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님의 비유
케네스 E. 베일리 지음, 오광만 옮김 / 이레서원 / 2017년 2월
평점 :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님의 비유. 케네스 E. 베일리 (이레서원, 2016)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에 한국에 유학하여 함께 공부했던 외국인 친구가 생각난다. 자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없었지만 이따금 밥을 같이 먹으면서 한국어가 어렵다는 말을 했다. 그 친구는 한국에 ‘장’이라는 말을 상당히 어렵게 생각했는데, 고추장과 된장에도 들어가는 그 음식의 표현이 어떻게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의 직함 마지막에도 항상 들어가는지 이상하게 생각했다. 특히 가장 이해하기 힘든 말이 ‘장날이다’ 혹은 ‘장보러 간다’라는 표현이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그리스도인이며, 동시에 매주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해야 하는 한 사람의 목회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이해하고 전하는 것은 단순한 수고의 문제를 넘어서 생명의 문제이다. 마치 의사가 환자를 만나서 정확한 진단을 하고 그에 합당한 치료를 하는 것이 당연하듯이 끊임없이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고자 몸부림친다. 문제는 내가 지금 읽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벌써 2천년 가까이 오래전에 기록된 글로서 그 시대의 문화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당시 사람들이 글을 쓰는 방식이나 표현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작은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말씀을 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사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들은 마치 나에게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전혀 모르고 한국의 언어적 사용의 특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유학생처럼 힘겹게 다가온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매우 훌륭한 작가가 한명 있다. 바로 케네스 E. 베일리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연히 이 작가의 글을 읽게 되었는데 그 첫 책이 <십자가와 탕자>였다. 그 후에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와 <선한 목자>도 읽었고 이어서 이 책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님의 비유>도 읽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해서 이 책은 예수님의 비유에 대해서 바르게 알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읽어야 마땅한 책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서구 문명에서 동양을 부분적으로 이해하고 심지어 왜곡되게 설교해 온 해석학적 흐름을 거의 여과 없이 받아들이면서 예수님의 비유에 반영된 1세기 팔레스타인의 문화와 문학적 기저를 무시해왔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부분을 바로잡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저자는 가장 먼저 1부인 서론을 통해서 예수님의 비유를 해석해 온 역사적 흐름과 동양식 주해의 방향을 설명해 준다. 아마도 언어학적이거나 신학적인 배경지식이 약한 독자들은 이 부분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과감하게 뛰어 넘고 2부로 들어가도 될 것이다. 하지만 천천히 읽어 본다면 신약성경의 4가지 문학구조나 동양식 주해의 묘미를 다른 성경을 읽기 위한 훌륭한 도구와 방법론으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본격적인 이 책의 아름다움은 2부에서 총 4편의 문학적 개요와 주해 과정을 통해 펼쳐진다. 소위 ‘예루살렘 여행 기사(저자는 예루살렘 문서로 칭한다)’로 알려진 누가복음 9:51-48에 대한 문학 구조적 분석을 시작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나는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베뢰아 사람처럼 이런 치밀한 역행적 대구 구조가 그러한가 하고 오랫동안 살펴보았기 때문이다. 저자의 구조 분석에 대해서 백퍼센트 동의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이 난해한 구문에 대한 가장 조리 있는 대안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어지는 누가복음 16:5-13의 불의한 청지기 비유, 누가복음 11:5-13의 한밤중에 찾아온 친구의 비유, 그리고 누가복음 15장의 잃은 것들의 비유 시리즈에 대한 주해는 정말 저자가 얼마나 치밀하고 성실하게 구조 분석을 했으며 다양한 동양의 성경 번역본들을 수고롭게 읽었고 1세기 중동 문화의 철저한 배경 지식을 통해 우리에게 비유의 핵심 의미를 전달하려고 했는지를 보여주는 귀하고 귀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단편적인 문맥만을 보는 근시안적 태도를 벗어나서 큰 틀의 문학적 구조 속에 있는 평행적 의미를 보는 시각을 넓혀 주었고 무엇보다 중동의 문화 속에 있는 농부의 삶에서 철저하게 묻어나는 흙냄새와 땀냄새를 맡을 수 있게 하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라는 큰 틀의 감동 안에서 청지기 비유에 등장하는 ‘합법적인 대리인 샬루아흐’의 실체, 헬라어 ‘아나이데이아’에 대한 숨막히게 치밀한 연구의 결과, 그리고 누가복음 15장에서 나타나는 기독론적 회개의 의미를 발견한 것이었다. 동시에 그로 인해 도출된 인사이트들은 여기서 다 나누기가 아까울 정도이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한 목사가 쓴 매우 신선한 책도 함께 읽었는데, 그 책의 저자는 지극히 부분적이고 파편적인 성경해석을 근거하여 자기 생각과 잡학을 합쳐서 매우 이상한 결과를 도출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다시금 하나님의 말씀이 처음 쓰인 그 시간과 공간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수고와 겸손을 가져야 할 것이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예수님의 비유가 가진 문화적이고 구조적인 특징을 발견하고 그 흐름 속에서 작게는 예수님의 비유가 크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정 말하려고 한 그것을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책의 번역과 편집은 대다수 훌륭했으나 헬라어에 비해서 히브리어 발음 표기가 약했고 260페이지 같은 곳에서 ‘오리지널’이라는 표현은 사본학적인 전문 한국어로 풀어쓰는 수고가 조금 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조만간 저자의 다른 책인 <Through Peasant Eye>와 <Paul Through Mediterranean Eyes>도 읽어볼 생각이다. 다만 홈스쿨링을 하는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아내뿐만 아니라 두 자녀가 ‘아버지 없이’ 지냈다는 고백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