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교개혁을 오해했다 - 교회가 500년간 외면해온 종교개혁의 진실
로드니 스타크 지음, 손현선 옮김 / 헤르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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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종교개혁을 오해했다 (로드니 스타크, 헤르몬, 2018)
- 십자가교회 강산목사 서평

 
강연이나 책에서 한 번 즈음 들어봤거나, 스스로 이런 이야기를 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바로 솔개의 환골탈퇴라는 이야기에 대해서 말이다. 이야기의 내용은 이렇다. 조류 중에서 매우 장수하는 솔개는 약 70세의 수명을 누릴 수 있는데, 그렇게 하려면 약 40세 정도가 되었을 때에 특별한 결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솔개가 40세가 되면 부리와 발톱 및 날개가 노화되어 더 이상 사냥을 효과적으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솔개는 먼저 바위에 자신의 부리를 쪼아서 부서트리고 발톱을 뽑아내며 심지어 날개의 깃털까지 뜯어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시간동안 먹지 못하는 상태를 견디면 새로운 부리와 발톱 그리고 깃털이 나와서 건강해진 몸으로 30년의 인생을 새롭게 이어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나도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척이나 감동을 받았고 이 솔개의 환골탈퇴와 연결하여서 다양한 도전을 받을 수 있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설교나 강의에서 써먹고 싶어졌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라는 마음으로 다양한 통로를 통해서 이 이야기의 진실 여부를 조사해 보았다. 이름이 있는 조류 전문가와 학자들의 의견을 찾아서 읽어 보았고 연락을 해서 진의를 점검해 보았다. 결론은 이 모든 사실이 거짓이라는 것이다. 솔개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조류는 한번 부리가 부러지게 되면 거의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다를 바가 없으며 포유류와 달라서 새들은 음식을 먹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짧다는 것이다. 솔개의 환골탈퇴라는 이야기는 감동적이지만 그것은 거짓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스스로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가 그저 남에게 그렇다고 들었기 때문에 기정사실로 여기는 감동적인 내용들 중에서 솔개의 환골탈퇴와 같이 교정되어야 할 이야기가 또 있지 않을까하고 말이다.
 
로드니 스타크가 쓴 <우리는 종교개혁을 오해했다>는 바로 그런 교정을 해 주는 특별한 책이다. 개혁주의 흐름에 있지는 않지만, 개신교 교회의 목사로서 나는 지금부터 약 500년 전에 시작된 루터의 종교개혁을 필두로 이 세상에 일어난 긍정적인 신학적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서 직간접적으로 읽고 들은 바가 많다(루터와 칼빈에 대한 책만 거의 100권을 읽었다). 예를 들어서 종교개혁을 통해서 신앙의 부흥이 일어났다거나 기존 중세 시대의 온갖 폐단을 척결하고 건강한 교회의 모습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 가톨릭교회의 죽어가는 예배와 신부의 고해성사 교황 무오설 같은 억압적인 종교 착취에서 개인 성도들을 진리로 자유롭게 했다는 이야기들을 말이다. 더 나아가 베버와 같은 사회학자들의 책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통해서 종교개혁이 자본주의를 부흥하게 하는 단초가 되었으며 머튼과 같은 과학자들을 통해서 종교개혁은 과학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이야기 등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해서 이 책의 저자는 이 모든 것들이 대다수 거짓이라고 한다(저자는 신화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첫째 종교개혁으로 신앙의 부흥은 일어나지 않았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후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교회를 멀리 했고 그들의 신념체계 속에는 이교적 사상이 가득했다. 실제로 많은 군주들이나 지역에서 종교개혁을 받아들인 이유는 신앙적인 이유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였다.
 
둘째 종교개혁은 개인에게 더 큰 자유를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억압하는 국교회의 형태를 만들고 말았다. 칼빈이나 성직자를 깍아내리는 발언을 한 사람은 징역형이나 강제 출국형에 해당하는 범죄였으며, ‘비도덕적인 높이로 올림머리를 한 여자는 투옥을 시켰다. 아이들의 이름은 구약 인물로만 지을 수 있었고 혼외 성관계는 유배나 익사형으로 처벌했다(실제 처벌한 사례가 있었다). 불륜은 무조건 사형으로 처벌했으며 칼빈의 수양딸과 사위도 이 혐의로 처형되었다. 신성모독과 우상숭배는 사형으로 다스렸다(본서 50페이지)고 한다. 더 심각한 것은 실제로 그 동안 가톨릭교회가 유대인에 대한 폭력적 태도를 막아 주고 있었으나,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지만 결국 나중에) 루터와 칼빈은 철저한 반유대주의적 태도를 보였다. 유명한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루터는 유대교의 회당을 불사르고 약탈하며 심지어 랍비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에게 목숨과 사지를 잃는 고통을 가하라고 권한다. 결국 이러한 태도는 히틀러와 나치의 정권이 무서운 범죄를 행하도록 부추기는 역할을 하게 된다. 물론 많은 루터파 성직자들이 나치를 악으로 인식하고 최선을 다해 저항했으나 상당수의 루터파 신도들은 히틀러의 끔찍한 반 유대정책에 대해서 일조하게 된 것이다.
 
셋째 종교개혁은 특유의 민족주의적 문화를 지닌 강력한 민족국가의 출발을 만들었고 이것이 1차 세계대전과 같은 흐름에 부정적인 영향력을 주게 되었다.
 
넷째, “이 세속적인 활동의 도덕적 정당화는 종교개혁을 통해 루터가 초래한 가장 중요한 결과 중의 하나였다라는 유명한 베버의 말은 근거가 없는 내용이었다. 노동의 가치와 자본주의 정신을 바르게 인식시킨 장본인은 오히려 가톨릭과 수도원의 시스템이었고 베버의 논제가 표방하는 내용은 실제로 연구에 의한 결과물이 아니라 분수에 지나친 개신교에 대한 추측이었다. 아울러 과학 혁명의 출발점으로서 청교도 윤리를 주장한 베버의 내용도 실제로 연구해 본 결과 영국 과학자의 대다수가 청교도가 아닌 성공회 교인으로서 개혁주의가 과학 혁명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는 근거를 제시하기에는 부족했다.
 
물론 이 외에도 더 많은 내용들을 이 책은 공개한다. 아마도 종교개혁에 대한 지나친 애착을 가진 몇몇 독자들은 이 저자가 종교개혁에 반대하는 다른 종파이거나 이단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놀랍게도 저자 로드니 스타크는 루터교인이며 단순히 종교개혁에 대한 비난을 할 목적이 아니라 개신교회가 그동안 맹목적으로 찬양해 온 내용들에 대해서 자기반성을 담은 성찰을 던지고 있다. 무엇보다 감동을 받은 것은 저자의 철저한 연구와 통계 자료 및 분석을 통한 결론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전작인 <기독교의 발흥>을 읽으면서 매우 객관적이면서도 진지한 그의 글에 감동을 받았는데(이미 이 책의 서평도 내가 썼다), 이 책에서도 그런 모습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아직도 종교개혁으로 초래된 종교 전쟁 기간에 싹튼 쓰디쓴 반가톨릭주의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 책 저자가 한 말도 다시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훌륭한 역사적 자취라도 진실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책을 마치면서 나는 종교개혁이 기독교에 유익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라고 고백한다. 나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위대한 종교개혁이 그에 합당한 가치를 누리도록 더 겸손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독도 문제나 위안부 및 강제 징용에 대해서 밝히지 않고 사과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분노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베트남에 대해서 잘못한 것을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 종교개혁은 참으로 귀한 역사의 전환점이었다. 하지만 하지 않은 일과 잘못된 것까지 우리는 인식하고 회개하며 바로 잡아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출간하기 참 힘든 책을 세상에 던져 준 저자와 번역자 그리고 신생 출판사인 헤르몬 관계자분들의 용기에 심심한 감사를 전하며, 복음 안에 있는 모든 진리들이 더 진실하고 더 겸손하기만을 간절히 기대하는 마음으로 부족한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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