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의 아버지는 골동품상으로 당시에 엄청난 부를 쌓았다 한다. 발터는 삼 남매 중 장남으로 그 밑에 남동생 게오르크와 또 그 밑으로 여동생 도라가 있었다. 부모님은 1920년대에 돌아가셔서 1930년대에 독일에서 불었던 광풍을 자식들만이 고스란히 짊어지고 있어야 했다. 이 가문의 불운은 당시의 사회상의 희생타가 된 것이었는데 물론 어찌어찌 해서 살아남은 자도 있었겠고 죽은 자들이 더 많은 상황에서 불운을 떠 올리기가 상대적 대비로서는 좀 그렇기는 해도 삼 남매의 비극은 불운으로 얘기해도 무방할 만큼 그들의 마지막이 비극적이다.
우선 발터 벤야민의 자살을 통한 허망한 죽음 말고도 그의 동생들도 연이어 죽음을 맞이한다. 사실 그들 모두는 1933년에 공산당이 나치가 이끄는 사회주의자(또는 전체주의자)들에 의해 축출된 사건과 매우 깊은 관련이 있다. 그들이 공산주의자가 된 것도 사상적으로 무장되어 있다기보다는 당시 국가사회주의자들의 유대인 혐오와 관련이 더 깊다고 하겠다. 남동생 게오르크는 소아과 의사로서 공산주의자로서 활동한다. 여동생 도라는 오늘날로 말하면 사회시민운동에 가담한 사회심리학자쯤 된다.
이 책 ‘벤야민, 세기의 가문’은 발터 벤야민과 그의 형제 및 관련 식구들에 관한 얘기이다. 이미 일찍 타계해 버린 삼 남매 뒤로 힐데 벤야민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게오르크의 부인으로 발터에게는 제수가 된다. 그녀는 끝까지 살아남아 동독의 법무부 장관 직을 행사하면서 서독과는 달리 나치 전범들을 대대적으로 역사의 심판대에 세운다. 그녀의 동독에서의 이야기는 책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비교적 자세히 수록되어 있지만 발터 벤야민에 관한 나의 관심이 거기에 까지는 가지 못함을 느끼고 있었다.
발터 벤야민의 죽음을 전해 듣고 가장 놀란 사람 중의 하나는 아마도 한나 아렌트였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바로 9개월 전 같은 루트로 미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전에 발터 벤야민과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토론을 벌이는 등 친밀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미국으로 들어오는데 성공하였고 한 사상가는 국경에서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의 자살을 접한 스페인 국경 수비대는 너무 놀란 나머지 발터처럼 스페인 통과 도장을 받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을 통과시켜 주었다 한다. 망명자로서의 생활에 너무 지쳤던 벤야민이었다.
그와 그의 여동생 도라가 접촉이 잦았던 것은 같이 파리에 있었을 때가 많았었기 때문인데 둘 다 돈이 궁핍하여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긴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에 발터는 그의 원고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는데 비록 일부인지 많은 부분인지는 몰라도 도라 덕분에 그의 원고는 빛을 볼 수 있었지만 발터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라도 병으로 스위스에서 죽게 된다. 남동생 게오르크는 수용소에서 전기가 흐르는 철창으로 뛰어들어 자살했다고 전해진다.
한 시대가 한 가문을 그들의 잘못 여부와 관계없이 이토록 말살시키는 경우는 아마도 인간 세상에는 여러 사례가 있을 법하다. 다행히 벤야민의 경우 오늘날 그의 사유가 남아 있어 빛을 보게 되어 필자도 이제는 아는 사람이 되어있다. 그의 1933년 이후의 행적과 그 기간 동안 이룬 그의 원고들은 그가 얼마나 좌절의 긴장 가운데 있었는지를 잘 말해 주며, 1940년 스페인 프랑스 접경 지역인 포르부에서 결국 긴장의 끈을 놓아버린다. 그 어려운 환경에서 그의 사유가 난해하지만 수려한 글로 나타난 것에 찬사를 보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