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가족 소풍 - 느린 시간을 살아가는 아이와 90일간의 여행 믿음의 글들 360
문지희 지음 / 홍성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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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지희 선생님의 <유럽가족소풍>을 읽고

- 십자가교회 강산목사

 

나의 어머니는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내가 만 세 살이 될 때까지 말을 못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내가 언어장애를 가진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셔서 버스도 다니지 않는 시골 마을에서 꼬박 세 시간을 걸어 병원에 다녀오신 일을 이제는 웃으며 말씀하셨지만, 그 때는 얼마나 마음이 어려우셨을까? 솔직히 나는 그 마음을 알 수 없다. 열 달이나 기다려 받은 소중한 선물, 자신의 몸을 찢으면서 받아낸 귀한 생명, 부모라는 영원한 이름을 새겨 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가 태어났지만 모든 부모가 소박하게 기대한 그 평범이라는 기준조차 미치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바로 그 때의 마음을 말이다. 그리고 그 충격과 아픔이라는 시작만이 아니라 그 가슴 아린 관계의 매일을 끝없이 밀어나가야 했던 매 순간의 마음을 말이다.

 

문지희 선생님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다르다는 생각으로 설마하면서 검사를 받았던 첫째 아들 겸이의 자폐증상 진단은 처음으로 엄마의 길을 가는 그녀의 마음과 삶을 얼마나 무겁게 짓눌렀을까? 만약 그 현실을 그냥 무시하거나 포기하거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넘어가 버렸다면, 하나님께서 겸이를 통해 써 내려가려 하셨던 이야기는 몇 페이지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겸이 아빠의 용기와 엄마의 기도, 온 가족의 헌신을 통해 이어진 수많은 사람들의 만남을 통한 사랑과 섬김은 그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서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울릴 이야기가 되었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사랑과 소망이 무엇이며, 부모가 어떤 존재인가를 곱씹어 보게 되었다. 평범한 사람도 90일이나 유럽을 여행한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데, 잘 다니던 직장에서 휴직을 신청하고 일상을 정리해 장애를 가진 아이 하나와 아직도 기저귀를 차는 또 한 아이를 데리고 예상할 수도 없는 어려운 긴 여정을 향해 나가는 단 하나의 이유는 사랑, 바로 그 하나뿐이었을 것이다. 작은 가능성을 부여잡고 부모의 전부를 걸어서 새로운 시간과 장소를 향해 나가는 모습은 아무리 작은 빛이라도 소망이 될 수 있음을 단순히 말이나 이론이 아니라 헌신과 삶으로 보여 준 것이다. 아울러 어린 생명이 잘못된 부모를 만나서 학대당하고 비참하게 죽어가는 뉴스들이 판을 치는 이 세상에서 진짜 부모란 어떤 마음과 태도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잔잔한 감동을 던진다.

 

세 아이를 기르는 아빠로서 나는 책을 읽던 중간 중간에 이 가족의 여정 속에 함께 있는 듯한 상황과 감동에 동화되었다. 특히 겸이 아빠가 겸이에게 용서를 구하는 장면에서(278-279) 나는 눈물이 흘러서 잠시 글 읽기를 멈추어야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참으로 소중한 깨달음은 부모가 자녀를 키우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녀가 부모를 세운다는 것을 알았고, 연약한 한 자녀로 인해 가정이 파괴되기 보다는 오히려 진짜 부모와 진짜 가정이 되어 가고 있음을, 더 나아가 자녀를 회복시키기 위해 떠난 여행을 통해 부모가 회복되어 가고 있음을 감격적으로 보게 되었다. 연대 국문학과 출신의 저자가 펼치는 탁월한 글 솜씨에 꼼꼼한 여행의 여정을 따라서 그려지는 사진들은 개인적으로 아직 한 번도 다녀오지 못한 유럽의 곳곳을 밝혀주었고 그 장소, 장소에서 겸이 가정이 보여준 크고 작은 삶의 이야기를 나의 삶에 비춰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반영된 감정들과 깨달음은 씨줄과 날줄이 되어서 나의 삶에도 던져지는 소중한 도전과 열정이 옛날에 어머니가 뜨개질을 해 만들어주신 옷처럼 나에게 입혀졌다.

 

책을 덮으며, 이 세상의 모든 부모가 조금씩 문제와 장애를 가진 자녀를 이끌고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는 세상을 향해 떠나는 여행가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상이 정해 놓은 시간과 속도가 아닌,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흐름에 따라서 신실하게 걸어가야 할 가정들이 이 책을 통해서 소망을 가지고 다시 일어날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시간이 많이 지나 겸이가 커서 이 책을 다시 읽을 때, 부모님이 그려 내신 그 헌신의 도화지 위에 그려낼 아름다운 미래도 소망하게 되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겸이의 가정을 알고 지낸 한 목회자로서 그 가정의 기도와 신앙이 이 책에 충분히 담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 하지만 지금 그 가정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일들을 기대하면서 다시금 간절히 기도하였다. 유럽 여행은 오래전에 마무리 되었지만 지금 이 한국 땅에서 이어지고 있는 겸이네 가족의 남은 여행은 이 세상 그 어떤 가정보다 더 빛나고 아름답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부족한 서평을 마무리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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