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고 싶은 여자 1
임선영 지음 / 골든북미디어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여권 신장이니 여성상위 시대니 남녀평등이니 이것저것 떠들어 봐도 한국 사회에서 이혼이라는 굴레는 여전히 여자에게 더 가혹하다. 귀책사유에 상관없이 떳떳하게 고개 들고 큰소리치는 남성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이 책은 소재부터 참 파격적이다. 종갓집 외동딸로 태어나 사랑을 받고 자라다 한 남자에게 강간을 당하고 임신을 하고 결혼을 한 한 여인.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굴레를 씌우고 짐을 지우는 거짓투성이 남편과 호시탐탐 종갓집 재산을 노리는 파락호 작은아버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다 만난 새로운 사랑의 거짓. 도대체 제대로 풀리는 일 없는 인생이다.

 

책을 읽는 내내 어찌 이토록 이 여인의 삶은 기구한 것일까, 탄식이 끊이지 않았다. 송재현, 지성호라는 인간들로 인해 한시도 편할 날 없는 삶을 이어가는 지정선을 보며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질 않았다. 남편에게 몇 번씩이나 사기를 당해도 넘어가고, 이혼을 한 후에도 뻔뻔하게 남편 노릇하는 재현을 내버려두고, 아내라는 명목으로 그의 지인들을 만나기까지 한다. 작은 아버지에게는 또 어떠한가. 100년 넘게 이어내려 오는 술도가를 폐쇄시킬 지경까지 몰고 가도 무조건 용서한다. 정선이 품는 날선 마음과 독한 말들은 흐지부지 우유부단한 행동에 묻히고 만다. 그토록 당하고 그토록 속으면서도 왜 끝내 그 인연을 내치지 못하는 걸까. 그렇게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답답하게 행동하는 이 여인의 행태에 도리어 화가 나기도 했다.

 

소설 안에서 주인공 지정선은 대단한 인물로 묘사된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종갓집 종손녀에 강단 있고 똑똑한 여인으로 평가받고 대접받는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아니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와는 정 반대란 사실을 알 수 있다. 무턱대고 남을 믿어서 일을 만들어 놓으면, 할머니나 어머니, 친구들, 외삼촌, 당숙 등이 이를 뒷수습한다. 그런데도 주위 사람들은 지정선에 대한 믿음을 내려놓지 않고 떠받들기만 한다.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16부작 막장드라마를 보고 났을 때처럼 기분이 축 쳐지고 진이 빠졌다. 이렇게까지 기구한 팔자를 살아가면서도 이렇게까지 답답하고 미련하게 대처하는 사람이 있기는 한 걸까. 세상 모든 불행을 짊어지고 있는 주인공에게 처음에는 동정이 갔지만 끝내 정신 차리지 못하고 마지막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는 다 지 탓이겠거니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막장드라마를 볼 때와 마찬가지로 무섭게 몰입하여 단숨에 읽어내려 간 작품이다. 이 여인만큼은 아니겠지만, 어쩌면 지금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여인네들 중에는 이 여인이 겪은 불행과 고통 하나쯤은 겪고 있으리란 생각 때문이다. 오늘도 이 땅에서 딸이라는 이름으로 아내라는 이름으로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여인들을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더불어 지정선이라는 기구한 여인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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