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닉 -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마음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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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면서 장르소설을 쓰는 작가. 故박완서, 윤대녕, 신경숙, 박민규 등 거장들의 칭찬을 받는 글을 써내는 작가. 책을 받기 전, 내가 배명훈 작가에게 가지고 있던 선입견이었다. ‘이렇게 무언가 있음직한 배경을 가진 작품 치고, 흡족한 작품이 없었는데……. 그래도 혹시?’라는 기대감을 안고 책을 펼쳐들었다.

 

미래 언젠가 실현 가능한 일들이 지금 눈앞에서 펼쳐진다. 혹시 지금 다른 곳에서, 어쩌면 내 주변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을까, 라고 끊임없이 의심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지은이는 주변 상황을 관찰하고 사람 심리를 분석하는 데 취미가 있는 사람이 아닐까. 그만큼 이 소설의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와 상황 묘사가 생생하다.

 

“꿈을 꿨다. 어쩌면 꿈이 아니라 그것만이 유일한 현실이었을지도 모른다. 악마의 마음속. 조은수의 계획에 따라 세상 곳곳에 펼쳐져 있던 감각기관들. 그 방대한 정보수집망. 그것을 통해 전해지는 재해석된 세계. 악마는 그 감각기관 자체가 아니라 재해석과 관련된 곳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영혼이라고 불러도 좋고, 마음이라고 불러도 좋을 그 어딘가.”

 

나조차 알지 못했던 내 본성을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그러면서 위로한다. 너만 그런 것은 아니야, 인간이 다 그런 거지. 다들 드러내지 못 할뿐 이런 생각들을 하고 살기 마련이야, 라고. 판타지, 추리, SF, 그리고 로맨스까지. 화려한 배우들을 캐스팅하여 현란한 기법으로 찍어낸 한 편의 영화를 보고난 기분이다.

 

이 소설 한 권으로 그동안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체코의 이미지, 따뜻하고 포근한 붉은 지붕의 나라는 완전 뒤집어졌다. 한여름에 방문한 프라하라는 도시가 체코의 전부인 것 마냥, 그곳 하나만 방문하고도 체코를 다 안다는 것 마냥 생각했던 내 착각에 북풍이 몰아치듯 창백한 나라 러시아의 풍경이 뒤덮였다. 하얀 풍경에 검은 그림자. 발을 디뎌보기는커녕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체코의 겨울은 그렇게 무채색으로 다가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받은 느낌은 한마디로 ‘만만치 않다!’이다. 친절한 설명이나 과정 따위는 집어던지고, 처음부터 숨 가쁘게 몰아붙인다. 헉, 하고 놀란 숨을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마음 편하게 내쉬지 못했다. 보는 내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서사와 신선한 상상력으로 책을 사랑하는 독자는 즐거웠다. 이런 작가를 발견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책을 읽고 나서 바로 이 작가의 전작들을 찾아볼 만큼. ‘작가의 말’로 미루어보아 이 작가의 단골 주인공의 이름은 ‘은경이’인가 보다. 괜히 흐뭇하다. 작가님, 여기 단골 독자 은경이 한 명 추가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이 책을 극찬했다는 박찬욱 감독이 이 소설을 원작으로 블록버스터급 영화를 한 편 찍었으면 좋겠다. 감독님, 여기 관객 하나 확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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