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1주년 한정 리커버 특별판) - 나, 타인, 세계를 이어주는 40가지 눈부신 이야기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7년 12월
평점 :
품절


다른 사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경험에 돈을 쓰세요.
밖으로 나가 자연을 느끼고,
음악을 듣고,
반려견을 껴안고,
친구들과 얘기하고,
살기 위해 일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매일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27살에 인생을 마친 한 미국인이 남긴 유언이다. 죽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가장 아쉬워하며 삶을 돌아보게 될까. 나와 관계 맺었던 수많은 인연들, 가족들의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스칠 것이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갈 세상에 나는 무엇을 남겼는지 죽음의 문턱에 다다라서야 나라는 존재가 어디서 왔고 또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궁금증을 갖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나와 타인, 세계를 이어주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별을 알기 위해 세모, 네모, 동그라미를 배워야 한다는 일화는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확실히 보여준다. 나를 알기 위해서 나의 내면뿐만 아니라 타인, 세계를 살펴봐야 나를 알 수 있다는 뜻으로 다가왔다. 나와 연결된 관계를 살펴보면 나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철학 이야기를 타인, 세계, 도구, 의미의 네 장으로 나눠 채사장만의 그림과 언어로 설명한다.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너는 무엇인가. 몸과 생각은 존재하지만 나를 인식하는 대상이 없다면 나란 존재는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나를 담아낼 세계라는 공간이 없다면 나는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내 안에 관조자가 '자아'라면 자아는 나를 완전히 대변할 수 있는 것일까. 타자에 의해 인식된 나와 내면의 자아와의 괴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책을 다 읽어도 의문에 대한 충분한 해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내 배움의 단계가 아직 거기까지다.

“세상의 모든 무거운 짐을 혼자 짊어진 00아, 오늘은 웃자."  고등학교 때 반 아이들과 나눠 적었던 롤링페이퍼에 담임 선생님 글씨로 보이는 글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애늙은이라고 불렸던, 일찍 세상을 알아버린 어린아이가 짊어지고 다녔던 짐이, 숙명이, 사명감이 그의 글을 통해 되살아났다. 보이지 않는 세계와 관계 맺으려 하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현실적인 문제였지만 그것은 내 삶을 움켜쥐고 옭아맸다. 그리고 여전히 숙명처럼 나의 내면에 존재한다.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을 때 나는 나라는 세계에서 나와 좀 더 넓은 세계와의 관계를 꿈꿀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키고 있는 낡은 벤치는 어떤 것일까. 나로부터 떠날 때 비로소 나에게 정착할 수 있는 것인지도.

별 모양의 지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별 모양의 지식이 담겨진 책을 읽으면 될까요? 한 번에 읽으면 안 될 것 같으니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보는 거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방법으로는 별이라는 지식을 얻을 수 없어요. 지식은 그런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다른 책을 펴야 해요. 삼각형이 그려진 책, 원이 그려진 책, 이런 책들을 다양하게 읽었을 때, 삼각형과 사각형과 원이 내 머릿속에 들어와 비로소 별을 만드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일수록 사회는 그것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26

관계의 아득함. 소통의 노력이 온갖 오해로 점철될 수밖에 없다는 확고한 이해. 이것이 외로움의 본질이다. 28

집착 때문이다. 나의 신체와 내가 가진 것에 마음이 쏠려 한시도 잊지 못하고 매달리기 때문이다. 나의 몸과 나에게 연결된 것들은 너무나 소중하고 유일한 것이라서 그것이 어찌 될까 봐 조마조마해 하고, 움켜쥐려 하고, 끝내 감싸 안으려 하기 때문이다. 95

떠날 때야 비로소 정착하는 건지 모른다. 126

나이가 든다는 건 다행이다. 어린 날의 들뜸과 격정은 가라앉고, 섬세함은 무뎌지고, 무거움은 가벼워진다. 죄책감은 줄어가고, 헛된 희망은 사라지고, 안타까움은 오래가지 않는다. 128

통증은 자아와 신체가 관계 맺고 있는 방식이고, 동시에 자아와 신체는 통증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136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이야기는 유익한 도구인 동시에 까다로운 도구이며, 만들어내는 동시에 숨기고 가리는 도구임을. 163

말과 글은 간결해도 충분하다. 꾸미거나 덧붙일 필요가 없다. 수식어를 걷어내고 정갈하게 정돈된 언어를 정확히 구사한다면 인위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나의 언어는 타인의 가슴에 강렬하게 박힌다. 172

책을 펴고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한글을 깨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앞선 체험이 필요하다. 독서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한글이 아니라 선체험이다. 우리는 책에서 무언가를 배운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다. 우리가 앞서 체험한 경험이 책을 통해 정리되고 이해될 뿐이다. 176

꿈을 꾼다는 것은 피로한 동시에 설레는 일이다. 200

죽음이 안타까운 건 그것이 개체의 소멸이기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관계의 끊어짐 때문이리라. 206

모든 보는 존재는 충분하고 완벽한 세계를 자기 내면으로 갖고 있고, 그 내면의 빛은 그 존재를 부족함 없이 사로잡는다.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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