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각사 (무선)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3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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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에 대한 동경


아름다운 여성을 뽑는 미인 대회에는 진, 선, 미 세 명의 미인을 뽑는다.  단순히 얼굴이 아름답다는 것에 미의 가치를 두지 않고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선한 가치'에 '미'의 의미를 두기 위해서라고 한다.  균형과 조화로움 속에 그 아름다움이 타자에게 인식될 때 비로소 미의 가치를 인정받았던 고대에 비해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찰나적 감정과 쾌락에 미의 가치를 두면서 '미'의 개념은 충돌하게 되었다. 

<금각사>는 탐미 문학의 정수라 불리며 세 번이나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른 작품이다.  태생부터 연약하고 추남에 말더듬었던 주인공 미조구치는 남들의 시선 속에서 자신의 추함을 거듭 인식하며 자란 사내다.  스피노자는 <에티카> 3부에서 동경이란 어떤 사물을 소유하려는 욕망 또는 충동을 말한다고 했다.  미조구치에게 있어 금각사의 '미'란 그가 절대 소유할 수 없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통해 금각사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갖게 되었다.  실제로 보게 된 금각사의 모습이 자신의 생각만큼 멋지지 않았음에도 그는 현실을 회피한다.  오히려 그의 몽상에 현실의 수정을 거쳐 금각사는 그의 내면에 더욱 견고한 미로 거듭나게 된다.  그는 아버지의 유언을 받을어 금각사의 도제가 되어 매일 금각사를 바라보며 점점 절대미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갖게 된다.  그러나 아라시 산에서 가시와기의 하숙집 딸과 관계하려던 순간이나 가시와기에게 버림받은 꽃꽂이 선생과 관계하려던 순간에 어김없이 그의 눈앞에는 금각이 나타난다.  금각사에 대한 동경은 미조구치의 평범한 일상을 방해한다.  기쁨의 근원이 되는 금각사를 수없이 생각하며 금각사를 실제로 보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금각사로 달려가지만 자신과 지금 같이 있는 사람들은 가시와기에게 버림받은 하숙집 딸이나 꽃꽂이 선생이다.  그들과 함께 있는 자신의 모습은 자신이 동경하는 금각과 같은 우이코와는 절대로 함께 할 수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는 불태워버려야 했다.  그 내면에 쌓아올린 우이코와 같은 금각사를.  말더듬이인 자신이 애써 말을 꺼내어 외부 세계에 도달해봐야 썩은 냄새를 풍기는 현실이 가로놓여 있을 뿐이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동경하는 금각이 그 경계에 가로막고 서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 중 '우리가 그토록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멸시하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에서 탄생한 은희경 작가의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를 보면 아름다움에 대한 편견에 의해 멸시당하고 살아온 서른다섯 살의 주인공 여자가 다이어트를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실수로 태어나 숨겨진 자식으로 자라나 받은 것이라고는 아버지의 뚱보 유전자밖에 없는 여자.  결국 그녀는 유전자에 저항하며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마침내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을 맛있게 후루룩 집어삼킨다.  체력도 없고 말더듬이에 못생긴 미조구치에게 부모란 어떤 존재였을까.  게다가 자신처럼 못생기고 볼품없음에도 자신과 아버지의 눈앞에서 다른 사내와 불륜을 저지르는 비천한 자신의 어머니.  비교적 짧게 서술된 미조구치의 부모에 대해서는 책 속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안짱다리 친구인 가시와기를 입을 통해 선천적 결함은 결코 타인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전쟁 중에도 굳건하게 살아남아  끊임없이 자신의 추함과 결함을 상기시켜 멸시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에게 중요한 금각사.  우이코가 영원히 그의 마음속에 연인이 되어 있는 것은 그를 멸시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를 멸시하지 않는 존재는 그에게 무가치한 존재다.  낯선 여인들 앞에서 서슴없이 '더듬어! 더듬어보라니까!' 다그치는 가시와기에게 저항하지 못하는 이유 역시 그가 자신을 멸시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끊임없이 나를 멸시한다.  추남에 말더듬이인 미조구치에게 멸시받는 삶은 어느새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금각사 내부에서 작부의 배를 걷어차며 처음으로 타인을 멸시하는 행위의 희열을 맛보게 되는 미조구치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치부를 인식한 타자가 없으므로 죄도 없다는 논리는 '미'의 가치가 진과 선과 분리되기 시작하면 얼마나 악과 부조리와 결합되기 쉬워지는지 알 수 있다.  
인식론자인 가시와기는 미를 동경하지 않는다.  그는 대상을 대상답게 만드는 거리를 이미 터득했다고 생각하기에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남천참묘의 공안에서 남천 스님이 그러했듯이 모든 미망과 망상의 근원을 제거함으로써 행위론자로 변모하는 미조구치는 자신이 동경하는 금각을 정복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는 금각을 불태운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불타는 금각을 바라보며 미조구치는 자살하려고 준비했던 단도와 칼모틴 병을 던지며 비로소 '살아야지'하고 되뇌었다.  아마도 결코 그는 미에 대한 동경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차가 멈추어도 승객들은 거기서부터 걸어야 한다는 젠카이 스님의 말씀 속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보았다. 어쨌든 우리는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어느 쪽이건 곧 멈추지. 무리하게 결심하고 지속시켜도 언젠가는 멈추게 되지. 기차가 달리는 동안 승객은 멈추고 있지. 기차가 멈추면 승객들은 거기서부터 걸어야만 해. 달리는 것도 멈추고 숨도 멈추지. 죽음은 최후의 휴식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거든.

미시마 사건


1970년 11월 25일.  일본 도쿄 시내 육상자위대 2층에서 군국주의와 천황제 부활을 외치던 미시마 유키오가 할복자살했다.  그의 문학적 스승은 <설국>으로 196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  스승도 제자의 자살 충격에 2년 뒤 의문의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도쿄대 법학부 졸업한 엘리트 중의 엘리트로 '가면의 고백'으로 문학계에 입문한 미시마 유키오.  주로 탐미주의적인 작품을 발표, 1956년 <금각사>로 30대의 젊은 나이에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등 일본 문학계에 반향을 일으켰지만 일본적인 것의 집착으로 생을 마감한다.  미시마가 만 31세의 나이에 발표한 <금각사>는 실제 방화 사건을 취재하여 쓴 시사 소설이다.  태어날 때부터 추남에다 말더듬이인 미조구치가 티 없이 맑은 순수의 상징인 쓰루카와와 안짱다리를 가진 가시와기의 만남을 통해 점점 변하게 되는 모습을 그렸다.  서로 상반된 성격을 가진 등장인물의 이원론적인 대비의 모습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나 <니르치스와 골드문트>같은 성장소설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전쟁의 현실을 외면하는 일본 문학 특유의 성격으로 어떤 성장을 이루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문학이 세계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아름다운 문체를 빼놓을 수 없는 것 같다.  스승인 가와바타와 마찬가지로 미시마 역시 문체가 너무나 아름답다.  전쟁의 피폐함 속에서도 미에 대한 소설을 쓴 미시마 자신이 남천참묘의 공안에서 조수의 입장이 아니었는지 생각해본다.  그 역시 나중에는 남천과 같은 행위론자가 되기에.  그의 일대기를 알았다면 도저히 읽을 엄두가 나지 않을 책.  그러나 책을 덮는 순간 다시 보고 싶어지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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