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표지 그림을 보면 드높은 하늘아래 바위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한 사람.
과연 이 사람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을까? 그리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얼굴 표정을 보면 무언가 근심이 있는 듯해보이는데 무슨일이 일어난걸까?
표지에서도 많은 궁금증을 이끌어낸다.
책을 펼쳐보니 왜 이렇게 긴 판형을 선택해서 책을 썼는지 알 것 같다. 만약 이렇게 긴 판형의 책이 아니라면 작가가 담고 싶어 하는 내용과 숲의 느낌이 일치하지 않을 것이고 그림에서 전하고자 하는 모든 내용들이 들어있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그림 속에 함께 들어가 같은 상황을 경험해 보고 또 숲의 웅장함을 느끼게 해주려는 의도가 숨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 멋진 숲속으로 함께 들어가 숲의 아름다움에 빠져볼까?
매일매일 바쁘게 움직이는데 그것이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라면 어떤 느낌과 생각이 들까?
이 책의 주인공인 마르솔은 트럭을 몰고 다니며 배달을 하는 직업을 가지고 매일매일 산을 넘어 먼 곳까지 배달을 하는 반복된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매일매일 넘어가는 산길 중턱에 차를 세운다.
다름이 아닌 시간에 쫓기며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화장실 갈 시간조차 부족했던 터라 급한 용변을 해결하기 위해 차를 세운 것이다.
급하게 홀로 숲속으로 들어가다 보니 어느 쪽으로 들어갔는지 위치를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우리도 주차를 할 때 차를 어디에 세워뒀는지 확인해놓지 않으면 내 차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 낭패를 본적인 한 번씩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기둥에 번호를 써놓고 카메라로 찍으라는 그림까지 그려놓기까지 해놓았다, 그 후로는 내 차의 위치를 찾는 게 쉬워졌다. 그렇듯 만약 이렇게까지 급하지 않았다면 분명 무언가로 표시해 놓았을 텐데 급한 나머지...
시원하게 용변을 해결한 후 다시 돌아가려는데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없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아무리 찾아봐도 어떤 길로 들어왔는지 알 수가 없는 상황에 마르솔은 이리저리 찾아다니지만 찾아내지 못한다.
마르솔의 이런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가 방향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할 때가 많은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제대로 된 길을 찾지 못해 헤맬 때의 모습을 잘 표현한 것 같다.
숲속에 누군가가 있다면 도와달라고 말하겠지만 숲속에는 동물들과 나무, 흐르는 물이 전부이다 보니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거기에 배달 트럭에 적힌 것처럼 빠른 배송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는 아주 묘한 일이 벌어진 것.
짜잔!! 고요한 숲속에서 숲의 마법이 시작된 것일까?
광활한 숲속에서 마르솔은 혼자인 듯 혼자가 아닌 듯 환성적인 여행을 시작한다.
평소에는 트럭에 앉아 핸들을 잡고 운전하고 배달하는 게 마르솔의 일상이었지만 숲속에서 길을 잃고 갇혀버린 이상 가만히 멍하게 있을 게 아니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숲속에서 자유를 만끽한다.
그런데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마르솔이 있는 곳에서 살짝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바위나 나무, 언덕 같은 곳에 까만색에 빨간 눈을 가진 형체가 계속 따라다닌다. 과연 이 까만색 형체는 뭘까? 요괴?
까만 형체가 마르솔과의 거리가 처음에는 멀리 있었는데... 그러니까 까만 형체가 마르솔을 일정한 거리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지더니 어느새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마르솔과 요괴?
까만 형체가 요괴라면 왜 우리가 알고 있는 도깨비 같은 모습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는데 어떻게 보면 까만색 형체가 요괴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과연 숲의 요괴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걸까? 아마 이 책을 읽는 사람들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다른 이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랄까?
어떻게 보면 마르솔의 눈에는 까만색 형체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마르솔은 숲속에 있는 자연들을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느낄 때마다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마르솔의 모습이 이상해진다고 해야 하나?
세상 속에서 바쁘게 움직일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것을 느끼기라도 한 듯...
어떻게 보면 마르솔이 숲속에서 이런 것들을 느끼면서 자연과 함께 한 몸이 되듯 자신의 내면에 있는 모습이 요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마르솔처럼 자신이 생각한 한 가지만을 따라 길을 찾으려고 했지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처럼 우리가 무엇을 할 때도 다양성을 두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동서남북 이렇게 네 방향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남동, 서북 등등 다양한 방향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넓은 숲속에서 그 많은 길을 놓치고 스스로 자신을 숲속에 가둬놓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길은 있는데 말이다.
마르솔은 자신이 배달을 해야 한다는 것도 잊은 채 숲속에서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나무에 뚫린 구멍에 손을 넣으니 손이 커져버리고, 연못에 발을 넣으니 발이 커지고...
정말 신기하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언가에 쫓기듯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옆으로 돌아볼 겨를도 없이 무조건 앞만 보고 한 방향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간다.
이런 반복된 일상 속에 갇혀버린 우리를 대변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반복된 일상에서 벗어나 잠깐이라도 나의 삶을 돌아보며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예전에 통신사 광고에 나왔던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때는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처럼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