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레이션의 힘 - 말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박형욱.김석환 지음 / 예문아카이브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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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것이 낭독이라면 춤추는 것은 내레이션이다

작년에 경의선 책거리 낭송 인문학 수업을 듣고 <어린 왕자> 낭독회를 준비하면서 낭송의 위력을 몸소 체험했다. 처음 '낭송인문학'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조금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어린 왕자는 시가 아닌데 왜 낭독이 아닌 낭송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이 책 <내레이션의 힘>에서 말하려 하는 책의 주제도 그때의 의아함을 떠올리게 한다. 책 읽기를 낭독이 아닌 낭송으로 해야 하는 이유 말이다.

기술의 발달로 1인 미디어 시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나를, 또는 그 무엇을 '잘' 표현하는 것이 대세다. 작게는 유튜버에서부터 크게는 한 나라의 대통령을 선택하는 일까지 내레이션이 쓰이지 않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말은 문자를 만들었고 문자는 책을 만들 수 있는 단초가 되었다. 그러나 영구적이고 지속성 강한 문자보다 말의 힘은 강력하다. 말속에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자주 인용된 영화 <킹스 스피치>를 보았다. 뻔한 줄거리를 끝까지 보게 만들었던 것은 주인공 콜린 퍼스의 말더듬이 연기였다. 카메라 앵글도 말 한마디를 떼지 못해 답답한 마음이 얼굴 근육과 억양, 제스처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모습을 무심한 듯 계속 보여준다. 배우가 대본을 외우고 역할에 자기 색을 덧입히는 것처럼 내레이션도 한글 상식을 알고 글에 자신의 감정, 태도, 성격, 제스처까지 전달할 수 있다. 그것이 뻔한 결말을 예상하면서도 매 순간 시선을 놓지 못하는 힘이다.

인간의 타고난 직감은 유창한 기술보다 진실한 마음에 흔들린다. '내 의지만큼 듣는 이가 받아들인다'라는 부분에서 무릎을 치며 공감했다. <킹스 스피치>의 조지 6세가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독일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내레이션을 성공적으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릴 적 할머니 무릎에 누워서 들었던 옛날이야기만큼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또 있을까. 아이들에게 영어책을 읽어주면서 학창시절에 이렇게 책을 읽었으면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책 속에는 내레이션을 잘 할 수 있는 방법과 실천 호흡법 등이 자세히 나와있어 내레이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지적욕구를 충족시킨다. 하지만 지금껏 말하기를 제대로 배워보지 못했으니 실용서처럼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서사 의지가 있고 없음을 비교하는 영상이나 발음을 제대로 하는 법에 대한 영상을 담은 큐알 코드를 넣어 바로 영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내일의 유튜버를 꿈꾸는 소년층, 팟게스트로 전문적 지식을 전달하고 싶은 중년층도 쉽게 이해할 수 있어 진정한 내레이션의 대중화를 노려볼 수 있지 않았을까. 목적도 중요하지만 수단 역시 무시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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