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질문이 불편하다 - 나태함을 깨우는 철학의 날 선 물음들
안광복 지음 / 어크로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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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 공부를 하면서 주인공이 겪는 시련 중에 빨래를 하는 문장에 대해 사람들과 얘기 나눈 적이 있었다. '흰 빨래는 검게 빨고, 검은 빨래는 희게 빨아야 한다'라는 말은 언뜻 들어보면 정말 이상한 말인데도 주인공은 그 말에 따라 흰 것은 검게 빨고, 검은 것은 희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여러 시험 끝에 자신이 원하던 일을 성취한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태도나 관점을 바꿈으로써 자신의 인생뿐만 아니라 세상까지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옛이야기는 말하고 있었다.

저자가 서문에서도 밝혔듯 철학자들은 당연해 보이는 것에 대해 끊임없는 의문을 던짐으로써 세상을 변화시켜 왔다. 창의적인 발상은 남들이 하지 않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틀을 깨뜨리고 내 안에서 한 발자국 나왔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철학은 일상이라는 사실을 몸소 가르치며 실천하고 계신 안광복 선생님의 새로운 책 <나는 이 질문이 불편하다>는 어제와 같은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는 묵직한 질문들이 가득했다.

 

책은 목차는 있지만 차례대로 읽지 않아도 되는 구성이다. '나는 도대체 왜 살고 있나?'라는 존재 의미를 묻는 질문에서부터 인간 존엄성과 정의, 진리, 환경보호까지 다양한 질문들이 등장한다. 저자는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고등학교 철학 선생님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부드러운 어조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며 스스로 생각하기를 유도한다. ‘소크라테스 대화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던 이력을 책 쓰는데 적극 활용한 것 같다. 그래서 생각하려 애쓰지 않아도 읽다 보면 머리를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책을 읽을수록 선생이라는 직업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책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책표지와 더불어 첫 문장은 책의 매력에 종지부를 찍게 마련이다. 그래서 그의 첫 물음은 어떤 것일까 궁금했는데 여지없이 '나'라는 인간의 존재 이유를 묻는 질문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도대체 왜 살고 있나?'라고 자문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그 대답을 찾은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대의 위대함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문장에는 자신의 존재 의미에 끝없는 의문을 갖는 인간의 본모습이 숨어 있다. 결국 삶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긴 여정이다. 그래서 그의 첫 물음은 이 책을 끝까지 읽고 싶은 이유가 되었다.

글쓰기 수업을 수강하면서 인연을 맺게 된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의 임승수 작가가 자신의 강의 평가를 보며 격세지감을 느낀다는 메일을 보내왔다. 팍팍한 현실을 몸으로 겪고 있는 20대 청년층의 사상적 보수화를 직접 느끼고 있다는 글에서 ‘나 혼자 잘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만연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조차 연대와 혁명을 통해 무엇인가 이루어 보지 못한 세대로써 함께 무엇인가 만들어 간다는 것에 충분히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서 이 책의 여러 질문 중 가장 눈에 띄었던 질문이 "일 안 하고 돈만 받는 사람은 비겁한가?"였던 것 같다.

그동안 인간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신하게 됨으로써 생산제를 소비할 여력이 줄어드는 계층이 늘어나 '기본소득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학자들의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을 하지 않는데도 소득의 일정 부분을 보존해 주는 ‘기본소득제’를 실시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어떤 입장을 취할까?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청년수당’이라는 명목으로 청년들에게 일정 금액을 지원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일하지도 않는데 돈을 줘야 하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실정이다. 스위스 국민들이 기본소득제를 반대해서 실행하지 못했다는 것과 현시대의 청년들의 보수화는 여러 가지 시사하는 바가 컸다.

이 밖에도 "모두에게 올바른 역사란 과연 가능할까?"에서는 유시민 작가의 <역사의 역사>가 떠올랐다. 그가 사실만 기록해야 하는 랑케의 역사관보다 사실에 해석을 덧붙인 카의 역사관을 더 좋아하는 이유도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인간의 삶과 사회의 변화 과정 자체가 역사라면 역사는 작게는 나의 이야기이지만, 크게는 너와 나,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다시 옛이야기의 빨래 이야기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주인공이 자신의 틀을 깨고 나와 모험을 선택하게 된 '이유'와 모험 끝에 성취하게 될 '지향점'을 만들어 가는 것이 역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나오는 불편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생각하며 나만의 답을 써 내려가다 보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지도가 어느 정도 그려질 것이다. 평소 자신이 의문을 가졌던 문제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생각이 만든 지도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름길을 가르쳐주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길을 헤매지 않도록 도와주는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자라는 만큼 지도를 계속 수정하고 쉬어가는 갓길을 만들어가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 될 것이다.

지금 불편한 질문들에 마주하지 않으면 누가 봐도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정작 자신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이자 아이들을 가르치는 안광복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어진다. 나의 존재 이유에 대해 조금 더 일찍 자문해봤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장점은 읽어야 할 책의 분량이 적다는 것이지만, 활자를 읽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생각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는 것을 미리 얘기해 둔다. 하지만 몰입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처럼 시간을 들일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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