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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 -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순간에도
정희재 지음 / 갤리온 / 201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의 개정판이다. 닦달과 몰아세움이 일상이 된 이 시대의 사람들을 위한 자기 위로의 메세지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동화작가로 이름을 알고 있던터라 어린애 다루듯 유치한 말들을 늘어놓았다면 요즘말로 '1도 이해안됨'이라고 책장 한켠으로 내쳐졌을 테지만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사랑의 욕망이, 맞물려야만 돌아가는 톱니바퀴의 한 쪽이 없는 듯한 외로움을 견딘 마음이, 오롯이 내게도 전해졌다.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부모와의 인연, 누구에게도 폐 끼치기 싫어하지만 누구의 도움도 필요없다고 생각했던 젊은날의 치기 어린 마음들이 내 것인양 볼 때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함께 있을 때는 몰랐던, 얼굴 한 번 마주보지 않았던 이웃들의 부재조차 내 마음의 온도에 영향이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는 서로에게 '잘 쓰이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처럼 다가왔다. 홀로 외로워 하지 말고 서로에게 관심을 주라는.
"나에게서 받는 사랑이야말로 가장 크고 깊은 사랑이라는 걸 살면서 새록새록 느낀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인정받아야 '쓸모'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꼭 필요한 존재라는 확신이 있어야 '잘 쓰이는' 삶을 살 수 있다. 그 확신은 자신을 믿고, 재능이 꽃필 시간을 기꺼이 기다려 주는 일부터 시작된다" p.46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거나 글을 쓰고 싶은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때문이다. 힘들다고 얘기할 상대가 없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지 못한다. 한 번도 자신의 힘듦을 표현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왜 당신은 괜찮다고 말하나요?','엄마, 아버지도 사는 게 무섭던 때가 있었단다', '난 네가 약한 모습을 보일 때도 참 좋더라',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 4가지 마당으로 구성된 책의 소제목만으로도 나는 위로를 받았다.
"우기에만 넘치는 사막의 간천처럼 기쁨은 잠시였고, 삶이 근원적으로 안겨 주는 고통은 한 여름 햇빛처럼 짱짱했다.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실상이었다. 기쁨도 슬픔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 p.125
학창시절 졸업식날 롤링 페이퍼 담긴 선생님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세상에 모든 고민을 짊어지고 사는 00, 오늘은 그냥 웃자.' 내게 세상은 늘 재미 없었다. 실체도 없는 불안 앞에서 절대로 지지 않을 방법은 늘 대비 하는 것이었기에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불안했던 시절. 웃음 지을만한 일들은 부재했었고, 행복을 가져다 주는 일들은 잠시 뿐 오늘 하루는 어제의 하루와 다름 없이 온갖 상념들 속에서 빈틈 없이 돌아갔다. 나와 다르게 행복할 것만 같은 타인들을 볼 때면 그들의 행복이 나의 불행인듯 느껴져 나의 행복을 잠식당하기 일쑤였다. 기쁨도 슬픔도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행복에 관한 한 우리는 일용직 신세라는 작가의 말은 지금까지 내가 왜 행복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명쾌한 답을 주었다. 행복은 내일 몫까지 미리 쌓아 두기 힘들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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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뒤죽박죽 뒤엉킨 내 생각도 싫었고, 조울증처럼 감정이 널뛰는 내 성격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비가 내려 자꾸만 방으로 들이치는 빗물들이 마치 내 머릿속에서 자라는 식물같아서 견디기 힘들 때도 많았다. 작가의 말처럼 생각도 느낌도 흐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양동이든 쓰레받이든 그 물을 계속 퍼 담아 밖으로 쏟아버리는 연습이 아직도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순간의 느낌으로 인생을 바꿀 수는 없지만 끊임없는 마음공부는 인생을 보는 눈을 조금씩 바꿔 줄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요즘 듣고 싶은 말은 '네 덕분이다', '수고했다' 정도다. 가족 구성원인 엄마라는 이름밖에는 달리 어디에 소속되지 못한 무존재감을 한껏 드러내고 싶어서이다. 이 책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듣고 싶지만 아무도 해주지 않던 말들을 작가의 서문에서부터 매번 다른 방식으로 아낌없이 쏟아낸다. 작가로서는 치명적일수 있지만 다시 그 한 마디 말 때문에 책을보지 않아도 되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까지 알려준다.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모든 순간에도 자신만은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는 안다. 누군가의 어깨가 절실히 필요할 때 그 어깨가 기꺼이 되어주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