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튼 생각 : 살아간다는 건 뭘까 인생그림책 2
브리타 테켄트럽 지음, 김서정 옮김 / 길벗어린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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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 대한 개념이 바뀌고 있나? 어른을 위한 그림책 같다. 간결하게 나열된 글과 그림을 들춰보며 잠시 다른 공간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다음 장을 넘긴다. 일반 소설책 두께의 그림책은 소설책도 그림책도 아닌 어떤 이의 인생 폴더를 열어 보는 듯했다. 두께에 놀랐다가 무겁지도 가볍지 않은 메시지에 또 놀란다. 무작위로 이곳저곳 펼쳐보다 각기 다른 상념으로 빠져들었다. 책 제목처럼.

 

커다란 두상이 마주 보고 있는 장에서 멈추었다.

 

예측되는 생각과 행동은 재미없다. 늘 나와 다른 사람을 쫓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대의 반응은 삶에 활기를 주었다. 때때로 그런 반응에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다시 나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 별을 간직하고 있는 깜깜한 네 머릿속과 스산한 바람이 부는 내 머릿속은 참 다르구나.

 

엄마는 내가 태어날 때 마당에 천리향을 함께 심었다고 했다. 이사 다닐 때마다 옮겨 심었는데 아파트에는 끝내 가져오지 못했다. 한동안 옛날 집 앞 대문 틈 사이로 나무가 잘 있는지 확인하러 갔었다. 무덤에서 나무가 자란다면 그 사람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 같이 태어나기도 하니까.

미치도록 꿈꾸고 싶다. 모든 것들이 사실이 되는 꿈속에서 잠시 놀다 오고 싶다. 지금은 꿈꾸지 못한다. 꿈을 꾸면서도 이건 꿈이라는 생각이 먼저 드니까. 모든 것들이 사실처럼 느껴지는 꿈을 꾸고 싶다. 내내 꿈이었으면 좋겠다. 내내 깨어나지 않는 꿈.

 

지금, 여기가 가장 중요하다. 아무 효용도 쓸모도 없을 것 같은 상상이 하늘을 날게 한다. 밟고 있는 땅이 외줄인 줄도 모르겠지. 맨땅 위에서도 매일 외줄 타는 듯 살아가는 이유는 뭘까. 그래! 발밑만 내려다보지 않으면 돼.

짧은 상념들이 겹겹이 쌓여 인생을 만들어 간다. 책 속 그림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블랙홀처럼 빠지게 되는 생각이 오랫동안 상상 속에 머무르게 했다. 아이가 처음 자기가 왜 태어났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을 때 어떤 대답을 해줘야 할지 몰라 당황했었다. 아이도 그런 생각을 하는가 싶어서.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지만 아이처럼 이내 잊어버렸을 것이다. 어그래서 허튼 생각이 허튼 생각이 아니라 말해주고 싶다. 맘껏 허튼 생각에 빠져 보라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빨간 벽'에서 보았던 벽도 보이고 지문이 덧입혀진 것처럼 색이 겹치는 모습이 몽환적인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볼로냐 라가치 상과 케이트 그리너웨이 상 후보에 오른 다수의 작품 속에서 볼 수 있었던 느낌이 전해진다.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 서로 가진 장점을 버무려 이야기 이상의 것을 보여 준다 생각했는데 이번 책을 보며 다른 생각이 든다. 표지 그림에서처럼 이야기가 아닌 생각이 다음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느낌이랄까.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것은 아이들뿐만이 아니겠지.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시리즈가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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