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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어린 시절
발터 벤야민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삶은 적어도 망각이 서슬이 시퍼런 칼을 들이대지 않는 범위 안에서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을 오랫동안 가슴에 품게 마련이다. 그 기억의 리듬이 주형틀이 되어 꿈이 형성되기도 하고 반복의 형태는 공허감이라는 경직된 틀을 뇌리에 박히게도 한다. 모든 사람에게 같이 박혀 있어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천차만별인 것을 어찌하리요. 이는 비단 문장력이 좋고 나쁨의 차이는 결코 아닌 듯 싶다. 결국 슬픈 감성이다.
항상 일어나면 아침은 먼저 와 있었다. 어린 시절 집의 로지아가 그에게는 신이며 시공간이 로지아에게 무릎 꿇는 것을 보아 왔다. 그런 풍광은 한쪽 벽이 없어 그렇기도 하거니와 그 로지아는 안에서건 밖에서건 시간, 계절 그리고 꽃의 화사함조차 조종하는 듯이 어린 눈에는 들어오고 있다. 로지아가 뿜어내는 풍광은 그렇듯 밝은 기억으로 생생하듯이 조명이 주어지는 한 풍경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파노라마관은 마음과 지구가 친구가 되는 그런 혜택의 생생함이다. 풍경의 미지보다는 오히려 보금자리라는 느낌을 가져다주는 가보지 못한 곳은 책상을 비추었던 것과 같은 빛이다.
다만 조명이 고장나기도하는 날이면 하늘 아래 침묵한 빛이 그의 동공을 적셨다. 그의 승리 기념탑은 눈앞에 전쟁이 펼쳐지는 그런 곳이었는데 계단을 오르고 구조물에 당도할 때 마다 특정의 구조물에 대한 애착과 가벼운 기쁨은 곧 다 읽지 못한 책과 마주하는 구조물로의 변화로 이어져 어스름한 빛일 뿐이었다. 탑 위의 사람들의 검은 빛은 이미 마음 속에서는 역광이 아니라 알지 못하는데서 오는 불안감이라는 것을 그는 알아챘다. 전화기 소리는 밤의 소리였는데 뒤쪽 복도 어두운 구석에 쳐 박혀 있는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 전화기 소리와 통화는 시간이 뒤섞여 무기력하게 만들매 폭력 그 자체였음은 그의 시간, 의도 및 의무감의 박탈감 때문이었다. 그것은 물고기가 있으나 찾지 못하여 실현 가능한 것으로 위장된 티어가르텐에서의 추억과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상태는 지각하여 상처받은 교정의 시계도 예외는 아니다. 비단 그 상처는 수업 시간 내내 이름을 빼앗겨 버린 소년의 상처이기도 하다. 그 상처는 책을 읽을 때도 나타나곤 했는데 새로운 것이 밀려 들 때마다 부딪치는 소리 없는 눈보라가 그렇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책은 텍스트가 잔뜩 찌푸린 채로 어두운 구름의 비깔이 끓어오르다가 사라지곤 한 것은 꼭 푹풍우가 지나는 것과 진배없다.
수필의 형식인 그의 회상은 마치 감미로운 초콜릿을 맛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녹아드는 짙은 갈색인 듯싶다. 미로에서 나오는 방법을 강구하나 비 속에서 하염없이 수달을 기다리는 벤야민이다. 도시라는 거대한 성채에서도 그는 미로를 즐겨 찾았고 그것은 연약하여 병이 잦았던 어린 시절이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
벤야민은 그래서 도시 곳곳의 하찮은 곳을 찾아내고 책 속에서 알아가는 것은 우울함을 극복하기 위함이었고 그가 아팠던 기억은 미래가 어떻게 될지를 기다리는 성향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회상한다. 그의 미래에 쓰여진 이 회상은 미래와 과거가 혼합되어 이런 시절의 회상 자체는 그의 미래에 대한 표상이다. 어린 시절의 안도감들이 미래에 철저히 빼앗기게 되어 이제 슬픈 감성의 문장으로 내 손에 쥐어져 있다.
이게 아무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는 이제 어린 시절과 그의 미래를 바탕으로 도시를 더욱 파고든다.
슬픈 감성의 발터 벤야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