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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책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0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오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무엇이든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이 그의 의지에서든 아니든 상관없이 주변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만든다. 삶을 모르며 알 능력도 없으니 삶에 대해 관심도 없어 자신을 경멸의 대상으로 내던지고 이는 무의미한 감각으로 되돌아온다. 그의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 포기라는 단어를 만들어내며 이는 감성의 불완전으로 인한 불확실성의 세계에 갇혀 있음이다. 무릇 삶은 가치가 없어 시간 때우기임은 자명해 보이고 아무것도 모르니 무관심해질 수밖에 없고 오직 혐오의 대상으로서의 자아가 버티고 앉아있다. 감성이 증오스러움에 무엇이든 느낌으로 선택하지 않으니 공허하고 인생은 슬픔이다. 비웃음이 몸에 배어 있으니 자신과 타인을 모욕하고 한심한 생의 한 가운데에 기약 없이 서 있다. 무엇이든 요구하지 않고 요구받지도 않기로 작정한 이상 모든 꿈은 부질없으며 가능성 없는 희망은 비참의 나락에서 춤을 추고 무가치한 존재의 의식이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부조리는 신성한 것이며 행동에 반하도록 행동하며 책을 읽지 않기 위해 책을 사고 영화 안 보려고 영화관에 가는 작가의 심성은 형편없이 찌그러져 있으며 그것이 그의 내면의 진실이다. 결핍을 보태니 무거운 침묵이며 곧 적막 속의 발가벗은 우주가 존재하매 불면을 즐기고 지루함을 숭상하며 초라함을 높이고 낡음에 반하며 추악한 자아의 내면을 반긴다. 죽음은 항상 그의 곁을 지키며 통증은 정체모를 질병이며 피로감 속의 잿빛 단조로움 가운데 검은빛을 쬐이면서 잊고 보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성의 피로는 곧 영혼이 숨 못 쉬는 피로로서 내장을 갉아먹어 곧 살아있는 죽음이다. 감정의 슬픈 무질서로 단념한 결과는 귀찮은 권태를 낳으며 황폐해진 내면엔 오로지 억압과 고립과 고독만이 우글거린다. 황량한 잿빛 하늘은 그의 집이며 근심은 그의 심장이고 추위는 그의 뼈이고 폐해는 그의 정신인데 급기야 오래되고 쓸모도 없으니 곧 패배의 전체이다. 타락으로 점철된 정신은 불행하며 이는 폐허를 약속하여 단절과 허약을 통해 쏟을 곳이 없는 증오로 구토한다. 삶이란 그림자의 움직임이어서 허영 속에 안주하며 그로 인한 실수의 심각성으로 그저 안에서 죽는 것을 살펴볼 뿐이다. 졸음 속에 무뎌진 감각은 오히려 날카로워서 그 초라함에 눈물은 어깨를 움츠리게 만든다. 몸에 달고 다니는 싫증은 행복의 고통을 막아주는 퇴보적 수단이요 진보적 광기이다.
이토록 속수무책 쓸모가 없는 존재가 불안이다. 그래도 그에게는 자유가 있다. 자신의 내면을 자신 있게 느끼고 그것을 또한 자신 있게 표현할 수 있는 비범한 능력이 세상의 수많은 비논리적 낙관론자들이 아무 말도 못하고 아무 글도 못 쓰고 오로지 ‘나는 낙관론자이다’만을 앵무새마냥 8글자를 외칠 때 그의 불안은 장장 500여 쪽의 책이 되어 그의 사후 47년 만에 출간되었다. 페르난두 페소아, 당신은 진정코 인류였다. 영특한. 나는 그를 조심히 불안스럽게 그의 불안을 칭송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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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481번 까지 일련번호로 나열된 페스아의 소산문 형태의 글이다. 번호의 연계성이 적어 아무 때고 책을 펴서 아무 쪽이나 읽을 수 있을 만큼 단절되어 있고 소산문 또는 문장 하나 등도 세련되게(그가 매우 싫어할 단어일 테지만) 내면이 표현되어 있다. 오래된 자료로서 혹 지워진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네모로 표시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