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파열의 시대’를 읽고 홉스봄을 알게 되었는데 ‘극단의 시대’라는 그의 책이 배달되었다. 읽고 읽던 책을 잠시 내려놓고 읽게 된 것은 제목이 주는 긴장 때문으로 이 분이 또 어떤 얘기를 썼을까가 매우 궁금하였기 때문이다. 극단의 시대는 20세기 인간의 역사를 조망한 책으로 물론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한 정치(전쟁)와 사회뿐만이 아니라 경제, 예술 심지어 과학도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조망한 완전판이다.
보통 필자는 역사 책을 접할 때 대부분 감성이 잡힌다. 이는 인물 중심의 역사 서술이 많은 까닭으로 나의 독서 행태의 특징이기는 하다. ‘극단의 시대’는 문장이 매우 건조한데 그 이유는 역사 서술이 사건 중심이기 때문이고 방대한 양을 곳곳에 홉스봄 자신의 관점을 기록하자니 문장이 둔탁한 부분도 없지 않다. 우선 저자의 방대한 지식에 놀란다.
20세기의 시작은 곧바로 전쟁과 함께이다. 홉스봄은 이를 31년 전쟁이라 명명하는데 물론 이는 1차, 2차 세계대전을 이른 것인데 비록 중간에 전쟁이 없는 시기가 있었을지라도 적어도 평화의 시기라고 보기에는 오히려 전쟁의 연결선상에서 보는 저자의 관점이 있기 때문이고 17세기의 유럽의 30년 전쟁에서 따온 것으로 여겨진다. 이 전쟁은 여하튼 열강들의 각축장이고 동양에서는 일본이 등장한다. 그의 문장이 비록 건조하더라도 전쟁으로 인한 사상자의 수는 감정이 없이는 읽을 수 없다. 더욱이 벤야민 덕에 요즘 당시 시대에 유난히 머물러 있는 나는 인간 역사에 필연성을 담보로 한 이런 거국적 못된 짓들이 통계적 수의 압도 하나로 이해되는 대신에 인간 개인의 입장에서 느끼기 시작한다. 한마디로 극악한 비극이다. 피할 수도 없는..
역사 전공자답게 정치와 전쟁을 연대기적이 아닌 해석적 관점에서 매우 다양한 예를 들어 상황을 설명하는데 물론 책 제목인 극단의 시대라는 것에 동의하게 될 만큼 건조한 문장으로 드라마틱한 역사의 현장을 던져 놓았다. 전쟁이 왜 일어났냐는 것은 학자에 따라 여러 의견이 나뉠 만큼 그리 쉬운 분석을 아닐 것이다. 홉스봄도 그 점을 지적하는데 일단 2차대전은 히틀러라고 규정해 버린다. 그 과정이야 어떻든 방아쇠는 권력자의 몫이기도 하고 더군다나 2차대전으로 인류가 몰린 반인류성은 히틀러로 책임을 전가해야 할 만큼 그는 반인류적 인간이라 나는 생각한다. 공산주의가 극좌라면 나치는 극우이지만 권력의 극악한 횡포적 측면에서는 같다는 것은 다수의 역사학자가 동의한다. 예로 한나 아렌트는 이들 모두를 전체주의로 명명한다.
적어도 20세기에 인류사적으로 지구 상의 인간이 정말 크게 고통받던 시기는 31년 전쟁이 있었던 시기가 아니었나 한다. 전쟁뿐만이 아니라 그에 따른 경제의 피폐는 차치하고라도 인간 개체 자체의 심리적 위축은 이루 말로 표현할 길이 없어 보인 시기였던 것 같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시기에 학문의 모든 분야에서 지식의 극대화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물론 열강들에 국한된 일이기는 해도 후반기에 들어 이 상황이 확장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예로 노벨상 수상자의 통계를 통해 이를 증명해 보이기도 하는데 그는 역사적 사건을 군데군데 통계적 수치를 넣어 설득력을 배가시킬 뿐 아니라 그가 이 책을 위해 수집한 자료의 방대함에 놀라기도 한다.
하권의 18장 마법사와 도제 편은 과학 편으로 인문학자인 그의 자연과학에 대한 지식과 과학에 대한 인문학적 해석이 이채로워 무엇을 구상하고 있는 필자에게는 매우 큰 참조가 될 듯하다.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한 20세기의 인류사는 홉스봄이 지적한 대로 극단의 시대가 아니었나 한다. 어디 어느 시대에 어렵던 시대가 없었나마는 가장 극단적인 삶을 살았던 20세기 인류에게 술 한 잔을 권한다.
1990년대 초까지 조망한 그의 이 대 저작은 아마도 지금까지 조망한 것으로도 해석될 만큼 연결성이 있다. 물론 스마트폰 사건을 빼고 말이다.
----------------------
이 책 ‘극단의 시대’는 출판사로부터 배달되었다. 파열의 시대 리뷰가 당첨되었다고 보냈다는데 나는 이런 광고가 있었는지 조차 몰랐다. 여하튼 매우 지성적인 책을 보내준 출판사에 감사를 이 리뷰로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