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가는 유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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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카 고타로는 상당히 좋아하는 작가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출간된 시기에 따라 작품에 대한 만족도에 편차가 큰 작가이기도 하다. 읽는 책마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국내에 출간된 모든 책을 다 읽었던 시기도 있었고, 읽는 족족 실망해서 아예 읽기를 그만 두었던 시기도 있었다. 이사카 고타로의 초기 작품을 매우 좋아했고, 중기 작품에 실망했고, 후기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진행형인 작가이긴 하지만)을 그런 대로 즐겁게 읽고 있는데 이번에 읽은 [후가는 유가]는 후기 작품이기는 하지만 꽤 초기 작품의 느낌이 나는 책이기도 했다.

 

이야기는 '다카스기'라는 방송 제작자가 미스터리한 영상의 주인공인 '도키와 유가'를 찾아와 이에 얽힌 사연을 묻는 것으로 시작되고 유가가 다카스기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으로 전개된다. 쌍둥이인 유가와 '후가'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당하고, 어머니는 가출을 하며 불운하게 성장한다. 그렇지만 이들 쌍둥이에게는 아주 조금 특별한 능력이 있는데 1년에 딱 하루, 그들의 생일에 두 시간마다 서로의 위치가 바뀐다는 것이다. 일견 불편하기는 해도 별로 좋은 점은 없을 것만 같은 능력이지만 쌍둥이는 자신들의 작은 능력에 점점 익숙해지고 그 능력을 활용하며 힘든 시기를 버텨 나간다. 그러던 중 그들은 자신들이 고물상에서 일하며 주운 백곰 인형을 가출 소녀에게 주게 되고 그 소녀가 그 인형을 가진 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일이 그들에게는 빠지지 않는 가시처럼 계속 아픔으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그들은 왕따, 성적인 학대, 납치 등에 자신들의 능력을 활용해서 맞서 싸우게 되는데,,

300페이지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분량이지만 담고 있는 내용이 적지 않고, 두 쌍둥이의 말장난도 포함해서 밝은 분위기도 있지만 왕따, 학대, 납치 등 굵직한 사건들이 그들 주변에서 발생하면서 소설은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으로 전개가 된다. 후가와 유가는 두 시간 차이로 태어난 쌍둥이이고 일단 유가가 형이지만 사실 누가 형이고 동생인지도 불분명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생일마다 두 시간 간격으로 위치가 바뀌면서 균형을 맞추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공부를 잘하지만 운동에 취약한 유가와 운동을 잘 하고 공부에 취미가 없는 후가. 쌍둥이지만 마냥 똑같지만은 않은 이 두 사람은 힘든 어린 시절을 함께 버텨온 형제이자 친구이자 분신과도 같은 존재이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쌍둥이와 그런 그들에게 결코 완치되지 않는 상처가 된 소녀의 죽음과 이를 상기시키는 백곰 인형. 과연 유가가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풀어놓으면서 다카스기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이사카 고타로를 좋아했던 시기에 그의 작품을 보면 젊은 감성이 묻어나는 재기발랄한 문체와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는 확실치 않아도 일단 읽는 것이 즐거운 내용, 그리고 흩뿌려 놓았던 복선들이 하나도 빠짐 없이 촘촘히 연결되어서 '우왓!!' 하고 탄성을 자아냈던 결말까지 한정된 분량에 부족함 없이 짜맞춰진 이야기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내가 이사카 고타로라는 작가에 빠지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였고, 이런 이사카 고타로의 매력이 가장 빛났던 작품이 [골든 슬럼버]였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그 이후 다양하게 변화를 시도했던 이사카 고타로는 어쩐지 낯설고, 그만이 가졌던 매력이 점점 사라지는 듯한 아쉬움이 있었다. 확실히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작품마다 다른 소재, 다른 전개로 늘 변화화는 모습으로 성장을 놀라움을 주는 작가도 있고, 이사카 고타로 역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지도 모르지만 내가 좋아하는 이사카 고타로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지키면서 성장하고 발전하는 모습이었던 것 같다. [후가는 유가]는 먼 길을 돌아 다시 초기의 이사카 고타로의 스타일로 돌아가면서 그 동안 자신이 보여줬던 변화된 모습이 아주 약간 양념처럼 가미된, 이사카 고타로 나름의 진화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허수아비 언급 너무 반가워ㅠㅠ)

 

내가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로 이사카 고타로 월드에 입문(?)한 것처럼 [후가는 유가] 역시 이사카 월드의 입문작으로 손색이 없는 즐거운 작품이었다. 자라지 않는 피터팬 같은 소년 감성이 돋보이는 이사카 고타로의 매력이 충분히 발휘됨과 동시에 다루기 어려운 무거운 소재를 일부 가미해 그 속에서 변화하는 모습까지 보여주는 작품이라 '그래, 이게 이사카 고타로지'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해준 어둡고, 슬픔도 있지만 그래도 책장을 덮으면 따스함이 느껴지는 좋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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