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걷는 시간 - 소설가 김별아, 시간의 길을 거슬러 걷다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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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느끼지만 길 찾기는 참으로 이상스럽다. 찾기 전까지는 어려운데 찾고 나면 쉽다. 모르는 길을 가면 더디게 느껴지는데 알고 돌아오는 길은 빠른 듯한 기분과 같다. 한 번 더 거듭되면 고단한 삶도 조금은 쉽게 느껴질까. P197

길치에다 방향치. 그런데도 가만히 집에 있지 못하는 성격이다. 마음보다 몸이 먼저 동해 목적지 없이 방황한 적도 많다. 찾아갈 목적지를 찾고 싶었다.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내 눈에는 보이는 인연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자국이 한량의 발자국이 아니라 대의를 품은 장군의 발자국이기를 바란다면 너무 큰 욕심일까. 그러나 한량의 인생일지라도 한 번 뿐인 인생에 이정표를 만들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뽀얀 먼지 속에 침잠된 내 역사는 서랍 속에 고스란히 표석이 되어 남아 있지만 <도시를 걷는 시간>은 역사가 지금 나와 함께 공존하고 있음을 알려주며 거리 곳곳에 숨겨진  옛사람들이 살았던 세상의 표석을 찾아 보여준다.

쉽게 읽힐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저자의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옛사람들의 모습은 내게 쉬이 보이질 않는다. 저자의 지식과 독자의 지식의 무게가 수평은 아니더라도 조금은 저울질할 정도는 되어야 보이는 것일까. 아마도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변화되는 영상을 보듯 선명하고 뚜렷하게 보이는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기대했던 탓이리라. 기술의 진보가 낳은 편리함의 익숙함은 조금의 비효율성도 참지 못한다. 글 한 편을 읽고 나면 바로 구글맵을 켜고 관련 지역을 조회해 보았다. 어차피 표석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지역이라면 굳이 길을 떠나 찾아 나서야 할 필요까지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러고 보니 여전히 '읽기'가 아닌 '보기'라는 행위에 치중하고 있었던 내 모습이 보였다. 서랍 속 침잠된 표석들은 직접 꺼내 보기 전까지는 그때를 떠올릴 수 없다. 문자는 알지만 문자에 숨겨진 뜻을 헤아리지 못하며 활용할 수 없는 것과 같았다. '우리는 여전히 수많은 문자의 숲에 둘러싸여 있지만, 문자를 통해 정보를 얻고 감정과 의견을 전달하지만, 그것을 읽기라기보다 보기의 행위에 가깝다. 무수히 많은 글자를 본다. 하지만 읽지는 않는다.'라는 저자의 말은 옳았다. 심심하고 적적하게 자연과 함께 서울의 거리에서 옛사람들의 그림자를 생각하며 머무르는 시간이 필요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지하철 노선도를 따라 책 속에 나온 곳을 표시하려다 그만두었다. 정리 강박증인지 알게 된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지 않으면 금방 사라질 것 같아 불안해진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정리하려고 하는가. 표석만 남아 있는 곳에서 무엇을 찾기 위해 떠나려 하는 것인가. 우연히 그곳을 지나다 표석을 만나 그녀가 들려주었던 옛이야기가 드문드문 떠오른다면 좋겠다. 그 길에 함께 걷는 이가 있어서 그녀가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지식으로 받아들이려 하면 지식으로만 남게 된다. 삶은 누군가와 함께 한 이야기다. 도시를 걷는 시간은 누군가와 함께 만들어 갔던 지난 삶의 이야기다. 유유자적하게 누군가와 이야기하며 길 떠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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