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2 - 시간.언어 편 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2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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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론지(의미있는곳으로) 가고 싶고, (의미 있는)무엇으로 있고 싶고, 무언가(의미 있는 것을) 말하고 싶지만, 가지도 있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아닌 채, 말이 아닌 말(독백)을 하는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의  한 장면이다.   크라프는 매년 자신의 생일, 과거 자신의 모습을 되감기하며 과거의 삶을 후회하고 새로운 삶을 살려고 하지만 항상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1부<시간>편의 대담자로 등장한 소설가 윤성희 작가 말을 빌리자면 자신의 삶을 이야기를 통해 재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길고 긴 인생이라는 여정 속, 스스로와의 싸움에 패배했다고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합리화된 이야기'로 치부될지 모르지만 이야기를 구성해 본 사람은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갖게 된다.  이야기는 줄거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통합성을 이루며 자기 행동에 대한 도덕성과 윤리성을 스스로에게 묻게하기 때문이다. 


이야기에 의해 구성되는 '자기'는 자기 자신의 시간적 통일체 안에서 형성된다.  즉 인간은 자신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적 구성을 통해 외적 시간(크로노스)을 따라 사라져버리는 삶에 어떤 의미와 가치 그리고 자기 행동에 대한 도덕성과 윤리성을 부여하는데, 이런 내적 시간(카이로스)을 통해 형성되는 자기 정체성이 곧 '이야기 정체성'이다.      152p


시간은'크로노스''카이로스'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전자는 분산되는 시간, 물리적 시간인 반면 후자는 집중되는 시간, 심리적 시간을 뜻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같은 시간이 주어진다.  저자는 몸은 부득이 물리적 시간을 살 수 밖에 없지만 마음은 심리적 시간 속에 살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  매 순간을 죽음의 문으로 향하는 것으로 인식했을 때 인생의 덧없음, 허망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심리적 시간 속에 산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나의 이야기에 디테일을 갖는 것.  삶에 '디테일'을 갖는 것은 특별한 사건이 연속적으로 발생되는 것에 기인하지 않는다고 한다.  윤성희 작가는  나의 시선으로 나의 이야기를 하는 방법에 익숙해져야만 한다고 했다.  인간에게 기억이 단지 과거의 일들을 떠올려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저도 모르게 잃어버린 '삶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되찾아주는 일을 한다면 크로노스 속 나의 모습을 '변환' 또는'치환'시켜주는 매개체는 분명히 '인간의 기억'이 될 것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기 위해 매순간 노력해야 한다.  추억이 없는 사람은 기억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윤성희 작가는 대담의 끝마칠 즈음 이런 얘기를 한다.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것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얘기하기 위해서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라고.


"당신은 까닭없이 태어나지 않았다.  까닭 없이 살이 있는 것이, 까닭 없이 견디는 것은 아니다." 185p


요즘 '이야기'는 화두다.  스토리텔링이라는 이름으로 초등학교 교재가 만들어지고 어릴때부터 자신의 이력서에 자신의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을 해야하는 시대다.  호모 사피엔스보다 신체조건이 더 뛰어났던 네안데르탈인들이 멸종했던 까닭은 후손들에게 '이야기'를 전해줄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자는 1부 <시간>편에서도 이야기의 중요성을 여러번 강조했다.  2부 <언어>편에서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 즉,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좀 더 생각해본다.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정복한 것은 우리에게만 있는 고유한 언어 덕분이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인간이 허구를 만들어 전달하는 능력 때문에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문명이 나타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오직 사피엔스만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공통적으로 믿고 말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양한 예시를 통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언어는 인간의 생각과 마음 행동을 구성하고 지배하는 핵심요소다.  아직도 6~70대 어른들 중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향수에 사로잡혀 있는 분들이 많다.  대통령의 업적을 찬양 하다싶이 기록한 당시 교과서의 영향력이 지금까지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 곳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박근혜대통령이 국정 역사 교과서를 자신의 임기동안 추진하려고 했던 이유도 여기서 설명된다. 




영화 <제이콥의 거짓말>에서 유태인의 거주지였던 게토에 남겨진 사람들은 제이콥이 우연히 들은 아군소식에 희망을 갖게 된다.  나중에 제이콥은 사실을 말하지만 오히려 사실을 알게된 사람은 자살하게 되고, 제이콥은 자신이 하는 1그램의 거짓말이 1톤의 희망을 만들어 내는것을 경험하게 된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마치 그런 것처럼'이라는 형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거짓말과 허구는 같지만 거짓말은 사실에 대한 왜곡과 기만이, 허구는 사실보다는 '믿음의 여부'와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나는 지금까지 세계가 이성을 바탕으로 사실에 입각한 합리주의자들에 의해 지배되어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관점이 되는 일상적 개념 체계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은유적이라고 말한다.  은유가 단지 시나 소설에 사용되는 문학적 수사가 아니라 우리의 거의 모든 사고와 언어와 행동의 근간이라는 사실이라니 스스로 깨어있지 못하면 그들이 눈에는 쉽게 조정할 수 있는 개, 돼지나 다름없다.  어쩌면  지금도 우리는 계속 지금의 부와 권력을 유지하고 싶은 자본가의 프레임에 끊임없이 설득당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을 형성하고, 우리의 생각이 자기 자신과 사회 그리고 세계를 바꿀 수 있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그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213p


채팅으로 이야기만 주고 받던 남녀가 실제로 만나게 되면 왜 실망하게 되는가?  기대한 대로 이뤄진다는 '자기충족적 예언'은 '허구'지만 '거짓'은 아니기에 우리는 스스로의 기대나 희망대로 상대를 제멋대로 상상하게 된다.  모든 사람에게 "미남이세요"라고 말하면 그녀가 원하는 것을 얻게된다는 장 지로두의 <벨락의 아폴로>.  이 낭독공연의 긴 대화체가 왜 이 책의 12페이지나 할애하고 있었는지 나는 뒤늦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진실로 깨어있으려면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찰라에 머무는 '말' 대신 글쓰기를 통해 자기인식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여기서 작가는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상식의 프레임 하나를 깨뜨린다.  추상적.논리적 사고, 시간의식,역사의식,자기의식과 같은 인간의 고등 정신기능이 아이가 자라면서 하는 '경험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언어, 더 정확히는 '글 읽기와 글쓰기를 통해서' 형성된다는 것이라고.  그리고 저자가 말하는 신의 빛살로서의 언어, 즉 존재의 의미를 밝혀주는 물의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서 우리는 포용의 언어를 써야 한다고 말한다.  나의 섣부른 판단이 상대방의 내면의 욕구를 읽는 것을 방해한다. 시작은 달랐지만 <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1>의 결론과 결국은 같았다.


포옹은 존재론적 행동이다.  우리가 타인을 안아준다는 것은 그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 잠시나마 그와 일체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그것은 인간의 무의식에 깔려 있는 낙원추방의 원체험, 곧 죽을 것 같은 실존적 분리감에서 구원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태에서 분리된 뒤부터 안고 있는 버림받은 감정, 쓸모없음에 대한 인식, 죽을 것 같은 느낌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는 것을 뜻한다. 310p


2016년 6월 영국의 EU 탈퇴 선언(브렉시트)과 트럼프의 당선은 '닦달'과 '몰아세움'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후기 자본주의의 일부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촌 사람들은 공유와 나눔을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유토피아를 세우는 일에 집중하려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했던 것으로는 올바른 해법에 도달하지 못 할 것이다.  올해가 지나기 전에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한다.  새해가 멀지 않았다.  나를 돌아보기에 이처럼 적합한 때가 또 있을까.  올해의 책을 이미 투표했지만 이 책이 후보로 나온다면 나는 주저없이 이 책을 선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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