철저한 연구와 통계 자료 및 분석을 통한 결론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전작인 <기독교의 발흥>을 읽으면서 매우 객관적이면서도 진지한 그의 글에 감동을 받았는데(이미 이 책의 서평도 내가 썼다), 이 책에서도 그런 모습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아직도 종교개혁으로 초래된 종교 전쟁 기간에 싹튼 쓰디쓴 반가톨릭주의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 책 저자가 한 말도 다시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훌륭한 역사적 자취라도 진실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책을 마치면서 나는 종교개혁이 기독교에 유익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라고 고백한다. 나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위대한 종교개혁이 그에 합당한 가치를 누리도록 더 겸손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독도 문제나 위안부 및 강제 징용에 대해서 밝히지 않고 사과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분노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베트남에 대해서 잘못한 것을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 종교개혁은 참으로 귀한 역사의 전환점이었다. 하지만 하지 않은 일과 잘못된 것까지 우리는 인식하고 회개하며 바로 잡아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출간하기 참 힘든 책을 세상에 던져 준 저자와 번역자 그리고 신생 출판사인 헤르몬 관계자분들의 용기에 심심한 감사를 전하며, 복음 안에 있는 모든 진리들이 더 진실하고 더 겸손하기만을 간절히 기대하는 마음으로 부족한 서평을 마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랍비 예수와 함께 성경 읽기 - 예수님의 방식으로 다시 읽는 성경 랍비 예수 2
로이스 티어베르그 지음, 손현선 옮김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래전 선교사님이 나눈 이야기가 생각난다. 복음이 한 번도 전달되지 않은 이방인의 땅에서 1년간 최선을 다해 사람들을 모아 성경을 가르치고 예수님을 전한 결과 그 곳에는 작은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그리고 첫 번째 성탄절을 맞이하게 되었다. 현지인들은 선교사가 가르쳐준 예수님의 성탄절을 읽은 후에 성극을 준비했다. 어설픈 복장과 대사였지만 분명히 요셉과 마리아가 나왔고 마리아의 품에는 어린 아기 예수가 있었다. 하늘의 큰 별과 동방박사가 등장하고 천사들의 노래가 울렸다. 그런데 갑자기 술에 취한 주정뱅이들이 들어와 모든 상황을 망치고 말았다. 선교사님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나중에 안 사실은 그 곳의 목자들은 모두 너무 추운 날씨로 인해 술을 마시지 않고는 생업을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성경을 읽다가 목자들이 찾아왔다는 말을, 술주정꾼들이 찾아왔다는 의미로 오해하고 말았다고 한다.
 
한번 웃고 넘길 수밖에 없는 해프닝이라고 가볍게 여길 수 있겠지만, 이런 황당한 사건은 바로 지금 복음이 전달된 지 100년이 넘어가는 한국 땅에서도 수없이 일어난다. 그 이유는 처음 성경이 기록된 시대와 문화와 언어에 대해서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각자 자신이 성경을 읽는 시대의 문화와 언어로 해석한 것을 바른 것이라고 무작정 믿어왔기 때문이다. 특별한 이력을 소유한 로이스 티어베르그는 바로 이러한 오해와 왜곡의 시간을 체험했을 뿐 아니라 극복한 선배로서 우리가 동일한 오해와 왜곡이 아닌 바른 이해와 적용을 할 수 있도록 깊이 있으면서도 쉽게 이해가 되는 이야기를 이 책에 선물처럼 담았다.
 
특히 헬라적 사상과 서구 신학적 교리에 큰 영향을 받은 주류 기독교의 성경해석과 적용은 처음 구약성경이 기록되던 셈족 문화의 특징과 예수님 시대의 유대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불완전하고 심지어 무지한 상태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저자가 가장 먼저 도전하는 것은 우리가 전자레인지식의 성경공부를 하지 말고 오랫동안 성경에 머물기를 도전한다. 그러면 어두운 밤에 눈이 적응하듯 성경이 사고하고 이야기하는 방식에 눈을 뜨게 된다. 젊음보다 늙음이 가진 지혜와, 다이어트가 아닌 살찐 건강함이, 논리와 이성의 추상화가 아니라 내러티브와 구체적인 비유들이 가진 생생함이 성경의 진정한 맛과 향이 되어서 우리의 오감으로 다가오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그리스도하나님의 아들은 단순히 예수님의 신성을 나타내는 이름이 아니라 유대 사회의 기름을 부은 왕의 칭호이며, ‘믿음역시 단순한 정신적 동의가 아니라 신실함, 인내, 굳건함에 더 가까운 뜻이다. 히브리어 이라는 아들도 몇 대에 걸친 후손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며, ‘들음이나 기억도 단순히 뇌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이 아니라 손과 발로 이어지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더 나아가, 성경의 흐름은 지독히도 개인주의화된 오늘날과 다르게 철저히 공동체적 배경에서 읽어야 함을 알려준다. 그래야 임신을 하지 못하는 것, 가문과 족보의 중요성, 명예와 수치의 모티브가 가진 중요성들을 바르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헬라어로 기록된 신약성경, 그 중에서 가장 헬라적이라고 느껴지는 바울서신들조차 한 꺼풀만 벗겨 내면 그 아래에는 히브리적인 정신과 언어가 골격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히브리어의 단순한 어희들 속의 확장적인 의미나 문화적인 배경 지식은 이미 이와 유사한 좀더 전문적인 책들의 도움으로 대다수 알고 있는 것이었지만, 13장에서 작게 생각하기를 통해 많은 울림이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지극히 자랑하고 있는 근대성이 우리를 지나치게 크게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오히려 성경은 우리 자신을 작게 보기를 기대한다. 그것은 겸손을 넘어서 십자가의 죽음까지 이어지는, 모든 믿는 자를 향한 성경의 목적이라고 생각된다(2:20).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교만해지는 이 시대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성경은 원래 그것을 의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책의 부록처럼 담긴 더 깊이 읽기를 위한 묵상 질문은 저자의 글에 대한 더 심도 깊은 연구를 해 볼 수 있게 만들었고, ‘성경공부에 유익한 히브리어 30는 보석 같은 히브리어 연구의 결과물이었다. 국제제자훈련원에서 곧 출간하게 될 같은 저자의 Sitting at the feet of Rabbi Jesus (랍비, 제자들, 절기, 기도, 토라에 대한 1세기 유대적 무대가 조명할 그리스도의 공생애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도 기대가 된다.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이틀 만에 다 읽었다. 하지만 내용은 평생 동안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성경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꼭 정독해 보기를 진심으로 추천한다. 성경을 보는 눈이 새롭게 열릴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