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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묵상 - 생각의 회로를 바꾸는 시간
팀 켈러.존 파이퍼 외 지음, 서경의 옮김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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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묵상> 서평

 

 

어느 교회에 여전도회장으로 섬기던 한 권사님이 큰돈을 만져볼 목적으로 불법투자를 하다가 그만 약 500만 원 정도를 손해 보고 말았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에게도 말도 못하고 앉으나 서나 그 500만원만 생각하다가 밥도 못 먹고 잠도 못자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주일오후에 여전도헌신예배가 있어서 사회를 보던 중에 그 500만원이 생각나서, “찬송가 500만원을 부릅시다!”라고 말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고 한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은 다 이상해서 웃고 있는데, 정작 그 권사님만 모른 체 계속 찬송을 불렀다고 한다. 아마도 찬송가 500장을 부르면서도 잃어버린 500만원 생각 밖에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사람은 그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게 된다(마태복음 12:34).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마음에 무엇을 품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믿음의 사람들은 천국을 품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바로 이 중요한 부분에 대해 잔잔한 도전을 주는 한 권의 책이 최근 나왔다. 바로 <천국묵상>이다.

 

이 책은 한권의 저자가 아니라, 최근에 상당히 영향력을 가진 신학자와 목회자로 구성된 저자들이 각각의 색이 담긴 하나의 유리처럼 투명하게 만들어낸 강연들을 합쳐서 아름다운 교회의 창문이 된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작품이 되었다. 무엇보다 말씀이라는 빛이 이 작품을 통과하는 순간 아름답게 하나의 그림이 되어 우리에게 비춰온다.

 

팀 켈러는 신명기 30장을 통해서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미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한 미래에 대해 마음을 쏟으라고 말한다. 존 파이퍼는 이사야 11장을 통해서 우리가 진정으로 가야 할 고향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광임을 보여준다. D. A. 카슨은 에스겔 40-48장의 내용을 통해서 성경이 궁극적으로 꿈꾸는 진짜 성전은 벽돌과 흙으로 지은 건물이 아니라 요한복음 219절에서 언급된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임을 선언한다. 마크 데버는 데살로니가전서 4장과 5장을 통해서 이 땅에서 누릴 세속적인 가치만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릴 새 하늘과 새 땅이야 말로 우리의 진정한 소망임을 고백한다. 리곤 던컨은 로마서 8장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장래의 진정한 소망과 이어지는 가치임을 그래서 무의미한 고난이 아니라 영원으로 이어질 고난을 받으라고 도전한다. 아우구스투스 로페스는 요한복음 14장을 통해서 죽음을 앞에 두신 예수님의 선포와 메시지에 담긴 하나님의 나라, 더 큰 일, 그리고 더 거대한 소망으로 우리의 초점을 이동시킨다. 보디 보캄은 고린도전서 15장을 통해서 부활의 메시지에 담긴 바울의 목회자적 심장에 투영된 부활의 변화와 역사가 우리가 붙잡아야 할 복음의 핵심이고 중심이라는 사실을 증언한다. 마지막으로 필립 라이켄은 계시록 21장과 22장을 통해서 우리가 잃어버린 에덴동산, 그 고향으로 돌아가는 모든 것의 회복이 바로 하나님 나라에 있음을 기대하게 한다.

 

천국에 대한 메시지라고 하면 성탄절이나 부활절의 단골 본문처럼, 의례히 읽히게 될 성경본문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은 구약부터 신약까지 은은하고 넓게 퍼져 있는 진리를 연결해 주었다. 특히나 상당히 무게감 있고 난해한 성경의 중요한 본문들을 저자들은 깊이 있는 주해를 하면서도 명료한 하나의 흐름을 잘 발견해서 전달함으로, 예수님께서 영생을 얻고자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성경 속에 자신이 있음을 말씀하신 것처럼(요한복음 5:39) 천국도 특정한 종말에 관련한 본문에만 강조된 내용이 아니라 성경 전반에 걸쳐서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묵상하고 기대하며 소망해야 할 진리임을 잘 보여 주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2015년 미국에서 열린 가스펠 코엘리션 전국 콘퍼런스 National conference of the Gospel Coalition의 기조연설들을 간략하게 정리하다 보니, 글의 호흡이 짧고 건조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더 큰 아쉬움은 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천국을 묵상한다는 것이(원서의 제목으로 하자면 본향으로 가는 것’) 바로 지금 여기서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한 적용이 상당히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지식적인 내용 이해가 천국 묵상의 전부가 되어버리는 것은 오래된 개혁주의 신학의 약점이기도 하다. 또한 기독교 신학이 지나치게 저 너머의 천국에만 초점 맞추게 되면 바로 여기서 이루어질 천국에 대한 무시와 소홀함을 낳게 될 것이다(이런 부분에서는 최근에 출간된 <사도 바울과 그리스도인의 삶>을 추천한다). 본서가 그런 부분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균형을 잡는데 우리가 더 수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땅의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으로 자랑으로만 물들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책은 우리가 진정으로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할 삶의 목적지와 방향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정신을 차리게 한다. 특히 하나님께서 선하신 분이시기에 심판이 있음을 강조한 부분과(16페이지, 95페이지, 각기 다른 저자가 다른 본문으로 말하고 있음에도 같은 진리가 연결되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현재의 고난은 미래의 영광과 연결됨을 강조한 내용은 다시금 번영의 신학과 현실의 축복에만 함몰된 그리스도인들이 주목해야 할 것이다(102페이지).

 

책을 덮으며, 다시 한 번 이 땅이 우리의 전부가 아님을 고백한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없다면 우리는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나라는 우리가 이 땅을 포기하고 만날 나라가 아니라, 바로 이곳에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다. 우리는 분명히 가장 중요한 것에 초점 맞추며 살아야 한다. 시편 1편의 복된 사람이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이듯이 오늘날 복된 그리스도인은 주야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묵상하며 사는 삶이다. 마태복음 633절의 말씀처럼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해야 한다. 그러면 나머지는 덤으로 얻게 될 것이다. 매일 주님 맞을 신부처럼, 각자의 등불을 밝히고 깨어 기도하며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이루어질 그 날까지 거룩하고 진실하고 성실하게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삶을 살아가길 나 자신부터 결단해 본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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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님의 비유
케네스 E. 베일리 지음, 오광만 옮김 / 이레서원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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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님의 비유. 케네스 E. 베일리 (이레서원, 2016)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에 한국에 유학하여 함께 공부했던 외국인 친구가 생각난다. 자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없었지만 이따금 밥을 같이 먹으면서 한국어가 어렵다는 말을 했다. 그 친구는 한국에 이라는 말을 상당히 어렵게 생각했는데, 고추장과 된장에도 들어가는 그 음식의 표현이 어떻게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의 직함 마지막에도 항상 들어가는지 이상하게 생각했다. 특히 가장 이해하기 힘든 말이 장날이다혹은 장보러 간다라는 표현이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그리스도인이며, 동시에 매주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해야 하는 한 사람의 목회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이해하고 전하는 것은 단순한 수고의 문제를 넘어서 생명의 문제이다. 마치 의사가 환자를 만나서 정확한 진단을 하고 그에 합당한 치료를 하는 것이 당연하듯이 끊임없이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고자 몸부림친다. 문제는 내가 지금 읽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벌써 2천년 가까이 오래전에 기록된 글로서 그 시대의 문화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당시 사람들이 글을 쓰는 방식이나 표현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작은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말씀을 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사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들은 마치 나에게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전혀 모르고 한국의 언어적 사용의 특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유학생처럼 힘겹게 다가온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매우 훌륭한 작가가 한명 있다. 바로 케네스 E. 베일리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연히 이 작가의 글을 읽게 되었는데 그 첫 책이 <십자가와 탕자>였다. 그 후에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선한 목자>도 읽었고 이어서 이 책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님의 비유>도 읽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해서 이 책은 예수님의 비유에 대해서 바르게 알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읽어야 마땅한 책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서구 문명에서 동양을 부분적으로 이해하고 심지어 왜곡되게 설교해 온 해석학적 흐름을 거의 여과 없이 받아들이면서 예수님의 비유에 반영된 1세기 팔레스타인의 문화와 문학적 기저를 무시해왔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부분을 바로잡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저자는 가장 먼저 1부인 서론을 통해서 예수님의 비유를 해석해 온 역사적 흐름과 동양식 주해의 방향을 설명해 준다. 아마도 언어학적이거나 신학적인 배경지식이 약한 독자들은 이 부분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과감하게 뛰어 넘고 2부로 들어가도 될 것이다. 하지만 천천히 읽어 본다면 신약성경의 4가지 문학구조나 동양식 주해의 묘미를 다른 성경을 읽기 위한 훌륭한 도구와 방법론으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본격적인 이 책의 아름다움은 2부에서 총 4편의 문학적 개요와 주해 과정을 통해 펼쳐진다. 소위 예루살렘 여행 기사(저자는 예루살렘 문서로 칭한다)’로 알려진 누가복음 9:51-48에 대한 문학 구조적 분석을 시작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나는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베뢰아 사람처럼 이런 치밀한 역행적 대구 구조가 그러한가 하고 오랫동안 살펴보았기 때문이다. 저자의 구조 분석에 대해서 백퍼센트 동의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이 난해한 구문에 대한 가장 조리 있는 대안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어지는 누가복음 16:5-13의 불의한 청지기 비유, 누가복음 11:5-13의 한밤중에 찾아온 친구의 비유, 그리고 누가복음 15장의 잃은 것들의 비유 시리즈에 대한 주해는 정말 저자가 얼마나 치밀하고 성실하게 구조 분석을 했으며 다양한 동양의 성경 번역본들을 수고롭게 읽었고 1세기 중동 문화의 철저한 배경 지식을 통해 우리에게 비유의 핵심 의미를 전달하려고 했는지를 보여주는 귀하고 귀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단편적인 문맥만을 보는 근시안적 태도를 벗어나서 큰 틀의 문학적 구조 속에 있는 평행적 의미를 보는 시각을 넓혀 주었고 무엇보다 중동의 문화 속에 있는 농부의 삶에서 철저하게 묻어나는 흙냄새와 땀냄새를 맡을 수 있게 하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라는 큰 틀의 감동 안에서 청지기 비유에 등장하는 합법적인 대리인 샬루아흐의 실체, 헬라어 아나이데이아에 대한 숨막히게 치밀한 연구의 결과, 그리고 누가복음 15장에서 나타나는 기독론적 회개의 의미를 발견한 것이었다. 동시에 그로 인해 도출된 인사이트들은 여기서 다 나누기가 아까울 정도이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한 목사가 쓴 매우 신선한 책도 함께 읽었는데, 그 책의 저자는 지극히 부분적이고 파편적인 성경해석을 근거하여 자기 생각과 잡학을 합쳐서 매우 이상한 결과를 도출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다시금 하나님의 말씀이 처음 쓰인 그 시간과 공간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수고와 겸손을 가져야 할 것이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예수님의 비유가 가진 문화적이고 구조적인 특징을 발견하고 그 흐름 속에서 작게는 예수님의 비유가 크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정 말하려고 한 그것을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책의 번역과 편집은 대다수 훌륭했으나 헬라어에 비해서 히브리어 발음 표기가 약했고 260페이지 같은 곳에서 오리지널이라는 표현은 사본학적인 전문 한국어로 풀어쓰는 수고가 조금 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조만간 저자의 다른 책인 <Through Peasant Eye><Paul Through Mediterranean Eyes>도 읽어볼 생각이다. 다만 홈스쿨링을 하는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아내뿐만 아니라 두 자녀가 아버지 없이지냈다는 고백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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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만지다 - 학대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는 길
스티븐 트레이시 지음, 유희동 옮김 / 죠이선교회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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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만지다(스티븐 트레이시/죠이)

사람이란 나 자신을 포함해서, 대다수 그것의 정확한 정의나 이름을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 영향력의 아래에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사는 어리석은 존재들이다. 그러나 정확한 병명을 모른다고 해서 죽어가는 사람에게 “병이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에게 심각하게 침투해 있는 “학대”에 대해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심리학자들이나 상담가들의 전유물로 치부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 책은 그것을 도전한다.

솔직히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커다란 회개를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학대를 잘 알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그렇게 학대를 주고서도 학대인지 회개하지 못했으며 학대를 당하고도 바르게 해결할 수 없었고 나의 상담자들이 학대라는 내용을 가지고 다가왔지만 그들을 도와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학대에 관한 모든 내용이 담겨 있는 참으로 정성을 다한 책이다. 최근 잘 팔리는 책이 되게 하려고 너무나 가벼운 내용들을 편집적인 기교만으로 팔아 넘기고 있으나 이 책은 읽는 내내, 정말 저자가 한 평생 수고한 모든 것이 담겨 있구나 하며 감탄을 했던 책이다.

1. 먼저 이 책은 학대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우리로 하여금 들려준다. 책이 약 360페이지 정도 되는데, 그 중에 절반 이상이 학대에 대한 이해와 평가, 그리고 다각적인 이야기들을 포함한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제공해 주어, 일반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폭력적인 학대만이 아니라, 언어적인 학대, 심지어는 영적인 영역에도 학대가 있음을 보게했다. 그리고 이 책은 바로 그 학대를 직면할 수 있도록 힘을 준다.

2. 이 책에서 가장 도움을 많이 받았던 것은 성경적인 접근과 해결책의 제시였다. 책의 절반 가까이 이 책은 “학대”를 해결할 수 있는 성경적인 대안들을 제시한다. 많은 상담 심리학책이 단순히 심리학자의 권위나 상담가의 논리에 주 라인을 잡고 글을 전개하는 것이 보통이며, 성경을 가져와 붙이는 것도 성경적인 해석이나 성경적인 사고에서 어긋나게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저자는 아주 성경에 탁월할 뿐 아니라 복음적인 진리에 뛰어나고 원어에도(사실 내가 원어에 관심이 많고 성경을 번역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모르겠으나) 아주 깊이가 있었다. 특히 요셉 스토리의 오랜 미해결점을 이 책은 너무나 잘 해결해 주었다(226페이지, 사실 나는 이 한 쪽 때문이라도 이책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다) 또한 애가에 대한 정확한 성경신학적 해석도 얼마나 달게 읽었는지 모른다(254페이지).

3. 특히 이 책이 가치 있었던 것은 “용서에 대한 부분”이었다. 저자는 학대로 인해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용서를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다루면서 용서에 대한 3가지 차원을 설명(사법적, 심리적, 관계적)을 너무나 잘 해 주고 있으며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학대자로 살아가지 않을 뿐 아니라, 학대로 인한 피해에서 주님을 향한 아름답고 건강한 관계의 자리로 용서의 자리로 나갈 수 있는지를 잘 제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추가적으로 제시된 부록들도 너무나 좋은 내용들이었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난 눈물이 났다. 우리의 주변에 너무나 많은 학대가 심지어 교회 안에서 목사까지 그런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소중한 영혼 하나하나에 대한 열정이 이 책에는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이제 책을 덮으며 나는 3가지 감사를 하게 되었다. 첫째는 한 교회의 담임목사로서 “학대”라는 이름과 관련된 그늘진 삶의 영역을 이해하고 깨달아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역적이고 관계적인 지경이 넓혀졌기 때문이고, 둘째는 나 자신이 혹시라도 학대할 수 있을 모든 삶의 영역에서 조심하고(특히 나의 자녀와 성도들에게) 주의 깊게 살아갈 경계표를 발견했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나 자신도 학대 받았으나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의 능력이 치료했으며 또 다른 이들도 치유될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게 될 당신에게도 이러한 3가지 이상의 감사가 흘러 넘치게 될 것을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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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있는 우리 아이를 위한 세계역사 이야기 1 - 고대편 교양 있는 우리 아이를 위한 세계역사 이야기 1 1
수잔 와이즈 바우어 지음, 정병수 그림, 이계정 옮김 / 꼬마이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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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역사를 미워하며 살도록 교육받은 사람중 하나이다.

 나의 중학교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역사를 단순 암기와 매질의 도구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세계사 역사, 국사를 싫어했고 겨우 대학에 가기 위한 과정으로 암기하기만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역사속에 살고 있음을 발견했고, 역사에 대해 가진 나의 부정적인 시각이 이제 서른을 넘어서야 옹졸한 나의 연민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고 우리가 살아온 지나간 시간에 대해 말해주어야 할때 나는 겨우 단편적인 지식 외에 아무것도 없고, 역사에 대해 내가 가진 아픈 시간들을 다시 가치있고 즐겁게 전해주기 위해 난 이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의 겉표지에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라고 되어있지만 어른들이 읽기에(특히 나같이 역사에 무지한 사람은)는 딱이라는 생각을 했고 큰 활자에 그림과 쉬운 설명들은 금방 몇장을 넘기게 해 주었다. 정말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부터 그리고 그 역사들이 어떻게 흘러갔으며 어떤 지역에서 어떻게 그 색깔을 비추게 되었는지를 잘 설명해 주게 되었다.

 쉽게 이해하기 쉬울 뿐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를 말해주는 책이었다.

복잡한 연대와 사람들의 이름에 혼란스러운 역사책이 아니라 역사에 대해 가치있는 이해를 할 수 있도록 해 준 책이었다. 그래서 아기와 읽으며 대화하고 다시 토론할 수 있는 책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나의 역사관에 대한 터닝포인트로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이다. 역사는 단순히 지나간 시간에 대한 자료나 정보가 아니라 오늘과 내일을 바라볼수 있게 해주는 이정표인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주며 우리의 후 시대에 어떻게 전달해 줄 수 있을 것인가가 너무도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쉽게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읽고 이해하고 또 전달해 줄수 이는 책이다. 그래서 나는이 책이 우리 아이를 위한 것이기 전에 나를 위한 것임을 고백한다. 정말 우리의 인생에 너무도 필요한 사람과 기회와 책이 만나지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모든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특히 나처럼 역사에 대한 아픈 추억이 있는 사람은 새로운 역사의 첫장을 함께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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