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내전 - 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
김웅 지음 / 부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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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요한 또라이. 수석검사가 그에게 지어준 별명이다. '끈질긴 또라이'라고 썼다가 뭔가 찜찜해서 다시 들춰보니 '집요한 또라이'였다. 둘 다 비슷한 뜻인데 왜 '집요한'이라는 단어를 썼는지 궁금해서 국어사전을 뒤적거렸다. '집요한'은 '끈질긴'에서 한 가지 뜻이 첨언되어 있었는데 바로 '고집스럽게 물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검사'라는 직업과 어울린다. 대개 사람들은 법정에서 옳고 그름을 가리는 모습으로 검사를 떠올리지만 검사는 '절차적 정의'를 바로 세우는 사람이다. 제대로 된 절차가 아니라면 고집스럽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다시 세우는 일을 하는 사람이 검사였다. 책을 다 읽고 나면 그가 또라이라 불리는 세상에 환멸이 느껴진다.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검사님'의 생활을 낱낱이 알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되어 책장은 재빠르게 넘어갔다. 수많은 사건들을 파헤치는 검사의 위대함보다는 '사기꾼'들의 사기 수법에 흠뻑 빠져들었다. 한 번 감옥에 들어가 본 놈들이 신참 검사를 다루는 모습을 보니 '검사님'의 양심이 다하는 날에는 절대 잡히지 않는 '사기꾼'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또라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쉽게 갈 수 있는 선택의 순간에 자신의 신념을 따르는 길을 간다. '진실은 다수결이 아니다', '욕구와 충동 속에서 결국 선택이 자아를 만드는 것이다', '말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본심에 따라 본질이 달라진다.'라는 문장 속에서 그의 본심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래서 도박장의 박 여사를 도박개장죄가 아니라 도박방조죄로 기소했다는 일화를 가진 자의 같잖은 동정심이라 오해하지 않았다.

그의 기둥 같은 신념은 미래사회의 법과 질서를 예측한 부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이 판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기계가 인간을 판단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법이 없었던 과거는 어땠을까? 서로 분쟁을 조정하고 협의하며 살아가지 않았을까? 법으로 인간을 다스려야만 하는 오늘날의 모습이 오히려 비인간적이다. 학교폭력위원회가 밥 먹듯이 열리고 학생 사이에서도 고소 고발이 남발하는 요즘 시대.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자라나는 아이들의 미래는 결국 모든 경우의 수가 입력된 인공지능에 의해 판결만을 기다리는 비참한 인간의 말로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법에서 정한 경우의 수 외에 다른 방법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인간뿐이다. '현실은 직선인 경우가 거의 없다. 최단거리를 이어주는 가설은 진실이 아닐 경우가 많다.'라는 문장은 우리가 기계처럼 혹은 기계를 따라잡기 위해 최단거리를 추구하도록 교육받았지만, 결코 그것이 최선은 아니었음을 자각하게 한다. 족집게 과외를 받고 고위층에 포진한 사람들은 굳이 쉬운 길을 두고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공리주의와 정책적 효율 만능주의에 의해 희생될 사람은 그 법칙에 따라 오늘도 충실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서민들이다. 양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정치는 결핍된 욕구의 불만을 표출하고 공격할 곳을 찾아 헤매게 만들었다. 거기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불안의 씨앗까지 뿌리기 시작하면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감정까지 더해져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게 된다. 보이지 않는 끈에 매달린 꼭두각시와 같은 삶이 계속되는 것이다.

어릴 때 책이 없어서 읽었다던 컬러 학습 대백과 사전을 닿도록 읽은 흔적은 여기저기서 보인다. 문과에서  느낄 수 없는 이과의 향기는 글의 재미를 더한다.  컬러 학습 대백과는 우리 집에도 계몽사 세계문학전집과 함께 거실 책장 맨 아래 칸을 장식하던 책이었는데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 엄마가 남동생을 위해 특별히 추가로 들였던 책이었기 때문이라는 궁색한 변명을 해본다. 컬러 학습 대박과 사전 내용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평범한 인간이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스스로 인간다움을 향해 나아가려는 개개인들의 자각이다. 그래야 흑백 논리에 의해 어느 한쪽 진영의 대변자나 비판자로 가면을 쓰는데 익숙한 방관자들만이 가지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집요한 또라이. 영원히 방관자로 머물고 싶어 했던 내게 이런 고해성사를 하게 하다니. 그는 집요한 또라이가 맞았다. 그리고 이 뜻 또한 좋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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