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죽으러 갑니다
정해연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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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쭙잖은 얼개의 추리물은 싫어한다. 셜록처럼 사소한 상황 증거만으로도 범인을 가려내거나 csi처럼 과학적 실험과 검증을 통한 분석을 감상하는 것이 개인적 취향이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순전히 표지 그림 때문이었다. 몇 주전 읽었던 안나 클라라 티돌름 동화책 <두드려 보아요>의 표지 그림과 묘하게 실루엣이 겹쳤다.

 

똑같이 문 앞에 서 있지만 어린이가 두드리는 문은 설렘을, 어른이 두드리는 문은 두려움이 담겨있다. 아이 눈에 비친 문 뒤의 세계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세계다.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줄 때도 뒷장에 어떤 그림이 나타날지 뜸을 들이고는 했었다. 그렇지만 어른이 선 문 앞은 다른 느낌이다. 땅의 경계가 사라진 문의 모습은 현실의 문이 아니다. 뻔한 결말이 예상되는 현실세계의 문은 아무런 호기심이 일어나지 않는다.

어른들의 세계는 호기심만으로 살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아무 일 없이 지내면 벌레 취급받고, 마음속 상처도 쉽고 빠르게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릴 때 삶의 이유와 희열을 안겨주었던 소중한 일상은 그 가치가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평범한 일상은 더 이상 살아갈 가치가 될 수 없었다. 되려 누구나 겪는 평범한 일상이라는 인식은 비수가 되어 돌아온다. 어쩌면 그들 스스로 새로운 희망을 갖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의 죽음뿐이었을지도 모른다.

주인공 태성은 이전에 살았던 기억이 사라진 채 삶의 출발선에 놓이게 되었다. 경찰이 자신의 기억이라 말해준 것은 친부모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뿐이다. 번개탄을 피워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부모는 감옥에 있었다. 그는 최저생계비만을 받고 살아가야 할 인생에 아무런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자살을 결심한다. 그렇지만 혼자 죽기는 무서웠기 때문에 단체로 자살을 할 수 있는 카페에 가입하고, ‘메시아’라는 닉네임을 가진 카페지기 한동준의 도움을 받아 외딴곳에서 단체로 자살하기로 한다.

그러나 한동준은 네 명의 자살 지원자들에게 세상을 뜨기 전에 원하는 일을 하고 죽자고 제안하며 5일의 시간 동안 단체 자살을 유예한다. 기대나 희망이 없어 찾아든 자살 지원자들에게 죽음이 유예된 5일의 시간은 희망고문에 불과하다. 그렇게 희망을 가져봐야 어차피 닥쳐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피해 갈수 없을 텐데 '왜' 희망을 주는 것인가. 개돼지 같은 하층민에게는 ‘선택지가 있다’는 생각마저 사치였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려주려는 것이었을까. 어쩌면 지금도 실낱같은 희망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메시아' 한동준은 이 세계에 천국의 문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죽음에 이를 수 있을까?


 

난...... 살고 싶었어.

 

 

 

가진 자의 논리에 따라 살아야 하는 인류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피폐해졌다. 내가 먼저 살고 봐야지 남까지 챙기면서 살아갈 여력은 남아있지 않다. 간혹 조금은 인간적인 모습을 가진 자들도 스스로 이중적인 모습을 자각하고 새로운 세계의 규칙에 따르게 된다. 읽는 내내 불편한 감정이 가시질 않았다. 잔혹한 이 세계에서 진정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절망감이 엄습해 왔다.

무엇이 그토록 인간을 잔인하게 만드는 것일까. 매일 죽음을 되뇌는 구차하고 하찮은 삶일지라도 악착같이 살아가는 이유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학습된 경험은 강화되어 새로운 악마를 낳았다. 변절자는 누구보다 새로운 규칙에 충성하게 될 것이다. 차라리 죽음을 선택한 이들이 더 인간적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다음 문 앞에 선 사람은 누구일까. 아, 다시 돌아가고 싶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똑똑' 문을 두드리던 그 시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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