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
배리 로페즈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월
평점 :

이 책을 만나고 감탄했다.
제목과 부제와 책표지가 너무나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책 부제는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이다.
추운 계절의 숲 모습인지 군데군데 빨갛고 노랗게 물든 나무들이 보이고 그 나무들 사이를 햇살이 화사하게 비추고 있다.
책 표지만 보고 있어도 숲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기분이 들어 표지를 넘기는 손길이 살짝 떨렸던 것도 같았다.
저자 배리 로페즈는 55년이 넘는 세월 동안 80여 개 나라를 여행하면서 스무 권이 넘는 책을 썼다고 한다. 그런 그가 안타깝게도 2020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는 그의 사후에 출간된 책이다.
배리 로페즈는 자연을 이야기하면서 그와 동시에 그 지역의 역사와 변화하는 과정, 또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 까지 모든 것을 총 망라한 글을 썼다. 조용히 자연을 바라보는 시점으로, 자신이 과거에 겪었던 경험도 담담한 듯 풀어놓았다.
어린 시절 수 년간 이어진 성폭력을 당했던 베리 로페즈. 어린 마음에 다른 사람들에게 말도 못하고 속으로 앓다가 겨우겨우 이야기를 꺼냈는데, 나중에 돌아보지 이야기를 들은 보호자들은 잘못된 행동을 취했다. 그 일을 입 밖으로 공론화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마치 없던 일이라도 될 듯이. 그런 분위기 속에서 배리 로페즈는 30년을 그 일을 묻어두고 살아갔다. 침묵으로. 후에 담당 경찰서를 찾아가보았지만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시점이라 모든 자료가 없을 것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고 한다.
어릴 때의 아픈 경험을 배리 로페즈는 자연으로 치유했다고 한다. 바다에서 배를 타고 이동하다가 만난 그물에 걸린 십여 마리의 바다 사자들을 구해준 에피소드는 인상적이어서 며칠 동안 내내 기억 날 것 같다. 배가 이동해야 하는 방향에서 그물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던 바다 사자들 중 한 마리는 다른 바다 사자들에게 눌려서 눈이 튀어나와 있었다고 한다. 얼마나 아팠을까...
배리 로페즈와 그의 일행은 칼을 손에 들고 물 속으로 손을 넣어 그물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하나 하나 그물이 잘려 나가면서 바다 사자들도 한 마리 한 마리 탈출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바다 사자의 몸에 부딪쳐 그만 칼을 놓치고 만 배리 로페즈. 물 속으로 가라앉는 반짝이는 금속을 바라보면서 허탈하게 다른 일을 해야 겠다고 몸을 움직이는 순간, 갑자기 손에 칼이 다시 들어왔다. 놀라움도 잠시, 신의 도움이라도 받은 것처럼 배리 로페즈는 그물 자르기를 이어 나간다. 움직일 수 있는 바다 사자들은 모두 탈출하여 할 일이 끝났다. 배리 로페즈는 같이 그물을 자르던 일행과 그 이야기를 나눈다. 일행은 그 일은 신만이 아실 것이라고 대답한다.
탈출한 바다 사자 중 한 마리가 가라앉는 칼을 물고 와 배리 로페즈의 손에 물려준 게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벨루가가 물 속으로 떨어진 휴대폰을 물고 오는 모습을 영상으로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그의 마음을 알고 도운 게 아니었을까..
이 책을 읽다보면 사건 하나를 여러 방면으로 보게 된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가치관과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추구하는 대로 행동한다. 어떻게 글을 읽으면서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을 받게 되는지 신기했다. 자연스럽게 저자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