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4
알랭 로브그리예 지음, 박이문·박희원 옮김 / 민음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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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감정이 배제된 채로 끊임없이 중얼거리는구나. 마치 카메라를 들이대고 자로 재 보고 쏟아낸 풍광은 온갖 기하학적 모양과 정확한 길이, 숫자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수에서는 작가가 소수(prime number)로 기교를 부릴 만도 한데 이내 그 바램은 사라져 버렸다. 집 주위, 집의 외관, 그리고 집안의 풍경, 사람들이 꼭 소품으로만 여겨진다.

 

식탁의 의자는 네 개인데 한 사람이 안와서 하나를 치웠다. 그런데 시선은 오로지 두 사람에게로 있어 의아한 느낌이 들 때 쯤 반복되는 이 얘기가 결국 어느 화자의 중얼거림이라는 것을 알아채었다. 화자인 가 끼어든 문장이 나올 법도 한데 전혀 없다. 더군다나 치밀하게 필요없을만 치 묘사되는 집과 주위의 풍경 그리고 집안의 두 사람의 움직임은 서로 아무 관계나 암시도 아니다. 더군다나 상징이 될 만한 은유도 전혀 없다.

 

중얼거리는 화자는 A...라는 여자의 남편으로 마치 망원경을 들고 밖에서 주위를 둘러보는 형태의 묘사로 전편은 이어진다. 이 여자는 아는 부부의 남편과 무슨 불륜의 관계인 것으로 추측되지만 그 단어나 그것을 직접적으로 묘사한 부분은 하나도 없다. 단지 일 때문에 같이 나가서 주어진 시간 외에 더 있다 돌아온 것 뿐이다. 그 와중에 풍광에 대한 집요한 묘사는 계속된다. 도무지 연관이 없다.

 

다만 이야기 중 지네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 정부로 보이는 사람이 죽여 버리고 그 흔적이 묻고 화자는 그 흔적을 없애려 든다. 지네의 꿈틀거림이 관능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독자 바로 나 자신일 뿐이고 그러한 형용사적 표현 또한 전혀 없다. 상징이라기 보다는 지네의 꿈틀거림이 혹시 불륜의 성애를 상징했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정부가 죽여버리는 행위, 그것도 치밀한 묘사로서의 행위로 혹 지네가 화자를 상징하지 않나 하는 추정 또한 든다.

 

상징이 없고 형용사적 표현도 전혀 없고 자로 잰 듯이 길이가 나오고 온갖 풍광의 기하적 묘사는 카메라를 들이대고 자로 재고 그 풍광을 사진을 보듯이 묘사한 것 외에는 감성이 들어가 있지 않다. 더군다나 화자가 끝없이 얘기하는 그의 부인 A...와 프랑크의 행동에는 그저 일상적인 행동을 극세사를 짜듯이 얘기할 뿐이다.

 

도대체 소설에 감성이 없다면 그게 소설인가 ? 도대체 이유도 없고 연관성도 없는 풍광에 대한 묘사는 또 어떠한가 ? 화자가 내 보이기 만하는 않는 무미건조함은 또 어떠한가 ? 이 모두가 작가의 치밀한 계산 하에 만들어졌음이 틀림없다. 기존의 소설 기법을 벗어나 새로운 틀을 시도한 것이다.

 

소설의 새로운 기법을 보는 듯하다는 점에서 높이 살만하고 감성이 적은 소설에 대해 별로 크게 생각지 않는 나란 독자는 감성이 아예 없는 이 소설에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다만 하나의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 새로운 형식의 소설에 작가의 창의성은 높이 살 만하다. 결국 소설도 기법은 무궁무진한가 ?

 

소설 속 주인공 화자의 질투는 건조함에 징글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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