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애나 비룡소 클래식 45
엘리너 포터 지음, 스톡턴 멀포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네 기쁨이 내 기쁨이 될 때

기쁨 놀이의 마지막 퍼즐은 완성된다

비룡소 클래식 45권 <폴리애나>는 부모님을 모두 잃고 이모인 해링턴 양 집에서 살게 되는 열한 살의 여자아이 이야기다. 도입부의 설정은 ‘빨강 머리 앤 아류작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앤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음에도 구김살 없고 쉴 새 없이 재잘거리던 앤의 모습이 폴리애나와 묘하게 겹쳐졌다. 의무감 때문에 폴리애나를 맡기로 한 해링턴 이모는 무뚝뚝하고 검소한 마릴라의 모습과 닮았다. 하지만 앤이 공상의 세계에서 단단해졌다면, 폴리애나는 기쁨 놀이를 하며 스스로의 성장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성장시킨다. 앤이 마릴라의 철옹성 같았던 마음의 벽을 허물었던 것처럼 폴리애나는 어제와 같은 삶을 살고 있던 해링턴 양에게 문을 쾅 닫고 싶을 만큼 기뻐하는 마음을 알게 한다.

 

“그게요, 아빠랑 제가 그 놀이를 하게 된 건 선교사 지원품으로 목발이 왔을 때였어요.... (중략) 그 놀이는 그냥 언제 어디서나, 무슨 일에서든 기쁜 점을 찾아내는 놀이거든요. 아빠랑 저는 바로 그때부터, 목발을 받았을 때부터 그 놀이를 했어요...... (중략) 기쁜 점을 생각해 내는 게 어려울수록 더 재미있어요.”

인형 대신 목발을 받고 시작된 폴리애나의 기쁨 놀이. 삶에서 기쁨을 찾는다는 것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 감흥 없는 얘기다. 매사 감사하다는 말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지만 현실에 감사하기는 쉽지 않다. 폴리애나의 기쁨 놀이를 처음 보았을 때 풋- 하고 소리 내어 웃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이런 식으로 기쁨을 찾는 일이 자기 합리화나 자기 위안이라 말한다 해도 반박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도대체 내 것이 아닌 기쁨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폴리애나는 지병으로 줄곧 침대에서 생활해야 하는 스노 부인에게 나머지 사람들이 건강하다는 사실이 기쁘다는 말을 한다. 언뜻 들으면 황당한 얘기인데 이모집에서 일하는 낸시와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를 읽으면 진짜 기쁨 놀이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기쁨은 부정이 아닌 긍정의 모습에서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진짜 기쁨은 나를 위할 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할 때에도 맛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고로 다리를 다쳐 누워있는 폴리에나를 위해 마을 사람들은 기쁨 놀이를 열심히 한다. 기쁨의 주체가 내가 되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네 기쁨이 내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 기쁨 놀이의 절정이었다.

내게 행복을 보여주는 온도계가 있다면 매일 눈을 뜨자마자 내 행복을 가늠하러 온도계의 눈금부터 살필 것이다. 온도계의 붉은 막대가 보여주는 높이에 따라 높으면 높은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 순식간에 삶의 희비가 교차한다면, 삶의 온도는 오롯이 온도계의 몫이 되고 말 것이다. 온도계를 햇살 가득한 창가에 걸면 온종일 비스듬한 가장자리에서 비추는 무지개를 볼 수 있다는 폴리애나. 그냥 숨만 쉬는 건 사는 게 아니라는 말이 가슴에 콕콕 박히며 심장을 쿵쾅쿵쾅 두드린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아무 기쁨 없이 홀로 살아가는 어른들께 강추.

"살아있는 시간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언제는 죽어 있기라도 한단 말이니?"

"아, 당연히 숨이야 늘 쉬겠죠. 그런 걸 배우는 시간에도요. 하지만 살아 있지는 않을 거예요. 잠잘 때도 숨은 끊임없이 쉬지만, 그건 살아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제가 말하는 살아 있는 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예요. 밖에서 놀고, 책을 읽고...... 물론 혼자서 읽고요. 또 언덕을 오르고, 정원에서 톰 할아버지랑 얘기하고, 낸시 언니랑도 얘기하고, 어제 지나온 무지 멋진 길거리를 구석구석 다니면서 어떤 집이 있고 어떤 사람들이 살고 그런 걸 모두 알아보는 거라고요. 저는 그런 게 사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모. 그냥 숨만 쉬는 건 사는 게 아니라고요!"

<폴리애나> p.74

 

선교사 지원품은 도무지 뭐가 올지 알 수가 없다는 거예요. 확실한 건, 오겠지 싶은 물건은 절대 안 온다는 것뿐이에요. 그렇다고 안 오겠지 생각한다고 해서 오는 것도 아니고요. 69

- 이건 인생의 비밀인데 참 쉽게 알게 되었구나... 선교사 지원품을 받으러 가야 인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 것일까?

그런데 해야지 생각해서 한 건 아니에요. 그냥 이렇게 저절로 될 때가 많아요. 뭔가 기쁜 점을 찾다 보면 몸에 배거든요. 그리고 무슨 일이든 계속 찾아보기만 하면 거의 언제나 기뻐할 만한 점을 찾을 수 있어요. 80

-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견딜 수 있는 이유를 찾아내기 마련이지. 그 이유가 기뻐할 만한 이유라면 더 좋겠지?!

아무렴 어때요. 누가 온도 같은 걸 신경 쓰겠어요. 언제나 무지개 속에서 살 수 있는데! 218

- 당신을 삶의 구도자로 모시겠습니다. 제 무지개는 어디에 있나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