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이 1차세계대전 때 자원입대한 것이나 대학 졸업자는 1년만 복무하는 규정을 무시하고 다른 병사들과 같은 대우로 처해지기를 희망한 것이나 얼추 보면 애국심에서의 군 입대라기보다는 자신을 던져 버리는 특유의 기질 때문으로도 여겨진다. 그럼에도 그는 전쟁터에서 전혀 적응을 하지 못하는 사유의 고아가 되어 버린다. 깊은 사유를 하고자 했으면 전쟁을 피할 수도 있었던 그가 왜 자원입대를 했고 동료들과 거의 전혀 어울리지 못하는 끔찍한 왕따가 되었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3자적 입장에서 왕따이지만 비트겐슈타인 자신의 입장에서는 저열하고 비겁하고 무식하고 거의 원숭이 급의 동료였다. 가히 인간의 수평성, 즉, 인간 개개인이 모두 다르고 처한 환경도 달라 사유가 있을 수도 있는 개체가 있는가 하면 전혀 없는 개체도 있을 법한데 비트겐슈타인의 전쟁터에서의 절규는 바로 이 문제에 너무도 심각하게 부딪치는 듯싶다.
알려지다시피 그의 소위 ‘논리철학논고’는 그의 전쟁터에서 사유를 통해 정리되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의 논고가 나오게 된 초기의 무작위적 비체계화된, 물론 그의 논리철학논고도 체계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의 사유가 그의 일기에 고스란히 담겨있는데 이 책 ‘전쟁일기’는 그의 일기를 고스란히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의 일기는 특징적으로 왼쪽에는 하루 일상의 단편을 일상 언어로 오른쪽에는 그의 논리철학의 초기 과정의 사유 파편들이 담겨 있다. 번역은 그의 일기에 충실하게 만들어놓아서 일상 얘기가 없는 부분은 공란으로 사유적 끄적거림이 없는 곳도 공란으로 해 놓아 그의 본래 일기의 형태를 알게끔 실어 넣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아예 공란인 쪽들이 많이 있다.
그의 일상 일기의 형태는 매우 단편적이나 끔찍하고 그의 사유 일기는 더 단편적이며 몰이해적이다. 다만 이 사유의 부분이 그의 논리철학 논고의 초기 형태이므로 논고에 다가갈 수 있음은 확실해 보이나 파편 조각들은 이어지지 않는다. 그의 사유는 정제되지 않은 채로 끊임없이 전쟁 중에 이어지며 ‘문장’이 무엇인지를 파헤치려 한다. 사유 부분은 다음에 그의 논고와 같이 소개하겠지만 어렵다는 것만은 상기하기 바란다.
그의 왼쪽 부분은 그냥 우리가 일상 접하는 일기의 형태이다.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아마도 저열, 비겁, 작업이라는 명사가 아닐까 한다. 저열과 비겁은 동료 병사들에 대한 그의 시선이고 소위 작업이란 그의 사유를 이름이다. 작업 안 했다, 작업 못 했다, 그런대로 작업했다는 대목이 곳곳에 튀어나온다. 소위 군대라는 것이 폭력성을 담보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독히도 비트겐슈타인 자신이 난관 속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적응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사유를 갈구하며 그 철학적 작업에 때로는 희망을 걸기도 하고 때로는 좌절에 아예 묻혀버리기도 한다. 못할 것이라는 공포는 후에 그가 총알과 포탄이 헤쳐나가는 전장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와 같을 만큼 그의 좌절은 신을 찾게 한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거의 매일 일기 마지막에 써 놓았던 비트겐슈타인이었다.
그가 갖는 유일한 위안은 철학적 사유가 진보를 보였을 때와 수음이었다. 성적 충동을 집어넣은 매우 사적인 일기 때문에라도 그는 이 일기가 불태워지기를 바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 전쟁 일기는 지나치게 개인적인 것도 여과 없이 실었다고 한다.
사유 부분은 그의 저작을 이해하는데 단연코 도움이 되는 것이 논고가 나오기 전의 초기 버전으로서 그의 사유를 담은 것이 그의 전쟁 일기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가 사유하고자 하는 것 자체가 난해하거니와 더군다나 정제되지 않은 파편들로서 오른쪽 부분은 다시 읽기로 결정한 필자는 일기 속의 사유와 그의 논고에 대해 이해하는 정도까지만 블로그를 통해 나중에 싣는다.
전쟁에 말단 병사로 참전한 비트겐슈타인은 이미 그가 상속받은 재산의 일부를 대리인을 통해 유명 예술가들에게 돈을 기부하였다. 릴케도 트라클도 그 수혜자들 중에 있다. 일기에는 트라클의 편지 부분이 나오는데 후원자인 그를 한번 꼭 보고 싶다는 트라클의 편지에 그도 만나기를 열망하는 대목과 결국 전쟁 중에 만나기는 했으나 그는 이미 죽고 없어 슬퍼하는 대목이 짠하다.
그의 사유의 여정에 덧붙여 개인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매우 소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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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의 아버지는 철강산업으로 한때 유럽 제1의 부호인 대부르주아였고 나치때 유대인이었으면서 그 굴레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을 만큼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한 집안이다. 참고로 당시 부호 또는 명사들로서 해방 신청을 한 유대인들 2천여명 중 해방 허락을 받은 사람들은 - 최종적으로 히틀러가 승인하였다고 알려짐 - 10명 정도 밖에 안되었다고 한다. 이 가문이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알려주는 예이다.('비트겐슈타인과 포퍼의 기막힌 10분'에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