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 - 과학적 사고의 탄생
카를로 로벨리 지음, 이희정 옮김 / 푸른지식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아낙시만드로스는 공룡이 아니다

<모든 순간의 물리학>으로 '제2의 스티븐 호킹'으로 평가받는 카를로 로벨리.  그가 다시 조명한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였던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만드로스는 공룡이 아니다'라는 경향신문 [책과 삶] 칼럼의 첫 문장을 보고 혼자 배꼽을 쥐며 웃었다.  그렇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새로운 공룡 이름이 아니다.  그는 신을 중심으로 한 종교적 신비적 세계관으로부터 과학적 사고로의 전환을 꾀한 자연주의 과학자이다.

근현대의 과학을 뒤엎은 아인슈타인, 그가 시작한 과학 혁명의 의미
    

빛이 에너지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다는 광양자설, 물질이 원자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브라운운동의 이론, 물리적 시공간에 대한 특수 상대성 이론, 광전 효과에 관한 연구로 노벨물리학 상 수상,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성을 발견하여 원자 폭탄의 가능성을 예언한 아인슈타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물, 흙, 공기, 불이라는 4개의 실체로 우주가 구성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후 수많은 과학자들이 측정과 실험을 통해 뉴턴이 운동 법칙으로 정리하였다.  하지만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생각은 세계가 단순히 특정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라플라스의 결정적론 세계관이 잠식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바로 '과학적 사고'의 걸림돌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그러했듯, '세계를 재발견'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틀을 뒤엎는 재정립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과학은 잔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아낙시만드로스는 해, 달, 별들이 완벽한 원을 그리며 뜨고 지는 모습을 보고 하늘이 우리 머리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한다.  그가 생각했던 지구의 모습이 구가 아니라 수레바퀴 모양의 원통형이었다 할지라도 관점을 재정립하고 그것을 발견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었다.  이제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보면 아낙시만드로스가 지구가 어떻게 생겼을까 고민하던 모습이 떠오를 것 같다.  과학의 발전을 배에 비유해서 설명한 부분에서 '천공의 섬 라퓨타'가 떠올랐다.  지구라는 행성이 하나의 작은 우주 라면, 하늘에 떠 있는 라퓨타는 작은 지구다.  마지막 장면에서 낙원의 섬 라퓨타를 버리고 동력없이 바람만으로 움직이는 글라이더로 라퓨타를 빠져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홀가분한 모습이 아니라 새로운 과제를 가지고 떠나는 숙연한 모습이었다.  '이제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가 탐구한 세상은 아주 조그만 부분에 불과하다.  

과학의 힘은 확실성 아니라 우리의 무지가 어디까지인지를 날카롭게 인식하는 데서 온다.  과학이 내놓는 대답들이 확정적이어서 믿을 만한 게 아니다.  지식의 기나긴 역사 가운데 한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나은 대답이므로 믿을 만한 것이다.

세계를 '이해하는'것이 과학적 사고의 목적이다

밀레토스는 고대 제국들과 오래된 문화에 가장 열린 도시국가였다.  쉬운 문자 체계는 시민의 참여와 자유로운 토론을 가능하게 하였고 그것은 민주적 사고의 발판이 되었다.  그리스인들이 지구가 천공에 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이유는 그들의 '다양성'에 있었다.  문명들은 만나고 뒤섞여 발달하고 진보한다.  미래는 우리의 자유로운 꿈에서만 태어날 수 있으며, 새로운 미래는 자유로움 속에서 자라난다.  가장 확실해 보이는 것이 틀린 것으로 밝혀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것.  종교나 신비, 그리고 신을 근거로 삼지 않더라도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인식하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불확실한 미지의 세계가 있음을 알고 즐거워하는 것.  과학적 사고는 세계를 이해하는 첫 번째 계단이며, 오늘날 그런 사고를 갖게 해준 첫 번째 과학자, 최초의 과학적 사고를 가진 '과학적 사고의 아버지'로 아낙시만드로스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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