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짐승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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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치게 될 것을 뻔히 알면서 피할 도리도 없어 앞으로 영원히 마주치게 될 정적. 그것만 빼면 살아 있는 한 불멸이다. 물론 과거 같지 않고 더 쌓아진 과거가 불편한 현재를 만듦과 동시에 미래는 짧아져 있는 보편타당성은 지독히도 잔인하지만 말이다.

 

쾌락은 누리지만 갈망은 사라지지 않는 것은 나이에 비례한다. 적어도 젊었을 때 그런 갈망은 순순히 순간순간의 쾌락에 무릎 꿇지만 늙어감에 따라 뇌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채워지지 않는 갈망은 상대방의 감각에 불을 지를지언정 자신의 질투와 잃어버릴 것이라는 민감함은 더욱 더 차오르는 나이, 62세의 26살 정도의 젖가슴이 크고 육체가 관능적인 여자와 사귀는 주인공 남자이다. 학생과 교수 사이.

 

성애는 있되 예전에는 없었던 되먹지 못한 질투가 쌓여만 가는 현실 앞에 속수무책 당하고야 마는 62세의 남자는 전에는 전혀 없었던 것인데 라는 자조 섞인 독백을 전 책을 통하여 쏟아낸다. 분명히 쇠락한 자신을 알며 주체할 수 없는 생동력을 뿌리고 다니는 어차피 못 잡을 여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지막까지 자신의 마음을 붙들어버린다.

 

1년 반에 걸친 성애의 종말이 그녀에게는 자연스러웠지만 그에게는 부자연스럽고 괴기한 어둠일 뿐이었다. 그 어둠 속에 매일 그는 그의 무엇을 붙들고 있어야 했으며 그녀의 육체의 기억이 생생하도록 계속 남아있을 즈음까지도 상상 속에 성애를 나눈다. 어차피 헤어질 것이라는 것을 안다는 자각은 불과 1, 2년의 쾌락 속에 눈꺼풀이 씌워져 들어왔기도 하겠지만 이제 하나 더 덧붙여진 것은 그의 시간이 점점 짧아져간다는 사실과 맞물려 더욱 더 증폭된다.

 

그녀에 대한 생각과 자신만의 상상에 빠진 행위 속에 3년이 지나 연락이 온 그녀의 시간이 자신보다 더 짧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의 유방암 치료로 인한 몸의 변화, 결국 그녀가 먼저 죽을 수도 있다는 엄연한 사실은 감각적 사고와 현실적 사고의 평행선을 달리게 한다. 죽음이라는 것이 서서히 고개를 쳐들 때 쯤, 그것이 둘 중 어느 누가 먼저이든 상관없이 관능은 죽어가며 그래서 제목이 죽어가는 짐승이 아닐까?

 

전편이 장(chapter)이 한 개로 오로지 절로서만 이루어진 독백체의 소설로서 미국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많다. 비교적 짧은 소설이지만 미국 문화의 변화 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성애의 묘사는 비속어가 사용될 만큼 관능적이고 글이 발가벗겨진 부분도 있다. 아마 영문본도 문어체에는 쓰이지 않는 비속어를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번역도 그렇게 한 것이 아닌가 한다. 현재 미국인 70대 세대들의 성에 대한 보편화된 사고방식을 알고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된다. 그 세대는 성에 대해 철저히 개방적이었다

  

짐승이어서 성애의 쾌락을 알아도 의식적 자아가 있기에 이를 표현할 수 있어서 인간이다. 이 소설의 주제는 죽어가는 짐승’, 바로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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